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월8일부터 독일에 머물고 있다. 2006 FIFA 월드컵 취재를 위해 뮌헨, 프랑크푸르트, 도르트문트를 거쳤으며 이제 한국팀의 16강 진출을 확정짓기 위한 ‘약속의 땅’ 라이프치히와 하노버로 향할 예정이다. 그사이 나는 유럽 역사의 중심도시인 베를린을 거점으로 독일의 구석구석을 훑으며 ‘과연 축구란 무엇이며, 또 월드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할 계획이다.
그러니까 나는 토고와의 첫 경기에서 발톱을 드러낸 한국 대표팀이 기필코 16강에 진출해야 하고, 그 능선을 넘어 새롭게 펼쳐지는 신천지를 향해 조금도 뒤로 물러설 이유가 없으며,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춘 팀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과 더불어 도대체 왜 이 지구촌은 자전축이 흔들릴 정도로 월드컵에 열광하는가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이곳에서 만난 수많은 외국인들이 나에게 끝없이 하는 질문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내게 묻는다. “빡지슝(박지성)의 컨디션은 어떤가?” “한국 팀은 4년 전보다 강해졌는가?” “한국 팀의 16강 진출에 대해 확신하는가?” 정작 내가 물어봐야 할 것들을 오히려 내게 묻는 사람들을 시시때때로 접하면서 나는 한국 팀의 16강 진출만이 아니라 월드컵의 이 세계적 현상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월드컵이 이성 마비시킨다는 비판은 비현실적
지금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반(反)월드컵’ 운동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전체주의를 연상케 한다는 비판인 듯싶으나, 우리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해서 다양하고 불균질한 시민의 감성이 갑자기 동원된 국민처럼 이성을 잃고 허수아비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 섹스(Sex),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 등 이른바 ‘3S 정책’이 통했던 저 아르헨티나에서도 그랬고 1980년대의 전두환 시대에도 그랬듯 국민의 이성을 ‘통제’했던 독재권력은 바로 그 ‘3S 정책’으로 키워진 다양한 문화적 욕망과 자유로운 삶에 대한 꿈에 의해 물러가지 않았던가. 과거가 그러할진대, 오늘의 ‘시민 감성’ 수준에서 월드컵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한다는 비판은 비현실적이다.
한국 대표팀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활짝 열어준 G조 조별리그 첫 경기 토고전에서도 나는 미디어와 기업에 의해 완전히 포위돼 있을지언정 이러한 ‘융단폭격’ 때문에 시민의 감성과 이성이 마비되고 있다는 걱정은 기우(杞憂)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6월13일 토고 팀에는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먼저 주최 측의 실수로 우리 국가는 두 번 연주됐고, 그들의 국가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겨우 들려왔다. 그렇게 두 번과 한 번이 기묘하게도 2대 1이라는 득점으로 이어져 결국 우리 팀이 첫 승리를 거뒀다.
그날 경기에서 2002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려준 안정환의 건재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후반전의 사나이’라는 불명예가 적어도 한국의 월드컵 역사에서는 안정환의 아름다운 별명이 되었다. 조재진 역시 뛰어난 활약을 했다. 후반전에 교체돼 나갈 때까지 토고의 수비를 불편하게 만든 조재진의 활약은 과감하면서도 새로운,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아드보카트식 전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물론 안정환과 조재진을 한국 축구사에 기록하기 위해선 반드시 박지성과 이천수를 언급해야 한다. 프랑크푸르트 경기장에서 유달리 돋보이는 두 명이 있었으니 바로 박지성과 이천수였다. 가히 ‘월드클래스’ 수준으로 보여준 두 사람의 활약은 16강 이후, 나아가 그들의 남은 축구 인생에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아드보카트 전술
또 있다. 이들이 오로지 토고의 골문만을 향할 수 있도록 해준 최진철이다. 체력적인 문제로 주위의 걱정을 샀지만, 그는 토고의 특급 공격수 아데바요르를 완벽하게 막아냈다. 오랜만에 다시 꺼내든 스리백이라는 방패를 가장 든든하게 쥐고 있었던 선수가 최진철이다.
