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뷰티 코아 도산점의 민상 원장.
새치가 많던 한 선배는 ‘첫 염색은 잘하는 데서 해야 한다’는 아내의 권유에 서울 청담동 미용실에 다녀왔다고 했다. 남성도 미용실을 찾는 시대 흐름에 맞춰 이발소에서 미용실로 전환한 그였지만, 고급 미용실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발레파킹(대리주차) 같은 서비스도 낯설었지만, 무엇보다 염색 한 번 하는 비용이 일반 동네 미용실의 배가 넘는 사실에 놀랐다는 것. 집 근처 또는 이화여대나 명동 근처 미용실만 이용해온 기자는 문득 궁금해졌다. 확실히 다르긴 다른 것일까?
이른바 ‘살롱’이라 불리는, 청담동 일대 고급 미용실은 보통 청담동 학동사거리에서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최근에는 영역이 확장돼 도산공원 근처가 ‘뜨는’ 지역이라고 한다). 도로가 넓고 주차공간도 많은 반면, 대중교통의 근접도가 떨어져 기자 같은 뚜벅이족은 애초 배제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청담동 미용실의 대표격으로 통하는 한 미용실에 찾아간 것은 일요일 정오경. 휴일인 만큼 북적거리리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는 한산했다.
“금요일과 토요일에 손님이 가장 몰려요. 일요일은 외곽으로 나가는 분들이 많아서 디자이너 선생님 중에도 쉬는 분들이 있죠.”
톱디자이너 커트 5만~10만원, 염색은 30만~40만원
살갑게 인사를 건네는 20대 초반 스태프는 “하루 한 번만 사용한다”는 가운을 입혀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오전엔 기혼여성 고객이 많고, 저녁엔 직장인이 많다는 식의 ‘미용실 시간표’도 이곳에선 적용되지 않는다. 기혼여성이라도 집안일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아침시간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주부라도 대화 소재가 아이나 남편보다 자신과 친구들에 대한 것이 많아요. 아무래도 집안일에서 자유로운 분들이 많으니까요.”
강남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은 이곳의 비용이나 서비스와도 직결된다. 자리에 앉자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낮춘 한 스태프가 메뉴판을 보여준다. 웬만한 커트는 3만원대. 톱클래스 헤어디자이너가 자를 경우에는 5만~10만원 한다. 웨이브를 넣거나 염색을 하는 등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시술은 30만~40만원을 넘는다. 왜 비쌀까? 쓰는 제품이 달라서?
“제품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헤어)디자이너가 다르잖아요.”
40대 여성 이모 씨는 청담동 미용실만 이용한다. 그는 이화여대 앞이나 명동과 달리 “유행을 따르지 않지만 세련된” 청담동 미용실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말한다.
미용살롱 입구의 라운지. 고소득층 고객이 많은 만큼 고가 브랜드의 홍보 공간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위). 프라이빗한 서비스를 원하는 고객을 위한 VIP룸. (촬영 협조·라뷰티 코아 도산점)
“로컬 미용실에선 잡지에 나온 스타일을 따라하잖아요. 저희는 그 스타일을 만드는 거니까 확실히 다르죠.”
28세 헤어디자이너 황모 씨의 말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런던과 파리에서 헤어 관련 공부를 한 그는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미용실 디자이너들이 회의를 통해 “유명 컬렉션에 나온 스타일을 분석하고 한동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결정한다”고 했다. 그는 “타 분야 디자이너들처럼 헤어디자이너 역시 머리만 만지는 게 아니라 스타일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청담동을 비롯한 강남 일대 유명 미용살롱에서 일한다는 것은 ‘트렌드세터’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도 지닌다.이들의 고객 가운데는 연예인을 비롯한 셀레브리티도 꽤 많다.
헤어디자이너는 곧 브랜드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한 만큼 이직률도 높은 편인데, 고객이 자신의 ‘담당 선생님(헤어디자이너)’이 옮겨가는 미용실로 따라갈 때가 많다. 이는 강북이나 기타 지역에서 활동하던 헤어디자이너가 강남지역으로 옮기는 게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보통 한 디자이너는 고객이 지불하는 비용의 40~ 50%를 받는다. 톱클래스 디자이너의 경우 한 달 매출이 3000만원을 넘는 경우가 흔하며, 미용실당 억대 연봉을 받는 디자이너들도 적지 않다.
남성 고객이 40%대 … 스킨·네일 케어도 받아
이 때문에 청담동 미용살롱은 헤어디자이너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스물한 살의 곽모 양은 지난달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스태프가 됐다. 첫 월급은 50만~60만원대. 고향인 대전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미용사 자격증을 따 미용사로 일했던 그는 이곳에서 샴푸질 부터 다시 배우고 있다. 고객에게 물건 건네는 법, 시선 맞추는 법 등 정해진 방식을 따르는 게 어렵지만 “배우는 것이 많기에 열심히 하려 한다”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미용실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저녁 7시에 끝나지만, 연예인 촬영이나 웨딩 고객이 있을 땐 그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스케줄은 일정하지가 않다.
청담동 일대 미용실은 헤어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조건’이 까다롭다. 이 지역 한 미용살롱 관계자는 “청담점, 도산점 같은 강남지역과 로컬(강남 이외 지역)에서 근무하는 헤어디자이너를 구분해서 교육한다”고 말했다. 미용실에 스태프로 들어와 최종적으로 (미용사 자격증을 따는 것과 별도로) 해당 미용실의 디자이너가 되는 데 로컬이 30개월 정도 필요하다면, 강남은 48개월 이상 걸린다.
하지만 일반 서비스만으로는 강북 일대 대형 프랜차이즈 미용실과 구별되는 ‘강남적인’ 특징을 발견하긴 어렵다. 다만 이곳엔 VIP 서비스가 있다. 연예인이나 재벌가 여성, 또는 오픈된 공간을 꺼리는 남성 최고경영자(CEO)가 선호하는 VIP룸은 1~2명만을 위한 공간이다. 이곳엔 화장실, 휴식공간 등이 따로 마련돼 있고 헤어와 메이크업, 네일케어 등 모든 시술을 비롯해 음악이나 영화 감상, 식사 등을 한 공간에서 다 서비스 받을 수 있다. 비용이 2배 정도 비싸지만 팁을 포함해 100만원짜리 수표를 놓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청담점과 도산점에 지점을 둔 미용살롱 가운데 하나인 라뷰티 코아의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청담점 50억원, 도산점 4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아는 사람들만 알음알음으로 이용했던 고급 미용실 역시 대형화되고 있는 것이다. 라뷰티 코아 도산점의 민상 원장은 “이화여대 앞이나 명동 일대 미용실이 가격경쟁이 붙어 무조건 비용을 낮추는 방향으로 갔다면, 이쪽은 서비스 고급화 전략을 썼다”고 말한다. 대중(mass)과 명품(prestige product)의 합성어인 매스티지(Masstige) 바람이 바야흐로 살롱 대중화에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