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에서 ‘내 손안의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하고 있는 SK텔레콤.
돌이켜보면 2005년은 SKT로선 참으로 쉽지 않은 해였다. 이동통신업계 ‘맏형’인 까닭에 감수해야만 하는 다양한 제약 조건들, 그 가운데 애초 세운 ‘가입자 순증 목표 60만명’ 달성은 난망해 보였다. 하지만 SKT는 지난해 11월 그 목표를 초과 달성한 데 이어, 12월에는 총 가입자 수 1950여 만명을 기록하며 ‘행복한 연말’을 맞았다.
지난해 매출액 10조원 돌파 ‘행복한 연말’
SKT 홍보실 조중래 상무는 “음성 통화 시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순증 가입자 목표 달성만으로는 10조원 매출을 기대할 수 없었다”며 “다행히 ‘미래 시장’인 데이터 통신 매출이 전체의 26%를 차지할 만큼 큰 폭으로 성장해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마케팅 비용을 연초 18.5%에서 17%대까지 절감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매출 목표 달성을 위해 매진한 한 해였지만 정작 SKT 임직원들의 ‘절박한 위기의식’은 10년 후를 향하고 있다. SKT는 이미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 시장지배적 사업자로서 안아야 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점유율을 52.3% 이상으로는 높이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한 마당이다.
회사를 계속 키워나가기 위해선 신사업 진출과 세계시장 진출 외에 답이 없다. 요즘 SKT가 WCDME(3세대 화상전화), 위성 DMB, 와이브로(WiBro·무선 휴대인터넷 서비스) 등 차세대 통신사업, 중국·미국 등 해외 통신시장 개척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SKT의 이러한 도전들이 성공하느냐 마느냐에 우리나라 정보통신(IT) 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점. 실제로 SKT의 22년 역사는 우리나라 통신산업 발달사와 궤를 같이한다.
SKT ‘멜론’ 서비스를 즐기고 있는 여성들(위).2005년 11월25일 광주시 월산동에서 연탄배달 봉사활동을 펴고 있는 SKT 서부지역본부 직원들(오른쪾).
5월 한국이동통신㈜로 사명을 바꿨고, 94년 SK그룹이 경영권을 획득한 뒤 97년 3월 비로소 지금의 ‘SK텔레콤’이란 브랜드를 갖게 됐다.
SKT 출범 후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은 그야말로 경이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SKT는 수많은 ‘세계 최초’ 기록을 쏟아내며 서비스 업계와 장비 업계, 단말기 업계를 두루 선도했다. 96년 1월1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세계 최초의 CDMA 방식 이동통신 서비스를 성공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 96년 이후부터는 연평균 1조5000억원의 설비투자로 국내 통신 장비시장 경쟁력 향상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휴대전화 산업 성장에 결정적 구실을 했음은 물론이다.
SKT 조신 전무는 “2005년에도 우리 회사는 차별화한 콘텐츠 비즈니스로 무선인터넷의 질적·양적 성장을 선도했다”며 “요즘 통신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컨버전스(디지털 제품·서비스의 융복합화)도 어떤 거창한 그림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SKT가 ‘생활의 중심’이 되기 위해 벌이고 있는 다양한 사업이 두루 성공하는 그날 자연스레 구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음반 등 타 산업군과 윈-윈 전략
조 전무의 말대로 SKT는 2005년, ‘멜론’을 통한 유료음악 시장 진출(2005년 11월 말 현재 회원 390만명, 유료가입자 56만명), 유·무선 게임 포털 GXG의 성공적 런칭, 모바일 싸이월드(누적 이용자 수 120만명)의 폭발적 인기로 무선인터넷 사업의 새 전기를 맞았다. 2005년 5월 상용서비스를 시작해 이미 가입자 30만명을 확보한 위성DMB 서비스의 잠재력 또한 무한하다. 특히 이들의 성공은 각각 음반업계, 게임업계, 콘텐츠 업계 등 타 산업군과의 윈-윈 전략을 통해 달성한 것이어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2006년 SKT의 주요 과제는 WCDMA 기술을 한층 업그레이드한 HSDPA(하향 고속화 패킷 접속 방식) 기술 상용화와 글로벌 사업의 성공적 추진이다. 미국과 중국, 베트남과 남미에서 SKT 서비스로 음악을 듣고, 게임을 즐기고, 가족들과 화상 통화를 하게 되는 그날, 한국의 통신산업 또한 비로소 진정한 ‘세계 최고 수준’임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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