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0

2008.06.17

아프리카 바꾸는 착한 휴대전화

  • 입력2008-06-11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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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바꾸는 착한 휴대전화

    아기를 업고 휴대전화를 받는 잠비아의 한 여인.

    아프리카 기업인의 경험을 들어보면 자본주의 기업과 아프리카 문화의 양립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기업을 세우면 그는 결국 파산하거나 자신의 대가족과 인연을 끊는 수밖에 없다. …어떤 세네갈 장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의 집에는 전화가 한 대 있었는데, 그는 주민 모두가 이 전화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결국 그는 전화도 잃고 장관직도 잃고 말았다.

    -기 소르망 ‘자본주의 종말과 새 세기’ 중에서

    세네갈은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 개막전에서 프랑스를 꺾은 이변의 주인공으로 기억된다. 아프리카의 축구 저력은 2006년 독일 월드컵대회에서 한국이 토고를 상대하면서 다시 확인된 바 있다. 변변한 경제 기반이 없는 나라들에서 축구는 출세와 일확천금의 기회로 여겨지고 수많은 소년들이 그 길에 입문한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는 축구 중계를 할 때 전화기가 활용된다고 한다. 제대로 된 방송장비가 갖춰져 있지 않기에 유선전화기나 휴대전화로 보낸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라디오를 타고 청취자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그러하듯, 아프리카도 유선망이 제대로 깔리기 전에 곧바로 이동통신으로 건너뛰어 휴대전화가 엄청난 속도로 보급되고 있다. 아프리카 전체의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2006년 1억명을 넘었고, 올해 6월 3억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미국과 캐나다의 가입자를 합친 수를 능가한다. 아프리카에서 이동통신 사업은 외국자본이 많이 들어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국민 1인당 월수입의 10~15%를 이동통신 요금으로 지불하고 그 대부분이 외국으로 빠져나간다.



    그러나 아프리카에는 여전히 전화가 사치품인 지역이 많다. 전기가 보급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휴대전화를 자동차 배터리나 태양광 에너지로 충전해야 한다. 전화비를 아끼느라 갖은 방법을 동원하는 모습도 애처롭다. 예를 들어 어떤 아프리카 전화회사는 통화 시작 후 3초가 지날 때부터 요금을 부과하는데, 이 때문에 이용자들은 서로가 전화를 번갈아 걸어가면서 3초 이내로 말을 하고 끊었다가 다시 거는 식으로 통화한다고 한다.

    정보교환 통해 시장 투명성 높이고 경제 수익도 증가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휴대전화는 개인 미디어가 아니다. 하기야 가난한 살림에 식구들이 각자 휴대전화를 소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공유의 범위가 가족을 넘어 동네로까지 확대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전화가 처음 보급되던 시기 시골에서 그렇게 했다. 그런데 그 공동체 결속 정도가 우리보다 훨씬 강력한 듯하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 세네갈에서는 장관이 되어 전화를 놓게 되면 마을사람 전부가 당연하게 사용할 권리를 주장한다. 기 소르망은 그렇듯 개인이 집단으로부터 분화돼 있지 않은 문화에서는 자본주의가 싹틀 수 없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휴대전화는 가난에서 벗어나는 데 결정적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와 관련해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중요한 사실을 증언한다. “작가 로즈 루칼로 오위노 씨에게서 들은 얘기다. 그는 최근 나이로비 동쪽의 응구타니 마을에서 염소를 키우는 여인들과 얘기를 나눴다. 여인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중간상들의 농간에 넘어갔다고 불평했다. 나이로비 시장의 염소 가격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4개 마을이 공동으로 휴대전화를 구입해 나이로비 시장의 염소 가격을 알아볼 수 있게 됐다. 이제 그들은 이렇게 얻은 소득으로 소액대출은행을 개설하는 문제를 상담했다.”(토머스 프리드먼 ‘아프리카를 바꾸는 휴대전화-생리대’, 동아일보 2007년 4월11일)

    이런 변화는 휴대전화 보급과 함께 아프리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커피나 코코아를 재배하는 농부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가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가장 유리한 때 그 곡물들을 팔 수 있게 됐다. 말하자면 휴대전화가 시장의 투명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주민들 사이에 정보교환을 증진하면서 경제적 수입 향상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폰(Grameen Phone)이 훌륭한 성공 사례를 보여주자, 우간다도 비슷한 방식의 빈곤 극복 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케냐에서는 통화시간 쿠폰을 구입해 먼 곳에 있는 가족이나 친지에게 보내주면, 그쪽에서는 그것을 가게에 팔아 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은행이 없는 곳에서 통화시간 쿠폰이 현찰 기능을 하는 것이다. 또한 케냐에서는 ‘원 월드’라는 단체가 에이즈 퇴치에 휴대전화 문자서비스를 활용한다. 가입자들은 그 병이나 자신의 증세에 대해 언제든 질문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난민캠프에서는 식량을 배급받는 데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활용된다.

    유선 인프라가 취약해 컴퓨터 보급이 어려운 개발도상국에서 휴대전화는 인터넷 세계에 접속하는 단말기가 된다. 그것은 빈곤 극복뿐 아니라 국민으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합당한 법률서비스를 받는다거나 정보 공개를 통해 관료들의 부패를 감시할 수 있는 것 등이 그로 인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휴대전화가 개발도상국 발전에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단말기 값은 통신망 확대에 걸림돌로 남아 있다. 그래서 모토롤라 같은 회사는 빈곤국가를 원조하는 차원에서 단말기를 저렴하게 공급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을 연결함으로써 경제를 활성화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개발도상국의 그 기초를 닦는 일에 지구촌 시민들의 관심이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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