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17일,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 이란의 알리 다에이(35·피루지 FC)가 세계 최초로 A매치 100호 골의 고지를 넘어섰다.
다에이는 이란과 라오스의 2006년 독일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마지막 경기에 선발 출전해 전반에 해트트릭을 기록한 뒤 후반에도 한 골을 보태며 4골을 퍼부어 7대 0 승리를 이끌어냈다. 다에이는 이제까지 A매치 98골을 기록했기 때문에 이날 4골을 보태, A매치 통산 133경기에 나서 102골을 기록하며 세계 축구 사상 첫 A매치 100골의 금자탑을 쌓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A매치에서 터진 골을 따로 기록한다. A매치에서 나온 골이라면 세계랭킹 1위 팀과 200위 팀의 경기에서 나온 골이라도 국내 리그나 올림픽, 각급 청소년대표팀 간의 경기에서 나온 골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녹슬지 않은 기량 … 대기록은 진행 중
FIFA가 인정하는 A매치에는 월드컵 본선이나 각 지역 예선은 물론 유럽축구선수권대회·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같은 대륙별 선수권대회 등의 본선과 지역예선, 그리고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메르데카축구선수권대회 등 지역 선수권대회를 비롯해서 국가대표팀 간의 친선경기나 평가전이 모두 포함된다. 그러나 올림픽 축구 예선이나 본선, 각급 청소년축구대회는 포함되지 않는다. 만약 한 팀은 국가대표인데 다른 한 팀이 올림픽 대표라면 그것도 A매치로 인정받지 못한다. 반드시 FIFA가 인정하는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라야만 한다. 그래서 A매치에서 많은 골을 올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축구황제 펠레도 월드컵과 프로리그 등을 통해서 모두 1291골을 넣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지만 A매치에서는 77골을 넣는 데 그쳤다.
다에이는 1969년 3월21일생으로 99~2000시즌에 독일 분데스리가 헤르타 베를린 팀 소속으로 유럽축구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해 이탈리아 AC 밀란 전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챔피언스 리그에서 득점을 올렸다.
다에이는 97~98시즌에 카타르의 ‘알 싸드 도하’ 팀에서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르미니아빌레펠트로 이적해 처음으로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유럽 무대에서도 189cm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헤딩슛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다에이는 큰 키에다 점프력까지 겸비해 골 문 쪽으로 날아오는 크로스나 높은 패스 등에서 대부분의 상대편 수비수들을 제치고 솟아올라 제공권을 장악한다. 헤딩슛을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볼이 떨어지는 위치를 제대로 찾는 볼 감각이 있어야 한다. 다에이는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 선수다. 게다가 볼을 다루는 발재간까지 갖추고 있어 전문인 헤딩슛뿐 아니라 상대편 볼 패스를 가로채서는 골 문으로 몰고 가 슛을 성공시키곤 한다.
다에이는 대학시절 그의 뛰어난 기량을 일찌감치 눈여겨본 마누체르 나자리에 의해 이란의 2부 리그 축구팀인 탁시라니에서 뛰게 된다. 첫 시즌에서 14골을 기록하는 등 발군의 활약을 해 1부 리그 팀인 테야랏으로 스카우트되었다. 테야랏에서 치른 시즌 30경기에서 27골을 넣어 92년 이란리그 득점왕에 등극했다. 이후 4차례나 더 득점 1위를 차지해 이란에서만 5차례 득점왕에 올랐다.
96 亞대회에서 한국에 6대 2 참패 안겨
다에이는 카타르에서 열린 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전에서부터 이란 대표로 발탁되었는데 그의 뛰어난 기량으로 보아 비교적 늦게 대표팀에 합류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최우수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에이는 한국 축구에 쓰라린 기억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는 96년 12월 아랍에미리트에서 벌어진 제11회 아시안컵 대회 8강전에서 4골을 기록하며 한국에 6대 2란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 이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2대 0으로 이기고 있다가 다에이의 활약으로 무려 6골을 실점하고 2대 6으로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다에이는 당시 6경기에 출장, 모두 8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다에이는 카타르에서 활약하다가 그의 기량을 눈여겨본 바이에른 뮌헨의 매니저에게 발탁되어 98~99시즌부터 독일 명문 바이에른 뮌헨의 유니폼을 입고 활약하게 된다. 그러나 워낙 걸출한 스타들이 많아 주전으로 뛰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주로 후반 교체선수로 활약하던 중 시즌 종료 직전 헤르타 베를린이 바이에른 뮌헨에 다에이의 트레이드를 요청해 헤르타 베를린으로 옮겼다.
분데스리가에서는 97~98시즌에 아르메니아 빌레펠트에서 25경기에 출전해서 7골을 넣었고, 98~99시즌에는 바이에른 뮌헨 선수로 23경기에 출전해 6골을 터뜨렸다. 이후 헤르타 베를린에서 3시즌을 더 활약하면서 59경기에 나가 6골을 터뜨려 분데스리가 통산 107경기에 출전해서 19골을 터뜨렸다.
A매치 역대 2위는 헝가리의 페렌 푸스카스가 기록한 84골이다. ‘왼발의 달인’으로 불렸던 푸스카스는 54년 스위스 월드컵축구대회에서 헝가리가 9대 0으로 한국을 이길 때 2골을 넣는 등 월드컵에서 4골을 포함해 모두 84골을 기록했다.
