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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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침입? … 정릉이 기가 막혀!

세계문화유산 선정 직후 능 앞을 재건축 구역 설정 … 조합 측 “최대 15층 내외로 짓겠다”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1-01-03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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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침입? … 정릉이 기가 막혀!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서울 성북구 정릉2동의 정릉(貞陵). 조선 태조가 가장 사랑한 계비인 신덕왕후가 잠들어 있는 정릉은 중구 정동에 있었으나 신덕왕후를 곱게 보지 않던 태종이 “다른 왕릉과 달리 도성 안에 있고 너무 크다”며 현재 위치로 이장했다. 정릉은 조선왕조 최초의 왕릉으로 역사적 가치도 높지만 서울시내에서 대중교통으로 불과 30분 거리여서 시민들의 좋은 휴식시설이다.

    하지만 ‘아파트 왕국’ 서울은 정릉 앞을 ‘고층 아파트 청정구역’으로 내버려두지 않았다. 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직후인 2009년 10월, 서울시는 정릉 앞 5만6000여㎡를 ‘정릉 제6구역 주택재건축정비구역’으로 조합 설립을 인가했고, 2010년 1월 시공사로 선정된 삼성건설은 최대 15층의 고층 아파트 710채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이대로 가다간 세계문화유산인 정릉 코앞까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지도 모른다.

    정릉 역사문화 환경 훼손 불보듯

    2010년 말 시공 예정이던 공사는 2011년 1월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문화재청에서 2010년 8월 “정릉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경우 정릉의 역사문화 환경을 크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문화재 보호구역에 대한 현상변경 허가’를 부결했기 때문. 문화재청 측은 “현재 정릉 주변 현상변경 허용기준을 마련하고 있는데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건축에 사활을 건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하 조합)은 문화재청의 결정에도 재건축을 포기하지 않은 채 “무슨 일이 있어도 문화재청의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 재건축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조합은 층수를 낮추는 등 설계 구조를 변경할 계획이다. 국가지정문화재의 경우 문화재 외곽 500m 이내에서 공사하게 되면, 특히 서울은 100m 이내일 때 문화재청의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 즉 100m 이상 떨어진 곳에서는 고층 건물을 지어도 상관없는 것.



    이를 이용해 조합은 ‘정릉 앞 100m 이내에도 모두 15층 내외 고층 아파트를 짓겠다’는 기존 계획을 수정해 정릉에서 가까운 곳에는 4층 이하의 저층 아파트를 짓고, 100m 이상 떨어진 곳에는 고층 건물을 지을 방침으로 알려졌다. 또한 조합은 성북구 석관동 의릉 등 다른 문화재 주변 지역에서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낸 전문 용역업체를 고용해 그 노하우를 이용하기로 했다. 조합은 12월 말 조합원들에게 “전문 업체의 힘을 빌려 문화재 심의를 받은 후 2011년 중·하반기까지는 문화재 심의와 사업시행 인가를 획득하겠다”고 단언했다.

    만약 층수를 낮추는 식으로 구조를 변경하면 허가가 나더라도 조합원의 부담은 기존 공표된 것에 비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재건축에 반대하는 ‘정릉을 사랑하는 모임’(이하 정사모) 권영민 씨는 “이전에 재건축 조합 설립에 동의한 조합원들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그로 인해 분담금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지, 기존 설계 구조가 변경될 가능성이 있는지 전혀 모른 채 동의했다”며 “조합 측에서 이를 설명해주지 않았으므로 만약 현상변경 신청이 나더라도 건물 구조가 변경됐다면 조합 설립 자체가 무효다”라고 주장했다.

    정사모는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은 서울시의 무분별한 재건축 구역 설정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서울시는 2008년 이 지역을 재건축 구역으로 설정하면서 아파트 건축이 불가능한 ‘제1종 일반주거지역 제한’을 해제했다. 당시 주택재건축사업 정비구역 지정 신청서를 보면 이 지역의 제한 해제에 대해 “노후 불량 건축물의 점유율이 높다” “토지 소유자가 대부분 영세계층, 빈곤층으로 상대적 소외감을 갖고 있다” “소방도로가 미확보됐다” “건축물 상당 부분 슬라브 철근이 노출됐고 벽체에 균열이 발생해 위험도가 높다” 등을 근거로 제기했다.

    이에 대해 권씨는 “이 지역 대부분 단독주택은 330㎡(100평) 내외인데 상대적 소외감은 말도 안 된다. 다세대주택도 수리 보수가 필요한 경우는 있지만 개인 재산권 문제일 뿐”이라며 “서울시 측이 현장답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 재건축 희망자 말만 듣고 일처리를 해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고 말했다. 실제 동네를 가보면 알겠지만 노후한 주택 몇 곳이 있을 뿐 도로도 넓고 대부분 관리가 잘 돼 ‘부자동네’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정릉 앞 주택가는 해방 이후 한국 근대화된 주택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곳을 찾아오는 많은 시민에게선 “서울에 이런 마을이 있을 줄이야”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60년 평생을 이 마을에서 산 경희대 서완석 생활과학대학 교수는 “1960년대 후반부터 서울대 재직 교수가 많이 살아 ‘교수촌’으로 불렸던 곳”이라며 “대부분 정원이 잘 가꿔져 있고 집도 아주 튼튼하다”고 말했다.

    최악 땐 문화유산에 해제될 수도

    아파트 침입? … 정릉이 기가 막혀!

    재개발이 예정된 정릉 제6구역의 주택은 서울시가 개최한 ‘휴먼타운 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위). ‘정사모’ 권영민 씨는 “6구역은 정릉의 ‘좌청룡’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한편 최근 서울시 행정의 이중성이 여실히 드러난 아이러니한 사건이 있었다. 서울시가 2010년 5월 ‘획일적인 아파트촌이 아닌 보존가치가 있는 저층 주택지를 개발하겠다’며 개최한 ‘휴먼타운 사업 대상지 및 아이디어 발굴을 위한 2010 제2회 학생공모전’에서 정릉 6구역이 대상을 차지한 것. 이는 서울시 스스로도 재건축 대상인 정릉 6구역을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동네’라고 인정한 것이다. 시상식에서 마을 대표들은 서울시에 항의했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은 채 “담당 국장과 상의하라”고만 답변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재건축으로 인해 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해제되는 것이다. 유네스코의 지정문화재 선정은 영구적이지 않아, 만약 문화재가 훼손되면 지정이 해제되기도 한다.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독일 드레스덴 엘베계곡에 다리가 건축돼 역사적 가치와 경관이 훼손되자 2009년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되기도 했다. 게다가 2006년 유네스코 관계자는 “서울 도심 재개발 등으로 세계문화유산이 영향을 받으면 ‘위기 유산’으로 등재하거나 세계문화유산 목록 등재를 취소하겠다”고 찍어서 경고한 바도 있다.

    특히 정릉의 경우 문화재청이 ‘주변 묘역을 정리하겠다’고 약속한 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기 때문에 더욱 손 놓고 지켜볼 수는 없는 일. 서울시의회 김문수 의원(민주당)은 “만약 재건축이 시행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해제되면 문화, 경제적 국익 손실이며 서울은 ‘세계디자인수도’의 명성을 잃고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 말했다. “재건축이 취소되지 않으면 헌법소원도 불사하겠다”는 권영민 씨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우리 선조에게 물려받은 아름다운 자산을 더 아름답게 개발하지는 못할망정 아파트로 칭칭 감싸는 게 우리가 할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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