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스피러시’
이런 엄청난 주장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체인지’가 9·11테러 5주년을 맞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부시와 미국 정보기관이 테러를 조작했다는 음모론인데,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보다 더 대담한 주장이다. 그러나 이 놀라운 얘기를 일축할 수만은 없는 것은 방대한 자료에 치밀한 논리로 그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9·11을 다룬 두 편의 영화가 추가로 개봉됐지만 음모론과는 상관없는 내용들이다. 아직은 음모론이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라서일까. 아니면 ‘루스 체인지’가 너무 정교해 그 이상의 완성도를 지닌 영화를 만들 엄두를 섣불리 내지 못해서일까. 그러나 언젠가는 할리우드도 이 음모론에 눈을 돌릴 것으로 보인다. 음모론은 할리우드가 좋아하는 가장 ‘영화적’인 소재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음모론 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단연 ‘컨스피러시’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음모’라는 제목으로 소개됐지만 원제는 ‘음모이론’(Conspiracy Theory)이다. 영화 제목에서부터 그렇지만 주인공을 둘러싼 상황도 음모적인 데다 세상에 나돌고 있는 온갖 음모설이 모조리 언급된다.
영화의 주인공 제리는 뉴욕의 택시기사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기사가 아니다. 그가 승객들에게 들려주는 얘기는 식수에 비금속원소가 섞여 있다는 소문이나, 국제 금융정책의 배후에 관한 비밀 등에 관한 것이다. 그가 여느 택시기사, 아니 다른 모든 이들과 다른 점은 이런 얘기들을 단순히 흥밋거리가 아니라 확고하게 진실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과거 일하던 정보기관에서 관여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제리는 처음에 정신병자 취급을 당한다. 평소 음모론에 솔깃해온 관객들이라도 제리의 얘기는 황당하게 비쳐진다. 그러나 결국 제리의 말은 상당 부분 진실인 것으로 드러난다. 관객들은 이 같은 영화의 결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음모론에 익숙한 관객들은 처음부터 제리의 말의 진실성을 믿고 예측해온 결말대로 됐다며 만족해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관객들은 처음에 황당해 보이던 제리의 캐릭터나 그의 얘기가 점차 사실인 것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보면서 적잖은 당혹감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음모론에 대한 대부분 사람들의 반응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뭔가 미심쩍고 다른 진실이 숨어 있겠지 하고 의혹의 눈길을 보내지만, 그것이 몇 가지 의혹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음모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너무나 엄청난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음모론을 다룬 또 다른 영화 ‘콘돌’에서 주인공은 정보기관 책임자에게 진실을 신문에 터뜨리겠다고 하지만 “너의 얘기는 결코 신문에 실리지 않을 것이며 너 역시 길거리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듣는다. 이건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언론의 상황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진실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저항감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많은 이들에겐 허구보다는 진실이 오히려 더 버거울 수 있는 것이다. ‘어 퓨 굿 맨’에서 제셉 대령이 내뱉은 한마디처럼. “당신들이 진실을 감당할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