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13일 한나라당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 부부와 홍준표 의원(맨 왼쪽)이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난생처음 미국을 방문한 홍 의원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맥클레인 숲 속에 있는 이 시장의 아파트로 숙소를 옮겼다. 이 시장 부부와 홍 의원 부부는 넓지 않은 아파트에서 한동안 동거(?)를 했다. 얼마 뒤 홍 의원이 아파트를 구해서 분가했다. 이 시장 부부는 평소 자주 찾던 한아름 슈퍼마켓으로 홍 의원을 데려가 생필품을 살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후 홍 의원은 1998년 지방선거에 출마했다가 패한 손학규 전 의원(현 경기도지사)과 함께 수시로 이 시장의 아파트를 찾았다. 이른바 워싱턴의 ‘오리알 3인방’이 급속히 가까워진 배경이다. 세 사람은 수시로 술잔을 기울였고, 그런 자리에서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및 의원직 복귀를 다짐했다.
이 시장 측 “오비이락이 몰고 온 오해”
2001년 10월, 홍 의원이 재·보궐선거(10·25)에서 재기(서울 동대문을)에 성공했다. 이 시장은 선거 내내 홍 의원의 손을 잡고 다니며 측면지원에 나섰다. 다음 해 6월, 이 시장과 손 지사가 지방선거에 출마해 뜻을 이루었다. 이번에는 홍 의원이 이명박 캠프의 유세본부장을 맡아 지원 유세를 폈다.
선거를 끝낸 홍 의원은 자연스럽게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총대를 멨다. ‘친이(親李)’는 곧 ‘반(反)박근혜’의 길을 의미하는 정치 환경이지만, 홍 의원은 개의치 않았다.
홍 의원은 이 시장과 이재오, 김문수 의원 등과 함께 인사동 한정식집에서 수시로 회동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모임을 ‘이명박계의 성골모임’이라고 불렀다. 홍 의원은 당과 여의도 정보에 목말라하던 이 시장의 갈증을 풀어주었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이 시장과 홍 의원이 한 배를 타고 2007년 12월까지 항해할 것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되는’ 정치의 속성을 벗어나는 데 실패했다. 서울시장 경선이 갈등의 출발점이었다. 홍 의원은 이 시장이 서울시장 경선에 출마한 자신을 도와주지 않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심지어 뒤통수를 때렸다고 주장한다. 홍 의원 측 인사의 주장이다.
6월1일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왼쪽)가 시청을 방문, 이명박 시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이 시장이 오 후보를 선택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터. 이 시장은 왜 오 후보를 선택했을까. 홍 의원의 분석이다.
“오 후보는 ‘현찰’인 데 반해 나는 ‘어음’이다. 현금의 유혹을 이겨낼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정치는 때로 현찰보다 어음을 선택해야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어음은 현찰보다 흡인력에서 떨어지지만 경우에 따라 대박을 터뜨린다.”
홍 의원의 이런 주장에 이 시장 측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오비이락이 몰고 온 오해”라며 적극적으로 해명한다. 이춘식 서울시 정무특보의 말이다.
“이 시장이 공개적으로 누구를 돕겠다고 한 적은 없다. 오 후보는 바람을 타고 왔다. 나오자마자 60~70%의 지지도를 확보했다. 이 시장이 돕고 말고 할 여지가 없었다.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홍 의원 측은 이 해명을 믿지 않는다. 이 시장이 측근을 동원해 오 후보의 출마를 부추기고 각종 공약과 정책, 조직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홍 의원이 지목한 ‘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 정태근 부시장이다. 정 부시장은 정말 오 후보를 부추겼을까?
“기본적으로 이 시장과 나는 중립을 지켰다. 다만 오 후보와 미래연대 등에서 함께 활동했기 때문에 친밀한 것은 사실이다.”
신뢰는 한 번 무너지면 복구하기 어렵다. 홍 의원이 ‘마이웨이’를 선언하며 돌아선 것도 정치적 신뢰관계가 무너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정무특보, 정 부시장, 박창달 전 의원 등은 오해라며 돌아선 ‘홍심(洪心)’을 잡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홍 의원은 쉽게 마음을 되돌리지 않았다. 급기야 이 시장이 직접 나섰다.
4월28일, 경선 패배의 쓴잔을 마신 홍 의원이 제주도에서 편치 않은 속을 달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이 시장의 전화였다. “서울 가면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지만 홍 의원은 연락하지 않았다. 그 후 이 시장의 전화가 또 걸려왔지만 홍 의원은 받지 않았다.
그러던 6월11일 일요일 오후, 집에서 운동을 하던 홍 의원이 무심결에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이 시장의 목소리였다. 전화를 끊은 홍 의원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눈치를 보던 부인이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듣기만 하다가, 정리하고 돌아오라”고 일러주었다.
이날 저녁,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일식집. 이 시장과 홍 의원이 마주 앉았다. 이 시장이 양주를 주문했다. 홍 의원이 “부담스럽다”며 ‘설화’로 바꾸어 잔을 채웠다. 주로 이 시장이 말을 했다.
“특정 후보를 도운 적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홍 의원의 오해다.”
홍 의원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설화를 4병쯤 비웠을 때 이 시장의 말이 끝났다. 듣고 있던 홍 의원이 입을 열었다.
“내가 오해했다고 하니 그렇다고 치자. 중요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당내 인사들이, 당원들이 ‘이 시장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시장이 정책과 대선 파트너로 오 후보를 선택했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이 시장과 다시 얼굴을 맞대고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시장의 정치적 선택을 존중한다. 이 시장은 이 시장의 길을 가고, 나는 나의 길을 가면 된다.”
이 말을 마친 홍 의원이 자리를 떴다. 정확히 2시간 30여 분간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동지애(愛)가 사라지면 그 자리에 증(憎)오가 밀려온다. 그들도 그럴까? 이 시장 측은 지금도 홍 의원을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홍 의원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눈치다.
그렇지만 홍 의원의 입장은 다른 것 같다.
“나를 이 시장의 손안에 있는 공깃돌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딱 부러지는 태도지만 미움의 감정은 없어 보인다.‘워싱턴 결의’를 통해 의기투합했고, 함께 길을 가다가 손에 든 계산서를 확인해보니 서로 계산이 달라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홍 의원의 말을 듣고 나니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이 시장은 이번 선거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오세훈 후보의 당선으로 이 시장의 대권 가도에 청신호가 켜진 것은 득이다. 반면 총대를 메고 앞장서던 우군을 잃은 것은 뼈아픈 손실이다. 특히 홍 의원의 ‘마이웨이’를 지켜보는 당내 인사들과 당원들이 이 시장의 포용력과 용병술, 리더십 등 정치력 전반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는 점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 시장의 지방선거 성적표는 ‘이기고도 진 게임’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8년 지기’ 홍 의원이 이 시장에게 남긴 그늘은 크고 또 오래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