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밀면이다. ‘개발된’ 진주냉면에 올리는 육전이 여기에도 올라 있다. 진주와 그 인근 지역에서는 으레 국수에 육전을 올린다. 국수 위 육전은 전통적이라 할 만하다.
사실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도 먼 조선시대부터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그땐 냉면을 파는 식당조차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서야 평양냉면이 맛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함흥에도 그 시절 냉면집이 있기는 했으나 함흥냉면이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지는 못했다. 그러다 6·25 전쟁 이후 남녘 땅에서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먼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천한 한국 외식문화 역사에서 그 정도만으로도 전통이 깊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진주냉면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진주에 냉면집이 있기는 했지만 누구도 진주의 어떤 냉면을 두고 진주냉면이라 부른 적은 없었다. 진주냉면의 탄생 스토리는 이렇다.
2000년대 초 한 음식 연구가가 진주에 나타났다. 그는 진주 사람들에게 이때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진주냉면이란 것이 있었는데, 평양냉면만큼 유명했다. 그 내용이 북한 과학백과사전에 실려 있다.”
진주의 음식문화 관련 인사들은 이 말에 솔깃했다. 그 유명한 평양냉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진주냉면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 있었다 하니 무척 고무됐을 것이다.
그들은 북한에서 말한 그 진주냉면의 흔적을 찾기로 했다. 그러나 어떤 냉면을 진주냉면이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진주냉면 조리법이 나와 있는 문헌도 없었다. 그렇다고 진주냉면이라는 이름을 덜렁 내버려둘 수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진주냉면을 개발하기로 했다. 평양냉면은 쇠고기 국물을 기본으로 하니 이와 차별화하면서도 진주라는 지역 특징을 살릴 수 있는 해물육수를 기획했다. 멸치, 새우, 문어 등으로 국물을 내어 식힌 뒤 메밀국수를 말았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진주와 그 근처 도시에서는 냉면 또는 밀면 등에 육전을 올리는데 진주냉면에도 이 육전을 올리기로 했다. 그렇게 하여 진주냉면을 복원했다 하고는 외부에 알렸다.
진주냉면 개발 이후 문제가 생겼다. 그 조리법대로 냉면을 내는 식당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 개발한 음식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이름으로 냉면을 내는 식당을 섭외해 그 조리법을 알려주고 진주냉면이라 간판을 달자고 설득했다. 간판 비용은 물론 그 식당에서 낸 것은 아니다. 개발된 진주냉면 조리법을 전수했으나 조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육수 내는 방법이 중간에 바뀌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내 여러 매체가 대대적으로 진주냉면을 보도했는데, 중간에 바뀐 그 조리법이 오히려 특징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묘한 조리법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하여 아주 잠깐 만에 진주냉면은 한반도를 대표하는 냉면으로 자리를 굳혔다.
진주에서 느낀 것인데, 처음 ‘진주냉면 발굴 또는 조작 작업’에 나서게 한 북한의 그 책을 진주 사람들은 마치 신비의 서적이나 되는 듯 여기는 게 아닌가 싶었다. 북한 서적이니 쉽게 구할 수 없으리라는 착각에 더해 평양냉면을 문화자산으로 가진 북한이 내놓은 과학백과사전이라고 하니 그 책 내용에 신비의 권위를 입힌 것이다.
진주냉면이 거론돼 있다는 그 책은 1994년 북한에서 낸 ‘조선의 민속전통’이다. 한민족의 전통문화를 총 7권으로 엮은 책이다. 제1권이 식생활 풍습인데, 그 책에 딱 한 줄 이런 구절이 있다.
“랭면 가운데서 제일로 일러주는 것이 평양랭면과 진주랭면이었다.”
이 문장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