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디 산티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 1888년산. 양조장 지하 셀러에는 현재 두 병이 남아 있다.
관심의 초점은 과연 브루넬로가 장기 숙성에 적합한가라는 것.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장기 숙성 와인은 프랑스산이 전부라고 단정했다. 참석자들은 1888년산과 1891년산 시음에 특히 관심을 보였다. 한 세기 전에 담근 와인이 여전히 마실 만하다면 이탈리아 와인에 대한 숙성력 논란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음 뒤 전 ‘헤럴드 트리뷴’ 기자인 니콜라스는 1888년산과 1891년산에 대해 “어떤 사람이 이 103세의 와인만큼 건장하리요?”라고 찬탄했다.
어떻게 이탈리아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익어가는 와인이 등장할 수 있었을까.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브루넬로 품종을 만든 비욘디 산티 가문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대를 이으며 와인 양조에 매진해 토스카나의 자그마한 마을 몬탈치노를 오늘날 이탈리아 와인의 중심에 올려놓은 가문이다. 그의 할아버지 페루치오가 육종에 성공한 브루넬로는 산지오베제의 변종으로 ‘위대한 와인’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를 만드는 유일한 품종이다.
비욘디 산티의 특별한 전통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다. 런던 주재 이탈리아 대사관의 만찬에 제공된 1955 리제르바(오크통에서 평년보다 1년 더 숙성한 와인)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해 많은 국빈을 놀라게 했다. 이탈리아에도 이런 와인이 있다는 사실에 많은 와인 애호가들은 경탄해 마지않았다. 그리하여 ‘여왕의 와인’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미국 와인잡지 ‘와인 스펙테이터’ 역시 그 진가를 놓치지 않았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베스트 10’의 하나로 선정한 것이다. 이는 이탈리아 와인 중에서 유일하다.
20세기 대표 ‘베스트 10’ 선정 드높은 명성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국가대표급 와인 비욘디 산티 브루넬로는 신맛과 타닌이 풍부한 브루넬로를 전통 있는 포도밭 일 그레포에서 재배한다. 이 밭은 필록세라(포도뿌리혹벌레)로 황폐해진 뒤 페루치오가 미국산 포도나무 뿌리를 들여다 산지오베제에 접붙인 나무로 조성됐다.
남들이 여러 품종을 혼합해 당장 마시기 좋은 와인, 팔기 쉬운 와인에 매달릴 때도 비욘디 산티 가문은 오로지 마을의 정체성이 담긴 산지오베제를 통해 숙성력 좋고 오래 즐길 수 있는 최고 와인을 양조하려 애썼다. 예를 들어 청포도를 섞어 산지오베제의 타닌과 신맛을 잠재우기보다 긴 숙성기간을 통해 그 속성들이 와인 내부로 스며들도록 했다. 그러니 비욘디 산티는 양조기간이 5~6년 이상이다.
브루넬로를 재배하는 이 지역 와인 양조업자들은 비욘디 산티 가문의 생각과 달리 오크통 숙성기간을 단축했다. 짧아진 숙성기간에 브루넬로의 타닌과 신맛을 다스리려니 기존의 큰 오크통보다 바리크(barrique, 225리터들이)를 많이 쓰게 됐고, 인위적인 오크향이 짙어졌다. 브루넬로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은 것이다.
- 우리나라 최초의 와인경매사이자 와인경매회사 아트옥션 대표. 고려대·현대백화점 문화센터 강사. 격주로 연재될 이 칼럼을 통해 와인과 그 문화·역사·사람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