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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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토종꿀차 한 잔이 그리워

꿀차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입력2012-09-03 0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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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직한 토종꿀차 한 잔이 그리워

    꿀에 오미자를 넣고 발효한 꿀차를 뜨고 있다. 집에서 담그지 않으면 이런 꿀차는 맛보기 어렵다.

    식물에서 차로 마실 수 있는 성분을 우려낸 것을 추출차라고 한다. 식품회사에서는 다양한 추출 방법을 동원하는데, 대체로 압착을 하거나 알코올 등으로 분리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추출물은 액상 그대로 용기에 담기도 하고 식품첨가물을 넣어 가루 또는 과립으로 만들기도 한다.

    시중에는 이런 추출차가 넘친다. 먹기 간편하게 포장한 것이 한 이유고, 건강식품처럼 포장한 것이 두 번째 이유다. 그러나 맛에서는 많이 빈다. 추출과 가공 과정에서 생긴 문제로 보이는데, 첫째는 원재료를 극히 적게 넣어 그런 것이고, 또 하나는 가공 과정에서 고온 처리를 해 향 성분이 다 달아나서 그렇다. 그래서 인공 향을 첨가하기도 한다.

    우리 조상은 곡물, 열매, 풀 등을 이용해 다양한 마실 거리를 만들어 즐겼다. 우리나라 음료에 대한 최초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온다. 김유신이 전쟁터에 나가던 중 자신의 집 앞을 지나다 병사로 하여금 ‘장수(漿水)’를 떠오게 해서 마신다. 장수는 젖산 발효 음료인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식혜라고 보면 된다.

    이 밖에도 과일을 으깬 뒤 쪄서 농축액을 만들고 여기에 한약재 가루를 넣어 달이는 갈수(渴水), 향이 나는 약초를 끓인 물에 넣고 우린 숙수(熟水), 약초나 꽃, 과일 말린 것을 끓여서 마시는 탕(湯), 쌀이나 보리, 콩 등 곡물 가루를 냉수 또는 꿀물에 타서 마시는 미수, 오미자물이나 꿀물에 과일, 꽃잎, 어린 잎사귀 등을 넣은 화채, 그리고 꿀물에 송홧가루를 띄운 송화밀수, 꿀물에 떡을 띄운 수단, 계피와 생강 향이 그윽한 수정과, 잔칫상에 반드시 따라 나오는 식혜 등등 무수한 마실 거리가 있었다.

    이런 전통 음료 가운데 봉밀수(蜂蜜水)라는 것이 있다. 봉밀은 꿀이다. 꿀에 여러 식물을 넣어 추출한 것에 물을 타 마시는 차가 봉밀수다. 지금 흔히 쓰는 말로 고치면 꿀차인데, 우리 조상이 이를 차라 하지 않고 수(水)라고 한 데는 참 놀라운 이치가 있다. 차라 하면 뜨거운 물을 부어 우린 것을 말한다. 재료를 통째 넣어 끓이면 탕이고.



    그러면 수(水)는? 차거나 미지근한 물에 타서 마시는 음료다. 꿀은 왜 수로 마시는 것일까. 그 이유는 첫째, 향이 달아나지 않게 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꿀 효소가 온도에 약하므로 미지근하거나 찬물에 타서 마시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이 효소까지 알지는 못했겠지만 꿀이 첨가된 것은 차나 탕이 아니라 수로 마신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마트 음료코너에 가보면 간혹 꿀차들이 눈에 띈다. 고속도로 휴게소 편의점 같은 데서는 피로에 지친 운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고 전진 배치해놓았다. 뒷면을 보면 분명 꿀이 들어 있지만 그 꿀 향은 엉뚱하다. 설탕 탄 물과 진배없는 게 더 많다. 또 식물에서 추출한 액을 첨가한 것은 그 향이 살아 있지 않다. 추출 과정에서 이미 향이 달아났기 때문이다. 마트에 가보면 식물을 그대로 넣은 꿀차도 있는데, 이는 양을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밖에 안 보인다. 그리고 원료 식물의 양이 너무 적다. 좋은 꿀차 만나기가 참으로 어렵다.

    꿀차는 또 꿀이 좋아야 하는데, 이놈의 꿀을 믿을 수가 없다. 한반도 자연 탓이다. 장마 등 무밀기(벌이 꿀을 딸 꽃이 없는 시기)에는 벌에게 설탕을 먹인다. 이런 꿀은 사양꿀이라고 따로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또 꽃 피는 시기에만 꿀을 따는 정직한 농민도 많지만 전반적인 신뢰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양봉 꿀 이야기고, 토봉(토종벌) 꿀은 또 얼마나 귀한지. 병이 크게 돌아 토봉이 전멸하다시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가을에 접어들면 꿀은 잘 숙성돼 향을 돋우기 시작할 것이다. 토봉 꿀은 가을꽃이 진 뒤에도 한참 동안 수분을 날려 그 향을 짙게 할 것이다. 산골을 돌다 우연히 이 고운 꿀 한 통을 마련하면 오미자 익기를 기다리든지, 단단한 토종 생강 거둘 때를 기다리든지…. 아니다. 서리 서너 번 맞은 남해 유자 구해다가 꿀차나 한 단지 담글까 싶다. 여름 참 덥다 했는데, 서늘한 밤공기에 벌써 늦가을을 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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