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3일 SK아카데미에 들어간 SK 신입사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지난해 신입사원 연수를 받던 SK 한 직원이 최태원 SK 회장에게 최고경영자(CEO)가 된 까닭을 물었다. 최 회장은 “숙명이다. 만약 다른 일을 했다면 사진작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SK의 연수원 SK아카데미(경기 용인시 원삼면)에서 이루어지는 신입사원들과 CEO의 대화는 스스럼이 없다. ‘괘씸하게’ 들릴 법한 질문에도 최 회장은 표정을 찌푸리지 않는다. 이런 최 회장이 새내기들에게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회사를 삶의 터전, 꿈을 이루는 곳으로 여기고 애정을 갖기 바란다. 그리고 패기를 가지고 ‘SK-manship’을 지속적으로 키워달라.”
SK 인재 경영의 화두는 SK-manship이다. 직원들에게 SK의 가치를 공유케 함으로써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임직원들이 SK라는 이름 아래 가치를 공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노종 SK아카데미 원장.
故 최종현 회장 때부터 이어진 사람 중심 경영
“기업이 일류가 되려면 구성원 수준이 최고가 돼야 합니다. SK의 독특한 교육 시스템이 오늘의 SK를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1970년대 우리보다 덩치가 컸던 기업들이 설비 경쟁에 나설 때 우리는 사람을 키웠습니다.”(이노종 SK아카데미 원장)
SK아카데미는 75년 3월 첫 강의를 시작했다. 자체 교육시설을 가진 기업을 찾아볼 수 없었던 시절로 SK그룹은 인재 경영의 중요성을 다른 기업보다 먼저 파악한 셈이다.
“최고의 인재를 뽑아 최고로 가르쳐 최고의 회사를 만든다.”
SK아카데미의 목표는 다른 기업과 크게 다를 바 없으나 SK의 사내 교육 시스템은 삼성보다 앞선다는 평가를 듣는다. 신입사원부터 임원까지 맞춤형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 특히 ‘느슨한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SK의 관계사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SK 밸류(가치)’ 교육은 다른 기업들의 벤치마크(bench mark)가 되고 있다.
세뇌교육 SKMS? 다른 기업들 벤치마킹
SK아카데미는 30년 동안 SK의 기업관, 경영관인 SKMS를 직원들에게 심어왔다. SKMS는 ‘순혈주의’가 존재하지 않는 SK 문화에서 임직원을 하나로 묶어온 틀이자 경영 솔루션이다. SK텔레콤의 한 중견 간부는 “세뇌 교육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SKMS로 두뇌를 씻어야 비로소 SK맨이 된다”며 웃었다.
SK아카데미 전경.
갓 입사해 바짝 긴장해 있는 신입사원들이지만 벌써부터 회사에 대한 신뢰가 쌓인 듯하다. SKMS를 앞 다투어 설명하는 연수생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SK텔레콤 신입사원인 박현우(26) 씨는 “촘촘히 짜인 커리큘럼에 입이 벌어질 정도”라면서 “회사가 커가는 만큼 개인도 클 수 있는 곳이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SK의 신입사원 육성 시스템은 톡톡 튀는 현장 교육으로 이뤄진다. 현장-체험-토론으로 짜여진 각 커리큘럼은 ‘지식 너머의 경험’을 가르친다. 신입사원 연수의 백미인 ‘산악 패기 훈련’이 대표적. 산악 패기 훈련은 등산과 경영을 접목한 것으로, 기획·조직·구매·생산·마케팅 등 경영학 이론을 가지고 게임을 벌이는 것이다.
“SK아카데미 뒷산에 다수의 포스트를 설치하고, 이 포스트들마다 과제를 숨겨놓습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지식을 활용해 상황에 맞춰 재료를 구입하거나 제품을 팔아 돈을 버는 겁니다. 물론 남보다 먼저 포스트에 도착하는 것도 중요하지요.”(장종태 SK아카데미 핵심역량교육팀장)
SK아카데미는 현재 SK 밸류 공유를 위한 교육, 글로벌리더십 교육, 경영역량 교육을 3대 축으로 56개 과정을 운영한다. 재무회계, 마케팅 등 기본과정에서부터 갈등관리, 국제협상, 리더십 개발 등 심화과정까지 다양한 커리큘럼이 존재한다. SK텔레콤 송지희(27) 씨는 “실무에 꼭 필요한 지식은 물론, 따로 배우고 싶은 것들까지 회사 내에서 학습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중간 간부들은 온·오프라인 연수원을 밥 먹듯 드나든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글로벌 역량을 가진 임원 육성을 위해 마련한 미국 선더버드 국제경영대학원 연수 프로그램은 이들의 ‘꿈’이다. 임원에 오르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매년 임원급 15명 정도와 부·차장급 25명가량이 이 프로그램을 이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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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5일 프레젠테이션 준비에 여념이 없는 연수생들.
회사 전반을 이해하는 CEO 풀을 확대하기 위해 SK는 94년부터 임원 육성제도(EMD)를 도입해 시행해왔는데, EMD는 SK 관계사들의 경영을 담당할 CEO급 리더를 조기 발굴해 계획적으로 키우기 위한 제도다. 임원이 되려면 다른 부서와 부하 직원들한테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임원 후보들은 멘토링 시스템을 통해 직속상사 이외의 다른 상사를 통해서도 교육을 받는다.
SK건설의 사업 포트폴리오에는 임업(林業)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나무를 키워 파는 사업은 ‘대기업용’이라기엔 다소 옹색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SK가 나무를 기르는 건,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제1 명제를 되새기고 실천하기 위해서다. 임업으로 번 돈은 한국고등교육재단을 통해 청소년 장학금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충북 청주시의 ‘인재의 숲’ 산행은 신임 임원 교육의 필수항목이기도 하다. 기업의 힘이 인재에서 나온다는 점을 가슴 깊이 새기라는 뜻이다.
72년 첫 묘목을 심은 임업 파트는 아직까지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목재로 쓸 만큼 나무가 자라지 않은 까닭이다. 임업은 초기 투자에서 첫 회수까지 40년 넘게 걸린다고 한다. 기업에서 사람을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기업이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보면 경영자와 그 회사의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SK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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