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스센터
스타타워는 강남지역의 대표적 랜드마크(어떤 지역을 식별하는 데 목표물로서 적당한 사물) 빌딩이다. 연면적만 6만4300평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오피스 빌딩. 애초 현대산업개발 소유였으나 2001년 6월 론스타가 7000여억원(세금 등 포함)에 매입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론스타는 3년6개월 만에 2000억원이 넘는 차익을 거둔 셈이다.
강남에 스타타워가 있다면, 서울 강북지역에는 중구 태평로1가 ‘서울파이낸스센터(SFC)’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급 빌딩’인 SFC 또한 GIC 소유다. GIC는 2000년 4월 이 빌딩을 약 3600억원에 사들였다. 업계가 추정하는 SFC의 현 시가는 약 7000억원이다.
GIC는 싱가포르 정부 기관이다. 기금 규모만 2000억 달러(약 200조원)에 이르는 세계 부동산 시장의 ‘큰손’이다. 1999년 한국에 진출, SFC 외에도 서울 무교동 코오롱빌딩(매입가 약 760억원)과 현대상선빌딩(430억원), 회현동 프라임타워(490억원), 신천동 시그마타워(330억원) 등 대형 빌딩 7개와 수도권 내 다수의 ‘2001아울렛’을 사들였다.
사실 서울 시내에는 스타타워나 SFC보다 더 눈에 띄는 빌딩이 여럿 있다. 여의도 ‘63빌딩’, 종로2가의 ‘서울종로타워’, 삼성동의 ‘포스코빌딩’, 역삼동 ‘LG강남타워’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모두 재벌그룹 소유로, 임대사업보다는 자체 수요를 위해 건설한 것이다. 때문에 기본 가치 외에 별다른 프리미엄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동산 거래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에 비해 스타타워와 SFC는 철저히 임대사업을 통한 자산가치 상승 및 수익 확대를 목표로 한다. 어떤 회사를 입주시키고, 아케이드를 어떻게 구성하며, 빌딩 안팎의 고객을 얼마만큼 만족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다. 두 빌딩의 거래 가격이 3~4년 사이에 2000억~3500억원이나 뛰어오른 것은, 이들이 그만큼 철저한 기획·관리를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품으로 재탄생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SFC의 성공은 관련 업계에서 ‘빌딩 관리에서 선진 기법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스타타워.
KAA 전경돈(37) 상무는 GIC가 SFC를 인수한 이래 줄곧 관리를 맡아왔다. 전 상무는 “인수 당시 SFC는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다. 식당가 등이 들어선 지금의 ‘SFC몰’(지하 1~3층)은 주차장, 창고, 수영장 부지 등으로 버려져 있다시피 했다. 이 공간을 살리고, 동시에 빌딩을 이름 그대로 ‘서울의 금융 중심부’로 만들기 위해 5개 컨셉트(최고급·권위·전통적 부·젊은 고액 연봉자의 상징·정장 스타일 패션 선도) 중심의 마스터플랜을 짰다”고 설명했다. 고급형 서버 호텔인 ‘프리즌커뮤니케이션’을 유치하는 등 최첨단 인텔리전트 빌딩으로서의 면모도 보강했다.
싱가포르 기관 GIC 소유 … 임대사업 통해 수익 확대
작업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각 분야 1위 업체를 입주사로 유치하는 것, 다른 하나는 지하 공간을 빌딩 수준에 걸맞은 고급 식당가로 변모시키는 것이었다. KAA는 ‘포춘’지 선정 100대 기업을 분석한 끝에 당시 국내에서 외국계 컨설팅업체의 대표격으로 통하던 맥킨지를 먼저 공략했다. 인근 교보빌딩을 사용하던 맥킨지가 SFC 입주를 결정하자 스탠다드차터드뱅크, 딜로이트컨설팅 등 외국계 금융·컨설팅 업체들이 줄줄이 그 뒤를 따랐다.
