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연봉 조정위원회에서 소견을 밝힌 김승현이 KBL을 나서고 있다.
짧다면 짧을 수 있는 8년 세월. 국내 스포츠 무대에 이런 부침을 겪은 스타가 또 있을까. 오리온스 김승현(32). 그가 인천 송도고와 동국대에 다닐 때부터 유심히 지켜봤기에 끝 모를 추락이 더욱 안타깝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는 대목에서는 답답함마저 교차한다. 김승현은 2010년 9월 오리온스 구단에 미지급 보수(12억 원) 문제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KBL의 임의탈퇴 처분을 받았다. KBL 이사회는 선수가 보수와 관련한 계약에 불복할 경우 이런 조치를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수와 구단의 갈등이 법정으로 비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FA 연봉 협상 뒷돈 두고 갈등 시작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시계를 과거로 돌려보자. 김승현은 동국대 졸업 후 2001년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뽑혔다. 학창시절 개인기가 뛰어난 왼손잡이 가드로 주목받은 김승현을 선발한 김진 감독은 “꼭 필요한 선수”라며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승현과 함께 마커스 힉스라는 당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를 영입한 동양은 전년도 꼴찌에서 일약 정규시즌 우승에 이어 챔피언결정전까지 휩쓸어 통합 챔피언에 등극했다. 김승현은 신인왕과 정규시즌 최우수선수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김승현은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김진 감독과 호흡을 맞춰 정상에 섰다. 금메달로 병역 혜택도 받았다. 날개까지 달게 된 김승현의 시대가 활짝 열리는 듯했다.
그렇게 5시즌이 흘러 2006년 김승현은 자유계약선수(FA)로 풀렸다. FA는 돈방석의 보증수표다. 프로농구 출범의 배경에는 과도한 몸값에 대한 개혁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1990년대 아마추어 농구대잔치 시절 특급 대학 선수가 실업팀에 입단할 때 수십억 원의 계약금을 챙기기도 했다. 프로 출범 후 드래프트 제도와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제도) 등의 도입으로 일체의 계약금이 금지됐다. 그러나 몇몇 구단에서 뒷돈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조금 일찍 태어났더라면 천문학적 금액을 손에 쥐었을 김승현이 FA라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게다가 그는 최고의 포인트가드로서 여전히 상한가였다. 김승현은 5년에 연봉 4억3000만 원으로 오리온스에 잔류했다. 단년 계약이라 해마다 다시 연봉 협상을 하는 조건이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구단 발표 내용일 뿐이다. 연봉이 10장(10억 원)에 이른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실제로는 5년 동안 해마다 성적에 상관없이 연봉 10억5000만 원을 보장받는 총액 규모 52억5000만 원에 이르렀다. 김승현 1명의 연봉이 12명 전체 선수의 연봉과 맞먹었다.
김승현 계약 직후 오리온스 구단의 단장이 바뀌었다. 새롭게 부임한 심용섭 단장에게는 전임자가 남겨둔 김승현과의 계약서가 눈엣가시였다. 원칙주의자를 자처한 심 단장은 취임 일성으로 “오리온스라는 회사는 재계 서열 70위 밖이다. 작다 보니 뭘 하든 관심이 없을 정도다. 농구단 운영하면서 무리하게 돈을 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갈등의 씨앗이 서서히 싹트고 있었다.
묘하게도 FA 계약 후 김승현은 잦은 허리 부상과 자기관리 소홀로 부진하기 시작했다. 사생활이야 어떻든 운동만 잘하면 그만 아니냐는 게 김승현의 생각이었지만 코트에서도 점점 잊혀갔다. “한 시즌 54경기를 전부 뛰겠다”고 공언했지만 그는 신인 때를 제외하고 전 경기에 나선 적이 없다. 경기에 출전하지 못할 정도로 허리가 아프다면서 여가생활을 즐겨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 시기에 오리온스는 감독 2명이 시즌 도중 사퇴했다. 오리온스의 성적이 바닥을 헤매게 된 주범으로 김승현이 지목되고 있었다. 급기야 구단에서는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가며 기존 계약의 파기 가능성을 알아봤으나 한 번 찍은 도장을 물릴 수는 없었다.
“돈 내놔라’ vs “괘씸한 것”
2002년 신인시절 김승현은 팀을 우승으로 이끈 데 이어, 그해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도 연이은 가로채기로 기적 같은 금메달을 일궈냈다.
잠시 봉합된 듯했으나 2009~2010시즌 종료 후 잡음은 더 커졌다. 오리온스는 15승 39패로 최하위에 그쳤다. 18경기 출전 정지 징계가 9경기로 감면됐던 김승현은 25경기에 나와 평균 8.8득점, 5.7어시스트의 평범한 성적에 그쳤다.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는 여전히 이견이 심했다. 김승현은 6억 원을 요구해 3억 원을 제시한 구단과 합의에 실패했다. 다시 KBL의 조정을 거쳐 전년도 6억 원에서 반 토막이 난 3억 원의 보수(연봉과 인센티브를 합한 금액)에 사인했다. 이마저도 연봉 2억1000만 원을 뺀 9000만 원이 인센티브. 이 중 6000만 원은 팀 순위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데 8위 이하면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나머지 3000만 원 중 1200만 원은 훈련 태도 등에 따라 주어지며, 1800만 원은 1∼6라운드마다 5승 4패 이상을 해야 받는다. 김승현에게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구단에 대한 배신감이 더욱 커진 김승현은 대표팀 훈련 과정이나 지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리온스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오리온스만 아니라면 어디서든 열심히 운동하겠다”는 말까지 떠들고 다녔다. 상황이 이런데도 오리온스 구단의 최고위층은 “트레이드 계획은 전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괘씸죄에 걸린 김승현을 다스리기 위해 구단에 붙잡아두면서 발목을 잡을 의도라는 지적도 나왔다.
결국 김승현은 선수 생명을 담보로 당초 계약에 따른 미지급 보수 12억 원(2009년 4억5000만 원, 2010년 7억5000만 원)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는 강수를 뒀다. 김승현은 이미 오리온스에서 마음이 떠난 데다 운동에 대한 미련도 사라져 이제 실익이라도 챙기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KBL은 제3의 기관이라는 이유로 수수방관하다 어설픈 규정의 허점을 번번이 드러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평행선을 달리는 김승현과 오리온스. KBL은 김승현 측에 미지급 보수 12억 원 청구 소송을 취하할 것을 권고했다. 일단 김승현이 한발 물러서면, 오리온스도 그가 원하는 타 구단 이적의 길을 열어주는 방식으로 KBL의 임의탈퇴 결정 철회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어떻게든 결론은 나겠지만 승자와 패자 모두 심각한 상처를 받게 됐다. 벌써 몇 년째 되풀이되는 감정 대립에 팬들 역시 큰 실망만 떠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