무엇보다 뚜렷한 고딕체로 분명하게 써넣어야 할 이름이 있으니 바로 아드보카트 감독이다. 자, 생각해보자. 그가 부임한 이래로 9개월 동안 그의 입이나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서나 단 한 번도 조재진과 안정환의 동시 출격은 언급된 적이 없다. 이동국이 불의의 사고로 출전하지 못하게 된 이후 한국 대표팀은 네 차례 평가전을 치렀는데, 그 경기들에서도 두 선수가 동시에 출전한 경우는 없다.
네 차례의 평가전, 특히 월드컵 직전 오슬로와 에든버러에서 치른 평가전은 신통치 않았다. 노르웨이의 체력에 밀렸고, 가나의 섬세한 기교에 밀렸다. 첫 경기 토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하는 한국 팀으로서는 가상의 토고 팀이었던 가나와의 마지막 평가전이 신통치 않게 끝나자 깊은 우려까지 나오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토고에 1점을 먼저 내준 뒤 끌려가는 형국이 되었는데, 아드보카트는 과감히 김진규를 빼고 송종국과 이영표의 위치를 끌어내려 ‘포백 라인’을 구성한 다음 예측불허의 카드로 안정환을 투입한 것이다. 지난 9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조재진-안정환’ 카드는 이천수 박지성과 결합하여 연거푸 2골을 이끌어냈는데, 그 주인공은 역시 ‘작은 장군’ 아드보카트였다. 그는 후반전 막판에 김상식을 투입해 다시 스리백 라인으로 전환하고 동점 골을 노리는 아데바요르를 꽁꽁 묶었으니, 이런 신묘한 전술의 변화가 첫 승리로 이어졌던 것이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즈음 프랑스를 꺾었다면 16강 진출이 확정돼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6월24일 새벽 4시가 돼야 신화의 재래(再來)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는 백전노장이고, 스위스는 단단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 스위스는 자신들이 만드는 시계와도 같은 촘촘한 조직력을 자랑하지만, 마지막 한 방을 터뜨릴 화포가 부족하다는 것이 약점이다. 바로 이 지점을 침노하는 것이 아드보카트의 터닝포인트다.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가 마무리돼가는 상황에서 오늘의 세계 축구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점칠 수는 없지만, 이곳 독일에서 확인한 사실은 ‘새로운 방향은 없어도 이전의 방향은 이제 낡았다’는 사실이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등 4년 전의 멤버에서 큰 변화 없이 진출한 축구 강국들은 여전히 그들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승점을 챙기고 있다. 하지만 승패 여부를 떠나 새로운 축구 패러다임을 보여줄 만한 강한 인상은 남기지 못하고 있다.
한국 팀, 7월까지 독일에 남아 있을 자격 충분
반면 유일하게 지구 전역에서 ‘안티팬’이 없는 브라질은 축구라는 ‘수많은 요소를 분해하면 결국 개인기가 남는다’는 명제를 여실히 증명해 보이고 있다. 호나우지뉴는 욱일승천이며, 카푸·카를로스·루시우 등의 수비 라인은 유럽의 철벽 거한들보다 훨씬 정교하고 단단한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의 모든 팀들이 4-4-2니 4-3-3, 3-4-3을 쓰고 있을 때 유일무이하게 4-2-2-2라는, 오로지 그들만이 쓸 수 있는 탁월하면서도 기이한 전술을 쓰는 브라질의 아름다운 축구는 좀더 오랫동안 지속될 가치가 있다.
한국 대표팀에 대한 현지의 평가는 뚜렷하게 엇갈린다. 경기 내용적으로는 4년 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한국 팀의 에너지, 골을 향한 집념, 붉은 악마의 뜨거운 열정은 독일 현지에서도 다시 한번 조명받고 있다. 토고전이 끝난 뒤 프랑크푸르트는 붉은 열정으로 달아올랐다.
