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6일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에서 비트코인 62만 개가 오지급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빗썸라운지 삼성점. 뉴스1
비트코인을 잘못 받은 고객 중 80여 명이 매도에 나서면서 비트코인 가격은 순식간에 16% 급락해 한때 8111만 원까지 떨어졌다. 빗썸은 오지급 20분 만에 상황을 인지하고 7시 35분 거래·출금 차단을 시작했다.
이번 사태로 가상자산 시장 취약성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암호화폐 계정 수 1000만 시대. 거래소 보안 시스템을 믿을 수 있는 걸까.
전 세계 비트코인 3% 풀려
이번 사태의 일차적 원인은 내부 통제 부실이다. 은행이나 증권사, 여타 가상자산거래소가 여러 단계 승인을 거치는 것과 달리 빗썸은 담당자 실수 한 번으로 천문학적 금액이 시장에 풀렸다. 만일 누군가가 실수가 아닌 의도를 갖고 암호화폐로 지급하려 했다면 시세를 조종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빗썸은 사고 발생 후에야 고객 자산 이동이나 당첨금을 지급할 때 2단계 이상을 거치는 ‘다중 결재 시스템’을 재발 방지책으로 내놨다.한 사람의 실수로 61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이 어떻게 지급될 수 있었을까. 비트코인 62만 개는 전 세계 비트코인 총 발행량(2100만개)의 3%에 해당하는 수량이고, 빗썸 비트코인 보유량은 4만3000개에 불과하다. 사실상 거래소 측이 갖고 있지 않은 ‘유령 코인’이 풀린 셈이다.
이는 빗썸이 장부거래 구조라서 가능했다. 매매가 이뤄질 때마다 장부를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장부상 잔고만 변경하고 이를 추후에 고치는 방식이다. 은행이나 증권사, 여타 가상자산거래소도 이와 같은 방식을 사용한다. 하지만 실제 갖고 있는 가상자산 수량과 장부상 수량을 상시 대조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가령 업비트는 내부 장부와 실제 코인 지갑 잔액을 5분 주기로 대조한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제일 중요한 부분은 회사 자산이 빠져나갈 때 이중 삼중으로 확인하는 절차가 없었다는 것”이라며 “장부거래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법적 규제 장치가 마련된 레거시 금융과 달리 가상자산은 자체 거래소 통제에 맡겨뒀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빗썸 측은 사고 발생 40분 만에 오지급된 비트코인 62만 개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99.7%(61만8212개)는 장부 수정 방식으로, 나머지 1663개는 잘못 받은 이용자들로부터 돈으로 회수했다. 하지만 나머지 125개(약 130억 원 규모)는 돌려받지 못했다. 그중 100억 원어치는 다른 가상자산을 사는 데 쓰였고, 30억 원어치는 현금화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이들이 돈을 돌려주지 않고 버티면 어떻게 될까. 법적으로 보면 민사상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을 할 경우 빗썸의 승소 가능성이 크다. 비트코인 오지급은 일종의 착오 송금으로 볼 수 있다. 빗썸은 이벤트 당첨금을 비트코인이 아닌 2000~5만 원으로 명시했기 때문이다.

이재원 빗썸 대표(오른쪽)가 2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비트코인 오지급 사태 관련 긴급현안질의에 참석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거래소 법적 규제 필요성 도마 위로
다만 형사처벌은 장담할 수 없다. 잘못 송금된 암호화폐를 써버리는 경우 횡령이나 배임죄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대법원은 2021년 12월 15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이체받은 뒤 이를 자신의 계정으로 옮긴 혐의로 기소된 A 씨에 대해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1, 2심은 비트코인을 ‘재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횡령 혐의는 무죄로,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관련 법률에 따라 법정화폐에 준하는 규제가 이뤄지지 않는 등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고 있고, 그 거래에 위험이 수반되므로 형법을 적용해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배임 혐의도 무죄로 판단했다.최영노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비트코인은 재산 가치가 있기 때문에 가상자산 역시 민사상 부당이득반환 청구 대상이 된다”며 “대법 판례상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지만 배임 경우엔 인정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비롯해 가상자산 시장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원회 의장은 2월 10일 “가상자산의 신뢰 기반을 흔드는 일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이달 중 발의해 입법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도 현행법을 바탕으로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했다. 금융감독원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을 중심으로 빗썸에 대한 제재 수단을 최대한 강구하고, 오지급된 비트코인을 매도한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황석진 교수는 “현행법상 가상자산거래소 규제는 기존 금융사와 비교할 때 구체성 부족 등 한계가 분명하다”며 “암호화폐 거래가 시작된 지 10년이 넘은 만큼 입법을 통해 이용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안녕하세요. 문영훈 기자입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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