연평도 해상사격훈련이 끝난 다음 날인 2010년 12월 21일 한 주민이 포격으로 불타 무너진 집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다.
섬으로 갔느냐 vs 뭍에 있느냐
현재 연평도 주민들은 포격 직후 섬에 돌아갔느냐, 아니면 여전히 뭍에 머물러 있느냐에 따라 첨예한 대립을 보인다. 뭍에 머물며 주민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꾸려 보상 문제를 협상하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섬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는 정부가 주민 보상을 조금이라도 적게 주기 위해 주민들을 이간질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들이 섬에서 준비한 취로사업에 반대하고 나선 것도 “옹진군이 주민들을 섬으로 돌아가게 해 보상 협상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반면 섬에 돌아간 사람들은 비대위가 독단적이라고 비판한다. 실제 찜질방에 남은 일부 주민 사이에서 “기자를 만났다가 비대위원에게 혼쭐이 난 사람도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만큼, 비대위는 연평도 주민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비대위가 내세운 ‘주민 단결’에 대해 “과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면서 주민들 간의 갈등은 증폭됐다. 포격 다음 날 주민 대부분은 피란 가기에 급급해 집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인천에서 지내더라도 하루 이틀 정도는 섬에 들어와 김장을 하거나 깨진 창문에 합판이라도 대는 등 집안 단속과 살림 준비를 해야 했던 상황. 하지만 섬에 들어오는 주민은 대부분 “비대위에서 섬에 들어가지 말라고 닦달해 겨우 들어올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포격 다음 날 섬을 빠져나갔다 살던 집을 둘러보기 위해 12월 초 여객선을 타고 입도한 유모(60) 씨는 “며칠 전부터 섬에 들어오려고 했는데 (비대위에서) 들어가지 말라고 해 이제야 왔다”며 한숨을 쉬었다. 빠르게 집을 정돈한 유씨는 서둘러 타고 들어왔던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섬에 머문 시간은 한 시간이 채 안 됐다. 또 다른 주민 이귀옥(50) 씨는 “보상 논의는 전부 인천에서 이뤄지고 섬에 남은 주민들은 소식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는데 비대위가 돌아오겠다는 주민들까지 잡아두면 (섬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는 거냐”며 울화통을 터뜨렸다.
그러자 섬에 남은 주민들은 “일단 부서진 집이라도 빨리 복구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포격으로 피해를 입은 주택은 이제 겨우 유리를 갈아 끼우는 정도의 복구 작업만 진행됐을 뿐이다. 정창권 연평우체국장의 집은 포탄을 직격으로 맞아 천장과 벽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마을 해안가 쪽에서 식탁 5~6개를 놓고 포격 이전까지 장사를 하던 ‘마도로스’ 식당도 천장이 주저앉았다. 포격을 맞아 전소한 주택이 늘어선 ‘연평중앙로 167번길’ 쪽은 한밤중에는 주민도 지나다니지 않을 정도로 을씨년스럽다. 주민 김정희(46) 씨는 “대체거주지(김포 양곡 미분양아파트) 빌리는 데 들인 돈만 마을 복구비로 돌렸어도 벌써 집 몇 채는 뚝딱 지었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포격 직후 마을 경제활동이 완전히 멈춰 섬에 남은 사람들은 육지에서 식량과 생필품이 들어오지 않으면 기본적인 생활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12월 초 주민들에게 위로금 100만 원씩이 개인통장으로 입금됐지만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었다. 가게 문을 연 곳이 없어 돈이 있어도 쓸 데 없었기 때문이다. 포격 15일 만에 군 편의점이 문을 열었지만 기본 생필품과 인스턴트식품이 전부였다. 파 한 단을 살 수 없어서 요리를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주민들은 썰물 때 옆구리에 바구니를 끼고 바닷가로 나섰다. 굴 따서 젓갈 담가 반찬이라도 해야겠다는 심사였다.
하지만 이 장면이 언론에 나간 뒤 굴 따던 주민들은 인천 피란민들에게 다시 한 번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피란 온 이웃들은 찜질방에서 고생하는데 섬에 남아서 굴 팔아 돈까지 번다는 것. 섬에 남은 주민들로선 “사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가슴만 탁탁 칠 수밖에 없다. 취로사업을 신청하면 “협조 안 한다”고 욕먹고, 반찬 만들려 굴 따면 “돈 벌려 한다”고 의심을 받자 섬 주민들의 비대위에 대한 불만은 극에 달했다.
포격 도발 후 한 달째가 가까워지면서 연평도에서는 “비대위원 상당수가 사실은 섬 주민이 아니다”라는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소문의 진위를 따져보면 전혀 근거 없는 ‘악성루머’는 아니다. 연평도 각 기관장의 말을 종합하면 포격 전 마을에서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을 정상적으로 납부하던 주택은 360여 가구. 주민 대부분이 2, 3인 가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섬에 살던 주민은 900명이 채 안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보상 대상이 된 연평도 공식 주민 수는 1370여 명. 500명 가까운 주민이 위장전입을 했다는 뜻이다.
목소리 키우는 체리피커들
연평도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낚시나 수산물 판매 등 여러 이유로 섬에 드나들 일이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혜택을 받기 위해 섬에 주소지 등록만 해두고 실제로는 육지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연평도에 주소지를 두면 편도 4만4000원 정도 하는 여객선을 5000원에 탈 수 있는 데다, 의료보험료 50% 감면 혜택까지 주어진다. 이렇게 실제 섬에 살지 않으면서 각종 혜택은 받아 챙기는 ‘체리피커’들이 이번 보상 논의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 ‘진짜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다는 것이 섬에 남은 주민들의 생각이다.
포격 도발이 발생한 지 한 달째인 12월 23일. 한 비대위 고위 관계자가 뉴스 인터뷰에서 “아직 ‘우리’ 연평도 주민들은 많이 불안해하고 있으며 안전 대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섬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을 면사무소에서 지켜보던 한 주민의 입에서 “XX한다”는 욕설이 스스럼없이 튀어나왔다. 연평도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예전에는 범죄를 저질러도 주민들이 ‘뭐 이런 일로 처벌하느냐’며 피의자를 파출소에서 데려갈 정도로 서로 정을 나누던 곳이었다”며 “이제 마을 주민들이 다시 돌아와도 예전같이 지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