축구황제 펠레는 스웨덴월드컵 등 4차례의 월드컵에서 기록한 12골을 포함해 A매치 통산 77골을 넣어 이 부문 3위에 올라 있다. A매치 통산 2, 3위를 달리는 푸스카스와 펠레가 이미 은퇴했고 4위권의 선수들도 70호 골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다에이의 ‘A매치 100호 골 돌파’ 기록은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에이는 이란과 라오스의 2006년 독일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마지막 경기에 선발 출전해 전반에 해트트릭을 기록한 뒤 후반에도 한 골을 보태며 4골을 퍼부어 7대 0 승리를 이끌어냈다. 다에이는 이제까지 A매치 98골을 기록했기 때문에 이날 4골을 보태, A매치 통산 133경기에 나서 102골을 기록하며 세계 축구 사상 첫 A매치 100골의 금자탑을 쌓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A매치에서 터진 골을 따로 기록한다. A매치에서 나온 골이라면 세계랭킹 1위 팀과 200위 팀의 경기에서 나온 골이라도 국내 리그나 올림픽, 각급 청소년대표팀 간의 경기에서 나온 골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녹슬지 않은 기량 … 대기록은 진행 중
FIFA가 인정하는 A매치에는 월드컵 본선이나 각 지역 예선은 물론 유럽축구선수권대회·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같은 대륙별 선수권대회 등의 본선과 지역예선, 그리고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메르데카축구선수권대회 등 지역 선수권대회를 비롯해서 국가대표팀 간의 친선경기나 평가전이 모두 포함된다. 그러나 올림픽 축구 예선이나 본선, 각급 청소년축구대회는 포함되지 않는다. 만약 한 팀은 국가대표인데 다른 한 팀이 올림픽 대표라면 그것도 A매치로 인정받지 못한다. 반드시 FIFA가 인정하는 국가대표팀 간의 경기라야만 한다. 그래서 A매치에서 많은 골을 올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축구황제 펠레도 월드컵과 프로리그 등을 통해서 모두 1291골을 넣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지만 A매치에서는 77골을 넣는 데 그쳤다.
다에이는 1969년 3월21일생으로 99~2000시즌에 독일 분데스리가 헤르타 베를린 팀 소속으로 유럽축구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해 이탈리아 AC 밀란 전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챔피언스 리그에서 득점을 올렸다.
다에이는 97~98시즌에 카타르의 ‘알 싸드 도하’ 팀에서 독일 분데스리가의 아르미니아빌레펠트로 이적해 처음으로 유럽 무대에 진출했다. 유럽 무대에서도 189cm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헤딩슛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다에이는 큰 키에다 점프력까지 겸비해 골 문 쪽으로 날아오는 크로스나 높은 패스 등에서 대부분의 상대편 수비수들을 제치고 솟아올라 제공권을 장악한다. 헤딩슛을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볼이 떨어지는 위치를 제대로 찾는 볼 감각이 있어야 한다. 다에이는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 선수다. 게다가 볼을 다루는 발재간까지 갖추고 있어 전문인 헤딩슛뿐 아니라 상대편 볼 패스를 가로채서는 골 문으로 몰고 가 슛을 성공시키곤 한다.
다에이는 대학시절 그의 뛰어난 기량을 일찌감치 눈여겨본 마누체르 나자리에 의해 이란의 2부 리그 축구팀인 탁시라니에서 뛰게 된다. 첫 시즌에서 14골을 기록하는 등 발군의 활약을 해 1부 리그 팀인 테야랏으로 스카우트되었다. 테야랏에서 치른 시즌 30경기에서 27골을 넣어 92년 이란리그 득점왕에 등극했다. 이후 4차례나 더 득점 1위를 차지해 이란에서만 5차례 득점왕에 올랐다.
96 亞대회에서 한국에 6대 2 참패 안겨
다에이는 카타르에서 열린 93년 미국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전에서부터 이란 대표로 발탁되었는데 그의 뛰어난 기량으로 보아 비교적 늦게 대표팀에 합류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최우수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에이는 한국 축구에 쓰라린 기억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는 96년 12월 아랍에미리트에서 벌어진 제11회 아시안컵 대회 8강전에서 4골을 기록하며 한국에 6대 2란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 이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2대 0으로 이기고 있다가 다에이의 활약으로 무려 6골을 실점하고 2대 6으로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다에이는 당시 6경기에 출장, 모두 8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다에이는 카타르에서 활약하다가 그의 기량을 눈여겨본 바이에른 뮌헨의 매니저에게 발탁되어 98~99시즌부터 독일 명문 바이에른 뮌헨의 유니폼을 입고 활약하게 된다. 그러나 워낙 걸출한 스타들이 많아 주전으로 뛰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주로 후반 교체선수로 활약하던 중 시즌 종료 직전 헤르타 베를린이 바이에른 뮌헨에 다에이의 트레이드를 요청해 헤르타 베를린으로 옮겼다.
분데스리가에서는 97~98시즌에 아르메니아 빌레펠트에서 25경기에 출전해서 7골을 넣었고, 98~99시즌에는 바이에른 뮌헨 선수로 23경기에 출전해 6골을 터뜨렸다. 이후 헤르타 베를린에서 3시즌을 더 활약하면서 59경기에 나가 6골을 터뜨려 분데스리가 통산 107경기에 출전해서 19골을 터뜨렸다.
A매치 역대 2위는 헝가리의 페렌 푸스카스가 기록한 84골이다. ‘왼발의 달인’으로 불렸던 푸스카스는 54년 스위스 월드컵축구대회에서 헝가리가 9대 0으로 한국을 이길 때 2골을 넣는 등 월드컵에서 4골을 포함해 모두 84골을 기록했다.
축구황제 펠레는 스웨덴월드컵 등 4차례의 월드컵에서 기록한 12골을 포함해 A매치 통산 77골을 넣어 이 부문 3위에 올라 있다. A매치 통산 2, 3위를 달리는 푸스카스와 펠레가 이미 은퇴했고 4위권의 선수들도 70호 골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다에이의 ‘A매치 100호 골 돌파’ 기록은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