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진 의원이 후원금 없는 정치를 주제로 그린 그림일기.
지역구민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한국의 정치 풍토에서 과연 이런 정치가 가능할까. 이계진 의원(한나라당 대변인·원주)이 이런 정치실험에 나섰다. 그의 정치실험은 후원금을 받지 않고 세비로만 유지해가는 의정활동에서 출발했다. 이 의원은 17대 국회 등원 후 후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지금까지 순전히 세비로만 정치를 해왔다. 남은 임기도 세비로만 의정활동을 할 계획이다. ‘돈으로 시작해 돈으로 끝나는’ 정치현실을 감안하면 이 의원의 독특한 정치실험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17대 국회 초기 몇몇 의원들도 이 의원이 가는 길에 동행했지만 20여 개월이 지난 지금 함께 가는 의원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그만큼 이 의원이 추진하는 정치실험이 고단함을 말해준다.
지역구민 챙기기·민원 거부는 기본
세비로만 하는 정치를 성공시키려면 보통 정치인이 가는 길과 다른 험난한 길도 마다해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동료 의원들이 죽기 살기로 하는 지역구민 챙기기를 포기하는 것은 기본이다. TV나 신문 등 언론에 이름을 내려는 욕심도 버려야 한다. 홍보에 드는 지출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뭐가 그렇게 잘났느냐”는 힐난과 “4년 후에 보자”는 협박을 예사로 들을 수 있는 뱃심도 키워야 한다.
17대 국회 등원 후 20여 개월째 직접 작성한 세비 수입과 지출 내역을 보면 이 의원은 어느 정도 뱃심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2006년 5월 공개 예정인 ‘2년간 세비정치 대차대조표’를 미리 들여다본 결과 지역구민과 홍보비 등과 관련한 지출은 거의 없었다. 또 이 대차대조표에 따르면 후원금을 받지 않고 정치를 해도 적자를 보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확인됐다.
2005년 3월 한 달 이 의원의 총수입은 841만원. 국회에서 세비(611만원), 공공요금(49만원), 차량유지비(160만원) 등이 지급됐고, 원고료 20만원도 수입 가운데 일부. 수입원은 단순하지만 지출 내역은 다양하다. 이 의원의 지출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수도권지키기 투쟁위원회’ 회비로 100만원을 낸 것. 국회양성포럼 회비 10만원도 빠져나갔다. 보통 정치인의 경우 한 달 평균 지출되는 부의금과 축의금은 수백만원 규모. 그러나 이 의원이 3월 한 달 부의금과 축의금으로 지출한 돈은 각각 10만원. 반면 각종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탑승한 항공요금이 71만원이나 됐다. 점식, 저녁 등 식비로는 80만원. 역시 다른 정치인에 비해 5분의 1 규모. 이 의원은 휴일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 비용이 5만원. 이발비와 구두를 닦는 데도 3만원을 썼다. 원주에 있는 지역구 사무실에도 60만원이 내려갔다. 이렇게 쓰인 세비는 모두 579만원. 남은 돈 260만원은 이 의원의 개인 활동비로 활용된다. 기자들과 밥을 먹거나 동료 의원 및 학교 선후배 등과의 회동 경비로 쓴다. 책을 구입할 때도 이 돈을 사용한다.
절약하며 사용해도 세비는 늘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정치자금 차입의 유혹을 받는다. 방송인 시절에 벌어놓은 돈은 손만 뻗으면 잡히는 곳에서 이 의원을 기다린다. 그러나 이 의원은 한 번도 그 돈에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씀씀이를 줄였다.
정치실험을 시작할 초기에는 지금처럼 빡빡하지 않았다. 등원 3개월째인 2004년 8월 이 의원이 작성한 세비 수입과 지출 내역을 보면 당비까지 내면서도 243만원을 남기는 흑자를 냈다.
‘세비 정치’ 집착 더 큰 것 잃는 고민도
세비로만 정치를 하겠다는 이 의원의 공약과 정치 약속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생활비다. 생활비를 달라는 아내의 요구는 못 들은 척한다. 이 의원은 아내의 생활비 요구에 “4년 동안 2억 정도 까먹자”고 역습, 논쟁을 종결했다. 그런 그도 자녀들의 학비 지원과 용돈 요구를 거절하기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결국 생활비는 그가 방송활동하면서 벌어놓은 돈으로 충당한다.
이 때문에 이 의원의 정치실험을 부정하는 사람도 많다. ‘작은 정치에 몰입, 큰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거나 ‘가정을 방치하는 정치’라는 식의 문제 제기이다. 이 의원도 이런 비난 여론을 잘 안다. 그 스스로 세비 정치에 집착, 더 큰 것을 잃는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2004년 국정감사 당시 동료 의원들은 피감기관이 바뀔 때마다 정책자료집을 들고 나왔지만, 그는 종이 몇 장으로 국감에 나섰다. 그 흔한 우수의원 타이틀 하나 거머쥐지 못한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라는 자괴감도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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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민을 읽은 지인들은 “후원금을 받고, 받는 것만큼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며 타협안을 제시했다. 이 의원은 그런 제의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결국 원칙을 지키기로 했다. “후원금을 받는 순간 제대로 된 의정활동을 할 수 없다는 믿음이 타협안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후원금) 그게 합법이라지만 마음의 빚까지 합법의 범주에 들어갈 수는 없다. 10만원이 아니라 밥 한 그릇이라도 마음의 빚은 어쩌지 못한다. 내가 소신을 가지고 반대하는 법안을 후원금을 낸 사람이 나서 지지해달라고 한다면 원칙을 지킬 수 있겠는가.”
이런 그를 1년간 겪은 지역구민들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며 예외로 치는 부류들이 이 의원을 지원한다. 이들은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겠다는 이 의원의 뜻은 높이 살 만하다”고 평가한다. 반면 합법적 정치자금으로 더 많은 의정활동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상반된 평가도 뒤를 잇는다. 20여 개월째 진행되는 이 의원의 정치실험은 과연 성공한 것일까, 실패한 것일까. 이 의원은 지금도 정치실험을 멈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