축구장이 종종 난폭자들의 떠들썩한 아수라장으로 변하곤 하는, 실제로 A조 두 번째 경기인 독일 대 폴란드전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경찰과 팬들의 폭력사태를 자주 접하는 유럽의 축구팬들에게 한국 팀의 집념과 붉은 악마의 열정은 상당한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에너지와 열정으로 한국 팀은 7월까지 독일에 남아 있어야 한다. 토고와의 첫 경기에서 발톱을 드러낸 대한민국. 우리는 그라운드에서 쓰러질지언정 좌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토고와의 첫 경기에서 발톱을 드러낸 한국 대표팀이 기필코 16강에 진출해야 하고, 그 능선을 넘어 새롭게 펼쳐지는 신천지를 향해 조금도 뒤로 물러설 이유가 없으며,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춘 팀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과 더불어 도대체 왜 이 지구촌은 자전축이 흔들릴 정도로 월드컵에 열광하는가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이곳에서 만난 수많은 외국인들이 나에게 끝없이 하는 질문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내게 묻는다. “빡지슝(박지성)의 컨디션은 어떤가?” “한국 팀은 4년 전보다 강해졌는가?” “한국 팀의 16강 진출에 대해 확신하는가?” 정작 내가 물어봐야 할 것들을 오히려 내게 묻는 사람들을 시시때때로 접하면서 나는 한국 팀의 16강 진출만이 아니라 월드컵의 이 세계적 현상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월드컵이 이성 마비시킨다는 비판은 비현실적
지금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반(反)월드컵’ 운동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전체주의를 연상케 한다는 비판인 듯싶으나, 우리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해서 다양하고 불균질한 시민의 감성이 갑자기 동원된 국민처럼 이성을 잃고 허수아비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 섹스(Sex),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 등 이른바 ‘3S 정책’이 통했던 저 아르헨티나에서도 그랬고 1980년대의 전두환 시대에도 그랬듯 국민의 이성을 ‘통제’했던 독재권력은 바로 그 ‘3S 정책’으로 키워진 다양한 문화적 욕망과 자유로운 삶에 대한 꿈에 의해 물러가지 않았던가. 과거가 그러할진대, 오늘의 ‘시민 감성’ 수준에서 월드컵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작용을 한다는 비판은 비현실적이다.
한국 대표팀의 16강 진출 가능성을 활짝 열어준 G조 조별리그 첫 경기 토고전에서도 나는 미디어와 기업에 의해 완전히 포위돼 있을지언정 이러한 ‘융단폭격’ 때문에 시민의 감성과 이성이 마비되고 있다는 걱정은 기우(杞憂)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6월13일 토고 팀에는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먼저 주최 측의 실수로 우리 국가는 두 번 연주됐고, 그들의 국가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겨우 들려왔다. 그렇게 두 번과 한 번이 기묘하게도 2대 1이라는 득점으로 이어져 결국 우리 팀이 첫 승리를 거뒀다.
그날 경기에서 2002년의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려준 안정환의 건재는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후반전의 사나이’라는 불명예가 적어도 한국의 월드컵 역사에서는 안정환의 아름다운 별명이 되었다. 조재진 역시 뛰어난 활약을 했다. 후반전에 교체돼 나갈 때까지 토고의 수비를 불편하게 만든 조재진의 활약은 과감하면서도 새로운,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아드보카트식 전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물론 안정환과 조재진을 한국 축구사에 기록하기 위해선 반드시 박지성과 이천수를 언급해야 한다. 프랑크푸르트 경기장에서 유달리 돋보이는 두 명이 있었으니 바로 박지성과 이천수였다. 가히 ‘월드클래스’ 수준으로 보여준 두 사람의 활약은 16강 이후, 나아가 그들의 남은 축구 인생에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아드보카트 전술
또 있다. 이들이 오로지 토고의 골문만을 향할 수 있도록 해준 최진철이다. 체력적인 문제로 주위의 걱정을 샀지만, 그는 토고의 특급 공격수 아데바요르를 완벽하게 막아냈다. 오랜만에 다시 꺼내든 스리백이라는 방패를 가장 든든하게 쥐고 있었던 선수가 최진철이다.
무엇보다 뚜렷한 고딕체로 분명하게 써넣어야 할 이름이 있으니 바로 아드보카트 감독이다. 자, 생각해보자. 그가 부임한 이래로 9개월 동안 그의 입이나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서나 단 한 번도 조재진과 안정환의 동시 출격은 언급된 적이 없다. 이동국이 불의의 사고로 출전하지 못하게 된 이후 한국 대표팀은 네 차례 평가전을 치렀는데, 그 경기들에서도 두 선수가 동시에 출전한 경우는 없다.
