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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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도 알고 보면 패스트푸드

슬로푸드의 오용

  • 황교익 blog.naver.com/foodi2

    입력2011-01-03 1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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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식도 알고 보면 패스트푸드

    전통 고추장이다. 위에 하얗게 곰팡이가 폈다. 떡볶이를 슬로푸드라 하는 사람도 있다. 만약 그 떡볶이의 떡이 국산 쌀로 만든 것이고 고추장이나 간장도 전통 방식으로 만든 것이면 슬로푸드가 맞다. 그런데 그런 떡볶이가 있나?

    외국에서 새로운 개념의 단어가 들어오면 의미를 정확히 해석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가끔 단어가 지닌 정치적, 경제적 또는 상업적 활용성에 치중해 자기 식대로 오용한다. 이런 일은 대체로 지식인인 척하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다. 마침내 그 단어가 이르는 개념조차 흐릿해져 의사소통에 장애요소로 작용하다, 결국 공공의 사회적 목표를 정하는 데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슬로푸드라는 단어가 한국에 소개된 지 25년 정도 됐다. 이제 사람들은 이 말에 퍽 익숙하다. 그러나 모두 제각각의 처지에서 익숙할 뿐이다. 패스트푸드 전문점의 것이 아니면 다 슬로푸드인 줄 아는 사람도 있고, 천천히 만들어 먹는 음식이라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가장 큰 오용은 모든 한국음식이 슬로푸드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 오용이 하도 심각해 슬로푸드라는 단어를 용도 폐기해야 할 정도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슬로푸드란 단어를 꾸준히 사용하고 있으므로 우리만 버릴 수도 없다.

    슬로푸드는 사회경제적 혹은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용어다. 운동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무엇을 반대하고 무엇을 지향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반대의 대상은 세계화이고, 지향점은 지역적 삶이다.

    인류의 삶은 산업화 전과 후가 크게 다르다. 산업화 전에는 시간이 우리 생활에 그다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다. 오늘 할 일을 내일 또는 모레 해도 됐다. 그러나 산업화는 우리를 게을리 살게 두지 않았다. 집단적으로 일하는 시간을 정하고, 중간에 밥 먹고 쉬는 시간까지 관리한다. 산업자본은 어떡하든지 인간의 시간을 빼앗으려 하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음식이 패스트푸드다.

    패스트푸드는 빠른 시간에 만들어지고 빠른 시간에 배를 채우며, 먹을 만하면 되는 획일적인 맛을 지닌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런 음식은 패스트푸드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공장 제조 음식재료 역시 패스트푸드에 속한다. 음식을 준비하고 조리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공장 제조 음식재료는 식당과 가정을 가리지 않고 팔린다. 또 시장에 가는 시간을 줄여주고자 장기간 보관해도 상하지 않는 가공식품이 생산된다. 이처럼 인간을 시간의 노예로 만들기 위해 가공 처리한 모든 음식을 패스트푸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런 시각으로 한국음식을 보자. 한국음식의 주요 식재료인 간장, 된장, 고추장, 떡볶이떡, 두부 등은 공장 생산품이 대부분이다. 심하게 말하면 이를 가지고 요리한 한국음식 역시 패스트푸드일 따름이다.



    그러니까 슬로푸드는 특정 음식을 말한다기보다 일종의 운동성을 지닌 음식이라 정의하는 것이 맞다. 운동성이란 ‘산업화 이후 인간 세상에 대한 거부’ 같은 것인데, 여기에 무게중심을 두고 슬로푸드를 다시 설명하면 ‘인간을 시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여기까지 듣고 ‘슬로푸드 먹자는 사람들 좌파 아냐? 빨갱이구먼!’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다. 슬로푸드 운동의 시발 자체가 좌파적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시작됐다. 당시 맥도날드가 로마에 진출하자 몇몇 뜻있는 사람이 슬로푸드라는 개념을 내세우고 패스트푸드 추방 운동을 벌인 것이 시초다. 그들의 행동지침은 이렇다. 첫째, 소멸 위기에 처한 전통 음식, 음식재료, 포도주 등을 지킨다. 둘째, 품질 좋은 재료의 제공을 통해 소생산자를 보호한다. 셋째, 어린아이 및 소비자에게 미각을 교육한다.

    우리나라 슬로푸드 운동의 행동지침을 만들자면 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포도주를 민속주로 대체하기만 하면 된다.

    계속됐더라면 로마의 맥도날드보다 강력한 파급력을 발휘했을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판매에 많은 소비자가 아직 아쉬움을 나타내는, 이 한국적 고도의 자본주의사회에서 슬로푸드를 찾고 지킨다는 것은 한국 C급 좌파들의 허망한 놀이일 수도 있다. 그러니 특정한 한국음식에 슬로푸드라 이름 붙이는 것은 의미도, 가치도 없으며 더더욱 운동적이지도 않다. 슬로푸드를 오용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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