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 책은 나오자마자 북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를 원전으로 무성 흑백영화, 유성 흑백영화, 컬러영화, 만화영화, TV 시리즈 그리고 뮤지컬이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제작될 만큼 세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캐나다 우편당국이 기념우표를 제작 중인 것을 비롯해 캐나다 전국 차원에서, 또는 원작의 고향인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 사람들의 주도로 빨간 머리 앤 탄생 100주년 기념을 위한 갖가지 이벤트가 마련되고 있다. 이 나라 작가 버즈 윌슨은 몽고메리 후손의 동의 아래 고아 소녀 앤이 원작에 처음 등장하는 8세 이전의 이야기인 이른바 ‘프리퀄(prequel)’을 집필하고 있다. 한 작품이 일단락된 후 이어지는 뒷이야기를 가리키는 ‘속편’과 달리 프리퀄은 그 전 이야기를 쓴다는 점에서 ‘마이너스 속편’에 해당한다.
앤 연작소설은 박경리 선생의 ‘토지’처럼 웅장하고 처절한 줄거리가 아니라 따뜻하고 잔잔한 이야기다. 앤은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자라다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의 한 농가로 오게 된다. 집주인은 당초 남자 고아를 데려다 일꾼으로 부릴 요량이었지만, 업무 착오로 막상 보내진 아이는 소녀였다. 주인은 소녀를 돌려보낼 생각이었으나 그냥 데리고 있기로 마음을 바꾼다. 앤은 빨간 머리에 주근깨투성이인 결코 예쁘장한 아이가 아니었지만 주인은 앤의 진솔하고 거리낌없는 말투에서 무언가 ‘끌림’을 느낀다.
에이번리 마을 한 농가 모델 지금도 보전
앤이 농촌마을에서 아이들과 놀고 다투고 공부하면서 사춘기 소녀가 돼가는 과정이 연작의 첫 번째 이야기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중년까지의 희생, 사랑, 고뇌, 자기성취 과정이 나머지 7편의 이야기다.
앤 이야기의 원작은 세계 36개 국어로 번역됐다. 한국에도 1960년대에 소개됐다. 당시 한국어판의 제목은 ‘빨강머리 앤’이었는데, 이는 앞서 출간된 일본어판의 제목을 인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제에 나오는 ‘게이블(Gable)’은 서양의 건축용어로, 지붕 아래에 있는 다락방에 창을 내기 위해 원지붕과 별도로 만든 뾰족지붕을 뜻한다. 앤이 살던 농가는 게이블 집이었다.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에 있는 게이블 형태의 농가. 앤이 살던 집의 모델이 된 농가로 대표적인 앤 관광코스다(오른쪽). 루시 몽고메리의 연작소설 ‘초록 게이블의 앤’은 전 세계 36개 국어로 번역된 청소년 문학의 고전이다.
원작자 몽고메리는 이 섬의 북쪽 해안마을 캐번디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에이번리 마을은 캐번디시를 모델로 한 허구의 지명이며, 초록 게이블 집은 몽고메리의 생가 부근에 있던 한 농가를 모델로 삼은 것이다. 이 집은 지금도 보전돼 관광명소가 됐다.
유난히 일본인, 그중에서도 여성들이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와 ‘앤 관광’에 관심이 많다. 도쿄에서 이 섬까지 직항편이 마련돼 있을 정도다. 이런 현상을 두고 캐나다인들은 남편에게 절대복종해야 하는 전통 가치 속에서 살아온 일본 여성들이 앤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데다, 섬의 풍광에서 옛 일본 시골의 원형 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본국에서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며 캐번디시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일본인들도 있다. 앤 말고도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에서 관광산업 잠재력이 큰 상품은 지역 특산물인 바닷가재다. ‘앤 관광’에 바닷가재 요리, 여기에 골프 정도를 곁들인다면 관광 붐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 주민들은 이런 사업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조용하고 느린 것이 좋다”고 여길 뿐이다. 주민들 중에는 바닷가재를 한국의 영덕대게처럼 브랜드화하기보다는 그 껍데기를 퇴비에 섞어 밭거름으로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