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대기오염 개선사업은 정부가 수도권의 대기환경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평균 대기질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한 의욕적인 프로젝트. 현재 수도권 대기질은 OECD 최하위 수준이다. 미세먼지만 해도 수도권은 61㎍/㎥(2004년 기준)인 데 비해 런던은 20㎍/㎥(2001년), 파리 20㎍/㎥(2001년), 도쿄 33㎍/㎥(2002년) 등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서울의 대기오염 물질은 수송 분야에서 배출된 것이 76%를 차지한다. 특히 자동차 대수의 3%에 불과한 대형 경유차가 배출하는 오염물질이 전체의 36%에 달한다. 경유차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수도권 대기질 개선은 백년하청인 셈이다. 정부가 2007년 7월까지 경유값을 휘발유값의 85% 수준까지 올리기로 한 이유도 경유차 이용을 억제하기 위한 차원이다.
운행 중인 경유차에 대한 대책도 시행하고 있다. 2003년 12월 제정된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올해부터 대폭 강화된 배출가스 허용 기준을 초과한 수도권의 경유차는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부착하거나 저공해 엔진으로 개조해야 한다. 환경부는 이를 위해 2005~2014년까지 4조2824억원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올해엔 12만5000여 대의 경유차를 대상으로 3644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방침.
“환경부 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
현재 국내에서 개발된 배출가스 저감장치는 DOC(산화촉매장치)와 DPF(매연여과장치)가 있다(그림 참조). 환경부 인증을 받은 업체는 SK㈜와 현대모비스, 일진전기㈜ 등 주로 대기업이다. 레저용 차량에 부착하는 DOC는 100만원 수준이지만, 대형 화물차나 버스에 부착하는 DPF는 816만원이나 한다. 물론 정부가 그 비용 가운데 70~95%를 보조해줘 자동차 소유자의 실제 부담액은 10만~ 40만원이다.
문제는 수도권 대기오염 개선을 위해 막대한 국민 혈세가 들어가지만, 실제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부착한 경유차에 대해 환경개선부담금을 면제해주는 등 여러 혜택을 주기 때문에 이 장치를 부착하기는 하지만, 실제 운행할 때는 떼어놓거나 배기관을 따로 만든 뒤 그것으로 배출가스를 배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실토했다.
이런 현상은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이 장치를 부착하면 출력이 저하되면서 연료 소모가 증가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 운행 중인 경유차를 일일이 뒤따라 다니면서 이 장치의 부착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데, 운전자 처지에서는 경유값 한 푼 아끼는 게 더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시민단체 녹색교통운동은 5월24일 자동차 및 에너지, 환경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동차환경위원회를 발족하고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 이행 상황을 점검하기로 했다. 발족 기념 포럼 장면.
여기에 배출가스 저감장치 제작업체들의 잇속 챙기기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현재의 배출가스 저감장치는 완벽하게 검증된 제품이 아니다. 대개 배기가스 온도가 일정 온도(보통 300℃) 이상인 구간이 10% 이상일 때에 한해 효력을 발휘한다. 그럼에도 일부 제작업체에선 판매 증대를 위해 무차별적으로 이 장치를 부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한때 “환경부 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환경부도 최근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해에 이 장치를 부착한 청소차량 및 마을버스에 대해 현장점검을 했다. 환경부 교통환경관리과 관계자는 “전체 대상 408대 중 100대를 조사한 결과 30%에서 여전히 매연이 나오는 등 문제가 발견돼 이 장치 제작사 측에 시정조치 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청소차량이나 마을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배기가스 온도 조건을 맞추기가 어렵다.
환경부는 또 최근 서울시, 인천시 및 경기도 등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 적용 대상 지방자치단체와 수도권대기환경청이 함께 점검단을 구성하도록 했다. 배출가스 저감장치 부착 차량 중 육안으로 매연이 발견되는 차량에 대해 점검을 실시, 부적정한 차에 부착된 사실이 발견되면 이 장치 제작사에 대해서는 정부 보조금을 회수한다는 방침.
‘실적주의’에 사후관리 미흡
그러나 전문가들은 “처음부터 예상된 문제였음에도 환경부가 적절한 대책을 취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동차환경센터 조강래 회장은 “환경부가 지난해 1만8000대의 경유차에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부착했지만, 여러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사후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화촉매장치(DOC, Diesel Oxidation Catalyst) .장치원리 : 촉매에 배출가스를 접촉시켜 CO, HC를 CO2와 H2O로 전환하고, 동시에 미세먼지를 제거. .배출가스 저감률 : 입자상물질(PM) 25% 이상 저감. | |
DOC 장착 전 | DOC 장착 후 |
매연여과장치(DPF, Diesel Particulate Filter Trap) .장치원리 : 차량 배기라인에 설치된 매연여과장치의 필터로 PM을 포집하고, 필터에 포집된 PM을 연속적으로 처리하여 필터를 재생. .배출가스 저감률 : PM 70% 이상 저감. 필터에 포집된 PM을 처리하는 필터 재생 기술에 따라 강제재생 방식, 자연재생 방식, 복합재생 방식으로 구분. | |
시내버스 DPF 적용 사례 | |
환경부의 이런 태도는 ‘실적주의’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녹색교통운동 송상석 팀장은 “환경부가 수도권 대기환경 개선을 위한 10년 목표를 제시한 때문인지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여러 대책을 마련했지만, 정작 중요한 사후관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부가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경유차 몇 대에 붙였는지에만 관심이 있었고, 제작업체들은 이를 이용해 돈벌이를 해온 점이 없지 않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배출가스 저감장치 부착 사업은 일본 도쿄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에 이 장치를 수출했던 한 업체 관계자의 말은 환경당국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이 장치에 대한 인증 조건은 일본보다 한국이 더 엄격하다.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장치를 사전에 솎아낸다는 명목이었다. 그러나 이 장치와 관련한 문제는 한국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성능이 나쁜 장치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되도록 했다. 또 공개적으로 리콜도 실시했다. 제작업체 입장에서는 장삿속만 내세우다간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올 수 있음을 절감했고, 스스로 조건에 맞는 차량에만 부착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