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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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우는 힘찬 쇳소리 세계를 호령하다

‘조선강국 코리아’ 현장 현대중공업 25시

  • 글·이설 기자 snow@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jikija@donga.com

    입력2006-01-11 15: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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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을 깨우는 힘찬 쇳소리 세계를 호령하다
    ‘웅웅~’ ‘쾅쾅~’. 직원 2만5000명, 협력업체 직원 1만5000명 등 총 4만명의 일터. 울산 동구 150만평 부지에 들어선 현대중공업 정문을 들어서자 하늘 높이 뻗은 크레인 사이로 웅장한 기계음이 밀려왔다.

    “시끄러우시죠? 여기선 귀마개가 필수품입니다.” 문화부 왕기철(42) 대리가 목청 높여 말했다. 같은 의상에 헬멧과 마스크로 무장한 사람들이 중장비 사이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한 명에게 다가가 말을 걸자 “할 일이 쌓여 바쁘다”며 손사래를 치면서 피해갔다.

    1974년, 600만 서울 인구를 모두 태울 수 있는 26만t급 초대형 유조선(VLCC) 2척을 건조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바로 그 조선소다. 거대한 규모에 사람들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고, 고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저게 바다에 떠 있는 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1972년 고 정주영 당시 회장이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과 유조선 도면 한 장을 들고 선박 건조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가당치 않다’는 반응이 우세했었다. 하지만 그는 26만t급 유조선을 건조함으로써 불가능을 실현한 신화를 만들었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창출해냈다.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는 1985년 세계 1위 기업으로 도약한 뒤 지금껏 선두를 빼앗긴 적이 없습니다. 최근 영국 클락슨사가 발표한 세계 10대 조선기업 중 7개가 한국 기업인 것도 현대중공업이 마련한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문화부 정재헌(52) 부장의 말이다. 2006년을 맞는 세계 최대 조선기업의 모습은 과연 활기에 넘쳐 있었다.



    높이 107m, 무게 900t의 겐트리 크레인, 일명 ‘골리아스’에 올라보기로 했다. 세 명이면 꽉 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93m 높이에 있는 운전실에 들어섰다. 삼면이 유리로 돼 있었고 발밑엔 레고 블록 같은 공장이 즐비해 있다. 높이 때문인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20년 넘게 세계 1위 굳건히 지켜

    “4년 전부터 골리아스를 맡고 있습니다. 27년 전 입사해 안 다뤄본 크레인이 없죠.” 운전사 윤의현(50) 씨는 주야 2교대 근무로 하루의 대부분을 운전실에서 보낸다. 아파트 23층 높이에 있는 3~4평 남짓한 공간이 그의 작업실인 셈. 그는 “내 손놀림에 따라 거대한 크레인이 움직이므로 한눈을 팔았다간 곧 인명사고로 이어진다”며 “골리아스를 운전하는 데 대해 큰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크레인 운전은 신호수들과의 호흡이 중요해요. 무전기에서 나오는 목소리와 그들의 몸짓에 온몸의 세포를 집중해 크레인을 조종해야 하죠.”

    윤 씨는 50여 개의 조종 버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창 밖으로 눈을 돌리니 세계 최대 조선소의 전경이 들어왔다. 이곳에서는 1년에 70여 척의 선박이 탄생한다는데 이곳에서 건조된 배 1200여 척이 세계 5대양을 누비고 있다.

    12시 점심시간. ‘붕붕~’ 오토바이 수십 대가 한 곳을 향해 질주한다. 즐거운 식사를 상상하며 달리는 기운이 대차기 그지없다. 총 14개의 직원 식당은 4만명을 모두 수용할 수 있다. 공장 안에는 약 1만 대의 오토바이가 있다. 왕기철 대리는 “건물 간 기본 거리가 걸어서 15분 정도라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게 보통”이라며 “이제 이동 수단들 간의 질서가 자리잡혔다”고 말한다. 중기계와 이들 간의 안전한 공존을 위해 공장 안에서의 속도는 시속 30km로 제한하고 있었다.

    소공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배 옆면을 구성하는 철판 조각들을 잇는 용접 작업이 한창이었다. ‘틱! 탁! 파파팍!’ 불꽃과 열기가 용접가면을 뚫을 듯하다. 직원들은 한참을 불꽃과 씨름하다 휴식을 위해 용접가면을 벗었다. 그러자 두 명의 여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가 들어 오래 서 있으면 다리도 아프고 여름엔 땀이 비 오듯 해 눈앞이 흐려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문 기술을 갖고 있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아들도 저를 대단하다고 한답니다.”

