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멘’
가장 무서운 악마가 등장한 영화는 역시 ‘엑소시스트’다. 어린 소녀의 몸에 들어가 온갖 흉측한 짓을 다 하는 얼굴 없는 사악한 존재. 우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악마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지만, 린다 블레어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를 느낀다.
실화를 소재로 한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도 비슷한 유형의 영화다. 이 영화에서도 악마보다 주인공 에밀리 로즈가 느끼는 고통에서 더 큰 공포가 전달된다. 아니, 그보다 더 무서운 건 에밀리 로즈를 통해 전달되는 기독교적 환영일지 모른다.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감독이 관객들을 공포로 몰아가야 한다는 의무감을 포기하면, 악마의 모습은 더욱 변화무쌍해진다.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에서 알 파치노가 연기한 변호사 악마가 대표적인 예다. 영화 속의 악마 존 밀튼은 카리스마 넘치고 교활하고 야비한 동시에 친절하며 지독하게 인간적이다. 어떻게 보면 영화를 보는 진짜 인간들보다 더 인간적이다. 당연하겠지. 존 밀튼은 악마라기보다는 종교의 규칙을 거부하는 인간적 욕망의 총체이니 말이다. 엄격한 교회의 지붕 밑에서 살아가던 중세 유럽인들이 그런 악마 이미지에 매료된 것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어떤 경우 악마는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해럴드 레이미스의 ‘일곱 가지 유혹’에서 악마는 엘리자베스 헐리가 분한 섹시한 미녀다. 물론 그 악마가 유혹하는 브렌든 프레이저의 캐릭터는 여전히 일편단심으로 짝사랑하는 프랜시스 오코너의 캐릭터에게 매달리지만, 과연 관객들도 그럴까? 이 영화에서 악마는 관객들의 시선을 통째로 사로잡는 미모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꽤 자상한 친구이자 조언자며, 규칙에 엄격한 프로페셔널이기도 하다. 이 정도라면 한번 영혼을 맡기고 게임을 벌여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