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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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듯 모를 듯한 ‘책의 운명’

  •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khmzip@donga.com

    입력2006-06-26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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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듯 모를 듯한 ‘책의 운명’
    새로 나온 책이 초판으로 수명을 다할지, 느긋하게 기다리면 1만 부 고지는 무난히 넘어설지, 단숨에 10만 부 대박이 날지 여부는 대략 한 달, 길어야 두 달이면 알 수 있다. 사실 편집자들은 책이 태어나기 전부터 감을 잡는다. 마케팅으로 밀어붙여 승부를 걸 책인가, 아니면 그냥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둘 책인가. 물론 기대하지 않은 책이 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되는 ‘개천에서 용 난’ 사례가 출판계에도 없지 않지만, 로또를 기대하고 무리하게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는 출판사는 거의 없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진 책들은 대부분 유효기간이 지나면 서점에서도 사람 손이 거의 닿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 남은 일생을 보낸다.

    그런데 출간된 지 9개월이 된 책에 대해 요즘도 보도자료와 책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 심심치 않게 들어오고 꾸준히 증쇄를 거듭해서 웬일인가 싶다. ‘고조선 사라진 역사’(성삼제 지음)가 주인공인데, 이 책의 운명도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지난해 10월 이 책이 나온 직후 ‘국립중앙박물관 고조선 누락’ 논란이 일어났다. 새로 문을 연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전시장 벽면에 대형 연표가 걸려 있는데 여기에 고조선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언론보도를 접한 순간, 책에 소개된 일본 후소샤의 ‘새로운 역사교과서’ 세계 연표가 떠올랐다. 이 연표를 보면 우리나라는 낙랑군과 고구려 이전의 역사는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돼 있다. 저자도 보도를 접하고 흥분해서 전화를 걸어왔다. “일본 역사교과서가 우리 역사를 왜곡했다며 수정을 요청한 부분을 우리가 그대로 따른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교육부에서 일본역사교과서왜곡대책반 실무반장을 했던 저자로서는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몇몇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리고 책과 보도자료를 함께 보냈다. 이런 소동에 즈음해 책이 주목받기를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웬걸. 박물관 측이 재빨리 연표에 고조선을 넣는 것으로 논란을 마무리 짓자 언제 그랬냐는 듯 고조선 문제는 쑥 들어가버렸다. 그 와중에 이 책은 신간 취급도 못 받고, 저자가 제기한 고조선을 둘러싼 9가지 쟁점은 그렇게 유효기간이 끝나버렸다.

    하지만 이 책이 요즘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드라마 ‘주몽’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고구려를 무대로 한 ‘주몽’의 시청률이 30%대에 이르고 ‘주몽’을 앞세운 책이 이미 10여 권이 나왔다. 여기에 ‘연개소문’ ‘대조영’ ‘태왕사신기’ 등 한국 고대사를 다루는 사극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니 고구려 열풍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듯하다. 이렇게 한국 고대사를 복원하다 보면 결국 고조선과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다. ‘고조선 사라진 역사’가 느리지만 꾸준히 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책은 나름의 운명이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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