    송순이(48) 씨가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송 씨는 체력 관리를 위해 1시간 거리에 있는 집까지 걸어서 출퇴근한다고 했다.

    “체력 관리 잘 해서 정년까지 일할 겁니다. 그리고 퇴임할 때 최고의 용접공이라는 칭찬을 듣고 싶어요.”

    함께 있던 손선애(46) 씨에게 매일 반복되는 작업이 지겹지 않냐고 물었다.

    “용접은 부위별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 창의적 작업이에요. 매번 하는 작업이지만 항상 재미있어요.”

    답하는 목소리가 경쾌하다.

    새벽을 깨우는 힘찬 쇳소리 세계를 호령하다

    점심시간, 직원들이 공장 안 주요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를 타고 식당을 향해 달린다.

    저녁 7시. 땅거미가 졌지만 어디에도 완벽한 어둠은 없다. 곳곳에 설치돼 있는 조명시설 때문이었다. 제1야드 한 구석에서는 선실 바깥면을 구성하는 블록 페인트 작업이 한창이다. 취재진이 다가가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모두가 붓질에 열심이었다.

    옆 현장에서는 오후 3시쯤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눴던 여성 기능공 윤종란(45) 씨가 일하고 있었다. “퇴근은 6시지만 일이 많을 땐 저녁 늦게까지 잔업을 해요. 난 아까 취재에 응하느라고 일 못 끝냈어요” 하면서 웃었다. 오랜 경험으로 일이 몸에 배었음직한데도 그의 손놀림은 처음 하는 사람인 양 조심스럽기만 했다.

    “매일 품질 검사를 받기 때문에 작업을 완벽하게 해야 해요. 지정 두께를 맞추지 않으면 배 운항에 치명적 결함이 생기기 때문이죠. 보통 외판은 7회, 내부는 2~3회 정도 칠을 해요. 배 한 척에 들어가는 도료는 대략 20~30여 가지에 이르죠. 섬세한 도장은 현대중공업 배를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새벽을 깨우는 힘찬 쇳소리 세계를 호령하다

    크레인을 타고 용접을 하고 있는 모습(왼쪽). 겐트리 크레인 ‘골리아스’ 운전실. 프로펠러 작업을 검사하는 외국인 감독관. 한 시간 일찍 출근한 근로자들이 작업 시작에 앞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오른쪽 위부터).

    조선산업은 대표적인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이지만 세계 최고의 배를 짓는 비결은 꼼꼼하고 성실한 손길에 있었다.

    퇴근길. 또 한 차례 오토바이 떼가 ‘왱왱’거리고 지나가면서 조선사업장의 하루도 마무리됐다.

    다음 날 오전 6시40분. 출근까지는 한 시간의 여유가 남아 있지만 공장 곳곳엔 안전 점퍼의 형광 스티커가 반짝였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근로자들이었다. 페달을 돌리는 부지런한 발놀림을 바라보면서 비몽사몽하던 정신이 깨어났다.

    일출 광경이 가장 잘 보인다는 제1 안벽에서는 일명 ‘해상 정유공장’인 FPSO의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FPSO는 길이 300m, 폭 60m, 높이 30m 내외의 축구장 3개 크기의 정유선으로 산업자원부가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한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4층 높이에서 내려 선실 가운데를 질러 한참을 걸었다. 15분가량 가니 갑판이 보였다. 채 동이 트기 전, 몇몇 직원이 모여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항상 한 시간 일찍 와서 하루 작업 준비를 해요. 10명을 거느린 반장이라 그만큼 책임도 크지요.”

    선실 전기설비를 담당하는 허규환(47) 씨의 말이다. 작업팀은 2년차에서 30년차까지의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돼 있었다.

    “하나의 팀이 구성되면 수년 동안 함께 일해요. 몸으로 하는 작업이라 함께 부딪히면서 서로 배우는 과정이 중요하죠.”

    검은 연기 사이로 발간 해의 머리가 봉긋하게 솟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바다와 선박뿐. 선박 옆구리에 쓰여 있는 알파벳 설명 때문인지 선박 이름의 영문 철자가 이국적 정취를 풍긴다. 어느 틈엔가 다시 ‘쾅쾅’ 하는 망치질 소리가 들려오면서 그렇게 새해가 시작됐다.

    새벽부터 힘차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윙윙 돌아가는 기계음이 바로 세계 최고 조선국가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회사가 있기에 한국은 세계 최고의 조선국가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현재의 활력이 이어진다면 한국은 조만간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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