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전시 중인 구동희의 작품 ‘기념품’.
‘지구 다이버’라는 설치 조각은 볼링장을 연상시킨다. 끝 부분이 구부러진 볼링장 레일에 휠체어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작품은 관객들로 하여금 수직운동과 수평운동의 역학관계에 대해 동물적으로 반응하게 하는 한편, 운명이나 죽음의 불가항력에 대한 긴장감과 공포심을 유발한다. 또 다른 작품 ‘발바닥 굳은 상은 얼지 않는다’는 움직이지 않고 누워서 할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위한 멀티태스크 침대다. Y자형의 침대에서 관객은 ‘지구 다이버’와는 반대로 우리의 나태한 일상의 모든 순간들에 대한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 중 백미는 단연 ‘기념품’이다. 전시장은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여 있고, 방 한가운데는 까맣게 타버린 사찰이 있다. 바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에 등장하는 금각사다. 작가는 소설에서 처음 알게 된 금각사를 그리며 교토로 직접 보러 갔지만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환상 속의 금각사는 온데간데없고, 관광지로 전락해 조야하고 키치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작가는 이후 이 경험을 되짚어 금각사 모형을 최대한 정교하게 제작한 뒤 그것을 다시 불태워버렸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환상과 현실의 금각사는 폐허의 아름다움을 발하는 또 다른 금각사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역설적 어법은 구동희의 과거 영상작업 ‘Jump Jump Jump’에서도 유사한 방식을 취했다. 70대 노인으로 분장한 20대 여인이 쉬지 않고 줄넘기를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땀으로 분장이 지워져 본래의 젊은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찍은 영상작품이었다.
‘지구 다이버’, ‘정전기와 실뜨기’(왼쪽부터).
특히 구동희의 영상작업에서 주목되는 것은 등장인물의 캐스팅이다. 이번에는 동춘서커스 단원으로 실제 활동하는 10대의 중국인을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한다. 작가가 부여한 낯설고 범상치 않은 상황 속에서 배우들은 더욱 기묘한 오브제로 빛을 발한다. 1월23일부터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시작한 전시는 3월16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