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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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만 있고 음악은 없다

  • 정일서 KBS라디오 PD

    입력2006-06-21 17: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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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라면 미치는 유럽의 어느 나라도, 유럽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남미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도 지금의 우리와 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차범근 씨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2002년 기적의 4강을 일궈낸 감동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온 나라가, 특히 방송이 월드컵에 올인하는 모습은 분명 도가 지나치다. 우리나라 경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타국끼리 벌이는 경기까지 방송 3사가 똑같이 중계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나?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재방, 삼방에 틈만 나면 하이라이트까지 내보내는 지경에 이르면 할 말이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방송에는 오로지 월드컵만이 존재하는 듯하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전파의 공공성’ ‘전파의 희소성’이라는 방송학의 명제에 비춰봐도 그렇고, 채널 선택권을 철저하게 빼앗긴 수용자의 입장에서도 이건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월드컵에 관심 없는 소수 혹은 다수일지도 모르는 이들의 권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영화와 음악 등 문화계에도 월드컵은 최대의 적이다. 대중의 관심을 온전히 앗아가버린 월드컵 때문에 문화계는 거의 패닉 상태다. 그래서 월드컵 기간에 영화 개봉과 음반 출시를 피하는 것은 이 바닥에서는 마케팅의 상식이다. 지독한 모험을 하고 싶지 않다면 월드컵의 광풍이 지나간 뒤로 미루는 것이 상책이다.

    나 역시 축구를 좋아하고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선전을 누구보다 바라며, 또 직업이 방송국 PD인 탓에 월드컵 특집을 기획·제작하고 있는 형편이라 이런 말을 꺼내기가 영 마음이 편치 않지만, 지나친 건 지나치다고 한번 짚고 넘어가자. 세상에 월드컵만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오늘 밤에는 TV를 끄고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좋아하는 음악이나 실컷 들어야겠다. 모두가 축구에 빠져 곁눈질조차 하지 않는다면 음악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말이다. 내가 고른 음악은 오늘도 라디오 전파를 탈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오늘도 음악을 듣고 싶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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