지하 SFC몰 또한 특급호텔 수준의 레스토랑 유치에 힘을 쏟았다. 전 상무는 “강북지역에는 호텔 외에 비즈니스 무대가 될 만한 식당가가 없다는 데 착안했다. 입주사의 50~60%가 다국적 기업인 까닭에 그에 맞는 구성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한식 중식 일식뿐 아니라 인도 타이 몽골 베트남 프랑스 이탈리아 등 국가별 전문 레스토랑 중 ‘1등’만을 골랐다. 입점을 타진해오는 레스토랑이 많았지만 입주사를 고를 때처럼 컨셉트에 맞지 않으면 가차없이 거절했다. ‘어두운 지하’라는 단점을 상쇄하기 위해 광화문 쪽으로 출구를 하나 더 뚫어 새로운 동선을 창출했고, 기존의 무교동 쪽 출구에는 퓨전·캐주얼 레스토랑들을 배치해 주변 식당가를 찾던 유동인구까지 끌어들일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노력 끝에 SFC는 사무용 빌딩의 수준을 넘어 강북지역의 ‘비즈니스 명소’로 각광받게 됐다.
SFC가 ‘화장(소프트웨어)’을 통해 ‘세련된 미인’으로 거듭났다면, 스타타워는 뼈대(하드웨어) 자체가 튼실한 ‘천하장사’ 스타일이다. 자재, 기술은 물론 인텔리전트 빌딩으로서도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화상회의시스템과 랜시스템, 빌딩안내시스템, 관리시스템, 음성전자교환시스템 등을 도입해 정보통신부로부터 초고속 정보통신 1등급 인증을 획득했다. 첨단 공법의 특수 내진 설계로 리히터 6~7의 강진에도 안전하다. 2002년에는 포스코 강구조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스타타워, 한국파이낸스센터와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빌딩들. 왼쪽부터 포스코빌딩, LG강남타워, 서울종로타워.
이번 거래에서 론스타 측 주관사로 일한 부동산서비스사 CB리차드엘리스코리아 관계자는 “스타타워는 사무용 빌딩으로서는 국내에서 경쟁자를 찾기 힘들 만큼 뛰어나다. 국내 최대 면적에, 기둥도 없어 공간 배치에 거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론스타는 스타타워를 매입한 뒤 임대사업에 공을 들여 빌딩 가치를 크게 끌어올렸다. 다국적 기업들과 ‘네이버’로 유명한 NHN 등 일류 정보통신 벤처기업, 금융회사 등을 유치해 ‘고급화’를 실현했다. 3층 높이의 최고급 피트니스센터, 다양한 구성의 아케이드는 스타타워의 자랑. 지하철 역삼역 연결통로 부근에는 지하철 이용객을 위한 스낵 음료 판매점을 설치해 유동인구를 끌어모으는 데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새로 스타타워의 관리를 맡은 KAA 측은 “손대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고 했다. 신뢰도에 문제가 있는 입주사를 정리하고 지하 아케이드의 컨셉트도 새롭게 다듬어야 한다는 것. 특히 복층 구조로 돼 있는 30층의 경우, 압도적 조망과 탁 트인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KAA 임대마케팅팀 정병화 과장은 “특수한 용도의 고급 사무공간이나 최고급 레스토랑이 적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무공간으로서는 맨 꼭대기 층인 41~42층도 복층 구조다. 여기에는 브리티시아메리칸타바코코리아가 입주해 있다. 전망, 공간은 물론 인테리어 수준도 최고급이다. 한 부동산업계 인사는 “업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다소 부정적인 만큼, 직원들에게 최상의 대우를 해주겠다는 회사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국적 부동산서비스사인 쿠시맨&웨이크필드의 윤원섭 팀장은 “이전에는 빌딩 관리라 하면 건물주의 ‘친척 아저씨’가 유지 보수에나 힘쓰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진짜 관리는 빌딩의 컨셉트 잡기부터 임대, 퀄리티 유지, 그를 통한 자산가치 상승까지를 두루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에 외국 자본이 유입되고, 그들이 투자한 물건을 관리해줄 다국적 관리회사들이 속속 상륙하면서, 이제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윤 팀장은 “부동산 관리의 선진 기법이란 사실 별것 아니다. 건물주가 ‘갑’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고객인 입주사들에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SFC와 스타타워는 바로 그와 같은 발상의 전환으로, 고정 자산인 빌딩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추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