네 차례의 평가전, 특히 월드컵 직전 오슬로와 에든버러에서 치른 평가전은 신통치 않았다. 노르웨이의 체력에 밀렸고, 가나의 섬세한 기교에 밀렸다. 첫 경기 토고전을 반드시 이겨야 하는 한국 팀으로서는 가상의 토고 팀이었던 가나와의 마지막 평가전이 신통치 않게 끝나자 깊은 우려까지 나오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토고에 1점을 먼저 내준 뒤 끌려가는 형국이 되었는데, 아드보카트는 과감히 김진규를 빼고 송종국과 이영표의 위치를 끌어내려 ‘포백 라인’을 구성한 다음 예측불허의 카드로 안정환을 투입한 것이다. 지난 9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조재진-안정환’ 카드는 이천수 박지성과 결합하여 연거푸 2골을 이끌어냈는데, 그 주인공은 역시 ‘작은 장군’ 아드보카트였다. 그는 후반전 막판에 김상식을 투입해 다시 스리백 라인으로 전환하고 동점 골을 노리는 아데바요르를 꽁꽁 묶었으니, 이런 신묘한 전술의 변화가 첫 승리로 이어졌던 것이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즈음 프랑스를 꺾었다면 16강 진출이 확정돼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6월24일 새벽 4시가 돼야 신화의 재래(再來)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는 백전노장이고, 스위스는 단단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다. 스위스는 자신들이 만드는 시계와도 같은 촘촘한 조직력을 자랑하지만, 마지막 한 방을 터뜨릴 화포가 부족하다는 것이 약점이다. 바로 이 지점을 침노하는 것이 아드보카트의 터닝포인트다.
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가 마무리돼가는 상황에서 오늘의 세계 축구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점칠 수는 없지만, 이곳 독일에서 확인한 사실은 ‘새로운 방향은 없어도 이전의 방향은 이제 낡았다’는 사실이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등 4년 전의 멤버에서 큰 변화 없이 진출한 축구 강국들은 여전히 그들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승점을 챙기고 있다. 하지만 승패 여부를 떠나 새로운 축구 패러다임을 보여줄 만한 강한 인상은 남기지 못하고 있다.
한국 팀, 7월까지 독일에 남아 있을 자격 충분
반면 유일하게 지구 전역에서 ‘안티팬’이 없는 브라질은 축구라는 ‘수많은 요소를 분해하면 결국 개인기가 남는다’는 명제를 여실히 증명해 보이고 있다. 호나우지뉴는 욱일승천이며, 카푸·카를로스·루시우 등의 수비 라인은 유럽의 철벽 거한들보다 훨씬 정교하고 단단한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의 모든 팀들이 4-4-2니 4-3-3, 3-4-3을 쓰고 있을 때 유일무이하게 4-2-2-2라는, 오로지 그들만이 쓸 수 있는 탁월하면서도 기이한 전술을 쓰는 브라질의 아름다운 축구는 좀더 오랫동안 지속될 가치가 있다.
한국 대표팀에 대한 현지의 평가는 뚜렷하게 엇갈린다. 경기 내용적으로는 4년 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한국 팀의 에너지, 골을 향한 집념, 붉은 악마의 뜨거운 열정은 독일 현지에서도 다시 한번 조명받고 있다. 토고전이 끝난 뒤 프랑크푸르트는 붉은 열정으로 달아올랐다.
축구장이 종종 난폭자들의 떠들썩한 아수라장으로 변하곤 하는, 실제로 A조 두 번째 경기인 독일 대 폴란드전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경찰과 팬들의 폭력사태를 자주 접하는 유럽의 축구팬들에게 한국 팀의 집념과 붉은 악마의 열정은 상당한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에너지와 열정으로 한국 팀은 7월까지 독일에 남아 있어야 한다. 토고와의 첫 경기에서 발톱을 드러낸 대한민국. 우리는 그라운드에서 쓰러질지언정 좌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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