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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가 만난 따뜻한 세상 ⑭

“마음의 때까지 깨끗이 씻어드려요”

  • 김은지 자유기고가 eunji8104@naver.com

“마음의 때까지 깨끗이 씻어드려요”

“마음의 때까지 깨끗이 씻어드려요”

이동목욕봉사 7년차인 주부 봉사자들. 권기숙, 박미숙, 하영란 씨(왼쪽부터).

공익근무요원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오는 임○○ 할머니(90세). 집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목욕차와 봉사자들을 보곤 함박웃음을 짓는다.

“어머! 할머니, 오늘 이쁜 신발 신으셨네요.”(봉사자 하영란 씨)

목욕을 위해 보청기를 빼고 온 할머니에게 봉사자들은 정답게 ‘큰 목소리’로 말을 건다. 차량 뒤편에서 변신로봇 같은 기계음을 내며 특수장치가 내려와 휠체어를 탄 할머니와 공익요원을 들어 올려준다. 욕조, 물탱크, 냉난방 시설이 완비된 목욕차에 할머니를 조심스럽게 태우고 나면, 4명이 1조로 구성된 일산 문촌마을 19단지 부녀회의 목욕봉사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다른 사람 앞에서 몸을 보이는 거라 할머니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 수 있잖아요. 그런 마음을 같은 여자로서 이해하기 때문에 할머니를 편안하게 해드리려고 노력합니다. 더 밝게 웃고 즐겁게 일하면서요.”(봉사자 권기숙 씨)

탈의를 도와드린 뒤 할머니를 욕조에 눕힌다. 이제 양손에 녹색과 노란색 이태리타월을 끼고 비누칠에 들어간다. 오늘은 팀원 1명이 참가하지 못해 물 온도를 맞출 전담자가 없어 조금 더 바쁘다. 막 때를 밀려는데 할머니가 손목에 난 상처를 보여주면서 여기는 살살 밀어달라고 한다.



4인1조 봉사단 이동목욕차로 마을 곳곳 누벼

“네, 걱정 마세요. 어디 부딪히셨나 보다.”(봉사자 박미숙 씨)

목욕을 시켜주다 보면 할머니의 몸 구석구석 멍과 상처를 보게 된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아파온다고. 이렇게 목욕봉사는 자연스럽게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는 일이 된다.

“한번은 온몸에 화상을 입은 할머니를 씻겨드린 적이 있었어요. 거동이 불편하지만 가족들이 돌봐주지 않아 손수 음식을 만들다가 화상을 입으신 거죠. 덕지덕지 붙어 있는 상처 때문에 때를 밀지는 못하고 살살 씻어드렸어요.”(하영란 씨)

그런 날은 잠자리에 들 때도 걱정이 된다. 요즘은 잘 계신지 궁금하기도 하다. 봉사자들은 명절이면 목욕봉사로 만난 할머니를 찾아뵙기도 한다. 누군가 나의 상처를 같이 아파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할머니에게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반대로 밝은 분도 많아요. 특히 장안동 할머니는 미소가 정말 고와서 저희가 ‘미소천사’라고 부른다니까요.”(권기숙 씨)

장안동 할머니의 행복 비결은 바로 할아버지의 사랑. 할아버지가 아프면서도 할머니에게 너무나 잘해주고 아껴주기 때문에 장안동 할머니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신다. 이럴 땐 봉사자들도 활력을 얻어간다.

“목욕봉사를 하면서 제가 도움을 드린 게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받고 오는 것 같아요.”(박미숙 씨)

목욕봉사 7년차, 어떻게 해야 할머니들에게 더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네 사람 모두 ‘노인요양자격증’을 따려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노인질환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그분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렇게 봉사도 같이 하고 공부도 같이 하는 봉사자들, 서로간의 신뢰가 남다를 것 같다.

“우리 팀 우정이 각별해요. 자기 몸을 사리지 않으면서, 힘든 일도 본인이 먼저 하는 걸 보니까요.”(박미숙 씨) “그렇게 보였어?(웃음)”(하영란 씨)

비가 올 것 같은 후텁지근한 날씨, 목욕차 안은 더욱 후끈하다. 할머니 때를 싹 벗겨드리는 1시간 동안 앞치마를 두른 봉사자들의 옷은 물과 땀으로 흥건해졌다. 물에 오래 담근 손이 불었을 듯한데, 쉬지 않고 움직이다 보니 오히려 불을 새가 없다. 그래도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한다.

“처음엔 힘으로만 하다 보니 몸살이 나기도 했는데 이제는 요령을 터득했죠. 더 많은 분들을 더 자주 씻겨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요.”(권기숙 씨)

이동목욕봉사는 전국 여러 복지관, 재활센터 등에서 제공하고 있다. 문촌7복지관에서는 월~금요일 실시하며 월 80여 명이 목욕봉사를 받고 있다. 일산구내라면 어디든 찾아가는 목욕차. 이렇게 서비스 지역이 넓은 데다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부족해 한 달에 1회 이상 목욕서비스를 받기는 사실 어렵다. 그래서 문촌7복지관에서는 이동목욕 이용자 중에 거동할 수 있는 분들을 동네 공중목욕탕에서 씻겨드리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처음엔 힘겨웠지만 이제 요령 생기고 보람도 가득”

“마음의 때까지 깨끗이 씻어드려요”

문촌7복지관에서는 이동목욕봉사를 월~금요일 실시하며, 월 80여 명이 이 봉사를 받고 있다. 목욕차는 일산구내라면 어디든 찾아간다.

이동목욕차 서비스 진행에 가장 어려운 점은 사람들의 이기주의다. “이동목욕차가 아파트로 갈 때는 경비실이나 관리사무소에서 전기를 연결해 사용합니다. 그런데 가끔 일부 주민들이 ‘공동전기료 많이 나오니까 이곳에서 연결하지 말고 대상자의 집에서 직접 연결하라’고 말할 때, 작은 전기료조차 나눌 수 없는 마음이 참 안타깝습니다.” (박계범 사회복지사)

노인복지는 이제 ‘그 대상자의 집’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중도장애인이 증가하는 만큼 가정에서 목욕하기가 불편한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과중한 간병부담은 가정 내 큰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박계범 씨)

사실 우리 할머니도 돌아가시기 전 당뇨 합병증으로 거동이 불편했었다. 그때 몇 년간 혼자서 할머니 목욕을 시켜드렸던 엄마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할머니가 목욕봉사를 받는 오늘, 가족들도 잠깐이나마 푹 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목욕 마무리 단계. 깨끗하게 감은 머리를 드라이하고 빗으로 예쁘게 빗겨드린다. “어머, 우리 할머니 정말 예쁘시네. 시원하세요?”(박미숙 씨) “시원해요.(웃음) 고마워요. 복 많이 받으세요.”(임○○ 할머니)

뽀얀 얼굴의 할머니와 덕담을 나눈다. 할머니는 얼마나 개운하실까. 곁에서 지켜만 본 나도 마음이 개운해져 돌아오는 길에 바나나우유에 빨대 꽂아 쭉 마시고 싶었다. 자원봉사 참여 문의 : 자치구 자원봉사센터 (국번 없이) 1365, 서울시 자원봉사센터 (02) 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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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2008.06.17 640호 (p64~65)

김은지 자유기고가 eunji81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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