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스물아홉 살의 싱글 여기자가 역시 싱글인 자신의 친구, 선배, 후배, 직장동료, 선배의 친구, 후배의 선배 등과 한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9월11일부터 14일까지 모두 10명과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이들의 나이는 요즘 사회에서 ‘결혼적령기’로 통하는 27~34세로 모두 4년제 대학을 졸업했으며(일부는 석사 학위 취득),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들입니다. 나이는 모두 한국 나이이며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올해 28세인 윤영 씨는 미국으로 MBA 유학을 떠나는 친구의 송별회 모임 이야기부터 꺼냈다. “외국어고등학교 동창 8명이 모였어요. 판사, 레지던트, 피부과 병원장, 은행이나 대기업 다니는 친구…. 모두들 잘나가는 전문직 종사자들이죠. 근데 남자친구 있는 애는 한 명도 없는 거 있죠! ‘요새 남자들 씨가 다 말랐다’며 함께 한숨을 쉬었어요, 에휴.”

민정 씨는 2006년 1월, 31세라는 부담스러운(?) 나이에 부모의 만류에도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같이 살기에는 성격이 잘 맞지 않고, 남자친구의 직장을 따라 지방을 옮겨 다니며 살아야 한다는 점이 이별의 변(辯). 이별 후 민정 씨는 여러 번 맞선과 소개팅을 했다. “보통은 저보다 직장이나 학벌 면에서 수준이 조금 낮은 남자를 소개받게 되더라고요. 나이가 좀 들어서인 것 같아요.” 홍민(33) 씨는 “정 가는 여자들이 별로 없다”고 했다. “보통 26~28세의 여성들을 소개받는데, 내가 나이가 좀 많아서 그런가 꺼린다는 눈치가 보여. 괜찮은 여성들은 나 말고도 그냥 데이트하는 ‘오빠’들이 몇 명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러니까 정이 잘 안 가.”

찬바람이 불자 결혼적령기 싱글들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현재 사귀는 사람이 없을 경우엔 더욱 그렇다. 인터뷰 대상자 10명 가운데 ‘결혼 안 해도 상관없다’고 대답한 사람은 딱 2명, 그것도 모두 남자였다(그러나 이 둘도 ‘절대 결혼 안 한다’는 쪽은 아니었다. ‘정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하겠다’ 혹은 ‘남편한테 기대지 않고 평생 자기 커리어를 잘 가꿔가는 여자라면 하겠다’는 주의였다). 나머지는 모두 “결혼 안 하고 늙어가는 것이 무섭다”고 입을 모았다.

“외로울 것 같아. 지금은 괜찮은데, 늙으면 혼자서 심심하지 않겠어?”(31세 여성) “지금 다니는 회사에 평생 다닐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요. 결혼해서 놀고 먹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직장을 잃었을 때 남편이 있으면 든든할 것 같아요.”(29세 여성) “남자 혼자서는 쇼핑하는 것도, 영화 보는 것도 참 불편하거든. 그럴 때마다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34세 남성) “평생 혼자 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32세 남성)….

“30세 되면서 연애 시작하기 어려워져”



이들이 35~40세의 선배 싱글들을 보는 시선은 다소 이율배반적이다. “요새는 30대 중반 넘어서도 싱글인 사람들이 흔하니까 결혼을 좀 늦게 해도 괜찮겠다”라고 위안하는 동시에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한다. 은진(30·여) 씨는 “나이 많은 사람에겐 그 나이에 걸맞은 관용을 기대하게 마련인데, ‘철없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결혼 안 해서 저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민호(32) 씨는 “우리 부서 과장이 마흔 가까운 노총각인데 결혼을 추진했다가 중간에 깨져버리는 경우를 몇 번 봤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으니까 맞선을 보고 급하게 결혼을 결정했다가 뒤늦게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하고는 헤어지는 거죠. 저는 그렇게까진 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결혼적령기의 싱글들은 ‘심리적 마지노선’을 그어놓고 배우자 찾기에 나선다. 마지노선은 대개 ‘현재 나이 + 1~2세’로 그어진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 준비까지 하려면 그 정도는 소요되기 때문. 28세의 윤영 씨는 “30세가 되기 전에 결혼하고 싶다”라고 했고, 30세의 은진 씨는 “31세까지는 결혼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32세부터는 너무 30대 같다”는 것이 이유다. 32세의 민호 씨는 “34세가 목표”라고 못 박았다. “35세는 완전한 30대 중반이라 중년으로 접어 들어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내 배우자 감이다’라고 결정하려면 최소 6개월은 연애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좀더 오래 연애해야 하는데, 나이 때문에 시간이 없으니까….” 민호 씨의 말이다.

하지만 결혼 상대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은진 씨는 “30세가 되면서 연애를 시작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했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결혼할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나이에 누굴 만나 연애하고 헤어지고,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한다고 상상하면 너무 피곤해요.” “주변에 이혼한 친구가 몇 명 있어. 대개는 성격이 안 맞아서 헤어졌더라고. 그러니까 좀더 나와 성격이 잘 맞는, 그래서 이혼 확률이 낮은 ‘영혼의 동반자’를 찾으려다 보니까 결혼이 더 어려워진 것 같아.” 32세 홍민 씨의 말이다. 민정 씨는 “가부장적이지 않은 남자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라면서 “맞선을 본 남자가 ‘엄마가 아침마다 와이셔츠 다려주고 과일주스 갈아준다’고 하면 ‘이 사람은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든다”라고 털어놓았다.

싱글이라 외롭냐고? 물론 갑자기 가슴 한구석에 찬바람이 불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싱글들은 ‘온종일’ 외롭지는 않다. 얼마 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 30대 남녀의 미혼율은 절반을 살짝 넘긴 50.7%. 결혼적령기 싱글들은 “친구들 중 절반 정도만 결혼했다. 만나서 놀 친구들은 부족하지 않다”고 말한다. 민정 씨는 지난여름에 역시 싱글인 언니들 몇 명과 유럽여행을 다녀왔고, 이번 추석연휴를 친구들과 호텔에서 보낼 계획으로 싱글을 위한 호텔패키지 상품을 예약했다. 31세의 경민(여) 씨는 “우리 부서에 부서장 이하 14명의 직원이 있는데, 딱 2명만 기혼자다. 일도 바쁘고 취미생활 할 것도 많고, 또 주변에 혼자인 사람들이 넘치니까 외롭다거나 당장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30대 싱글인 가수 양혜승은 이렇게 노래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야. 이 좋은 세상을 두고 서로 구속해 안달이야. 난 화려한 싱글이야….’ 하지만 결혼적령기 싱글들은 그의 ‘화려한 싱글론(論)’에 공감하지 못한다. “물질적인 측면뿐 아니라 정서적인 측면까지 충만한 싱글 선배는 본 적이 없다. 어딘가 모르게 결핍되어 보인다”라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일찍이 성시경이 노래했던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의 가사가 싱글들의 마음을 더욱 깊이 파고든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