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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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주 35시간 근무 너무 짧다”

라파랭 총리 근로시간 연장 공식화 … 야당에선 ‘사회적 재산 폐기’ 비판 목소리

  • 파리=지동혁 통신원 jeast@naver.com

    입력2005-01-13 1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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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노동시간’이라 불리며 주변국 근로자들의 부러움을 사던 프랑스의 주 35시간 법정 근로제가 난관에 부닥쳤다.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는 12월9일 국정연설을 통해 새해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로 현행 주 35시간 노동 규정을 완화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프랑스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은 노사 합의로 주당 근로시간을 48시간 내에서 연장 가능토록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프랑스 국민들은 구체적인 내용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삶의 질 향상 vs 경제 성장 저해

    1998년 사회당 정부가 고용을 늘린다는 취지로 도입해 2000년부터 발효된 현행 법정 근로제는 기존의 주당 법정 근로시간이던 39시간을 35시간으로 줄였다. 당시 사회고용장관 마르틴 오브리의 이름을 따 ‘오브리 법안’으로 불리는 이 규정은 조스팽 정부의 대표적 업적 가운데 하나로 손꼽혀왔다. 임금 삭감 없이 노동시간만 줄인 이 제도는 노동계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을 뿐 아니라 프랑스인들의 생활 리듬을 바꾸어놓을 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의 새로운 정의에 대해 사회 전체가 활발한 고민을 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국민들의 ‘삶의 질’을 한 차원 높였다고 호평받은 이 법안은 동시에 프랑스 경제성장의 가장 큰 저해요인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집권 중도우파 정부의 주된 개혁 대상으로 떠올랐다.

    라파랭 총리의 발표로 ‘노동시간 연장’ 방침이 공식화되자 이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즉각 두 갈래로 나뉘었다. 먼저 여권은 경제 난국에 대처하는 적절한 조치라며 환영 일색이다. 집권당 대중운동연합(UMP) 신임 총재 니콜라 사르코지는 “주 35시간 근무제가 프랑스 경제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국민들의 근로 의욕을 감퇴시키는 한편,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켜왔다”고 비판하면서 “이번 조치는 명확한 진보의 성격을 갖는다”고 단언했다. 국회 경제위원장이자 같은 당 소속의 파트릭 올리에 의원은 완화 조치가 “용기 있고 만족스런 결정”이라고 추켜세우며 “더욱 많은 소득을 위해 더 많이 일하려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야당은 이와 상반된 반응을 나타냈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PS) 대표는 “정부의 개정안이 실질적으로 주 35시간 노동 규정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정부가 사회적인 재산을 폐기하려 한다”며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그는 정부가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단독으로 진행했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녹색당, 공산당 등 여타 좌파 정당들도 성명을 통해 이번 조치를 ‘사회적 퇴보’로 규정하며 “노동자들의 권익 축소를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2000년 20명 이상 고용한 기업에 우선적으로 적용된 주 35시간 근무제는 2002년 전 사업장으로 확대되었다. 2003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 봉급생활자의 60%가량인 1000만명의 프랑스 근로자가 주 35시간 근무제의 혜택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경우 주 35시간 근무제를 규정대로 지키는 데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뒤따랐지만, 대기업에서는 대체적으로 정착됐다.

    주 35시간 근무제의 완화를 앞두고 프랑스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의문은 이러한 조치가 과연 노동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97년 사회당 정부가 처음으로 주 35시간 정책을 거론할 때 내세운 예상 효과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인다는 것이었다. 즉 개인의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창출되는 추가 노동 수요로 더 많은 사람이 고용 기회를 나눠가질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러한 예상은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프랑스의 실업률은 현재 10%에 근접한 수준으로 유럽에서 손꼽히는 실업률 상위국이다.

    한편 때맞추어 경제·노동계 일각에서는 지난 5년간 시행된 주 35시간 근무제가 낳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대한 분석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먼저 이 제도의 최대 수혜자가 저소득 블루칼라층이 아니라 간부급 이상의 화이트칼라층이란 지적이 대두됐다. 일선 노동현장에서는 시간외근무가 더 빈번하게 이뤄지는 데다 근무시간 축소로 여가시간이 늘어났지만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용자·근로자 ‘동상이몽’ 촉각

    그리고 주 35시간 근무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지적도 나왔다. 업무 분화가 조직적으로 이뤄진 대기업에서는 근무시간 축소에 따른 결원을 다른 직원으로 대체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우나, 기업이 작을수록 각자에게 맡겨진 업무를 다른 직원이 수행한다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제도가 일률적으로 도입된 공기업에서는 민간기업에서보다 더욱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철도청이나 우체국, 공공병원 등에서는 근무시간 축소 시행 이후 인력 부족과 그에 따른 과중한 업무 강도가 여러 차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부족한 인원을 신규채용으로 모두 보충하기에는 국가의 재정 지원이 뒤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조치 시행에는 재계의 꾸준한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노동계는 개선된 근로 조건에 만족감을 표현한 반면, 기업 측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해왔다. 특히 올여름 보쉬(Bosch)나 세브(Seb) 등 몇몇 기업은 주 35시간 근무제가 지속될 경우 프랑스 내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위협 아닌 위협을 했다. 독일 기업 보쉬는 7월 노-사 간 협의를 토대로 프랑스 내 공장에 대해 동일한 임금 아래 근로시간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이 ‘사건’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기업들이 잇따라 비슷한 결정을 내리게 하는 기폭제 구실을 했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등 인접 나라의 노동시간 연장 경향 또한 프랑스의 근로시간 완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들 유럽 국가에서 잇따라 노동시간 연장 분위기가 확산되자 프랑스 정부도 이를 선례 삼아 개정안 도입을 서둘렀다는 분석이다.

    사실 주 35시간 근무제에 대한 첫 번째 개정안이 2003년 도입된 바 있으나 당시엔 그다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에 더욱 강력한 의지를 앞세워 완화 조치를 추진하면서 근로자들의 구매력이 상승하고 이에 따라 경제 성장과 고용 촉진이 뒤따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사용자와 근로자가 동상이몽을 하고 있음이 관찰되고 있다. 근로자들은 추가 노동시간 허용에 따른 소득 증가를 기대하는 반면, 사용자들은 임금 동결에 기반한 노동시간 유연화 적용에 초점을 맞추려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노동시장과 관련된 또 하나의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 새해를 맞이한 요즘 프랑스인들은 이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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