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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한미동맹

  •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학)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한미동맹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한미동맹
이번에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한미동맹이 군사동맹의 수준을 넘어 경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포괄동맹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한미동맹이 체결됐을 당시 양국 관계의 질적 수준은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쟁기념비에 새겨진 비문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조국의 부름에 답한 아들과 딸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이는 한미관계가 북한과 공산세력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동맹으로 출발했음을 방증한다.

한미동맹으로 안보를 확보한 한국은 자유무역과 수출주도형 전략을 통해 세계 12위 무역국가로 올라섰다. 외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동맹으로 출발한 한미동맹은 가치와 정치적 이념을 공유하는 동반자적 관계로 발전했다.

이번 한미FTA 타결은 한미동맹이 세계화 시대를 맞이해 경제적 상호의존성 증대를 통해 질적으로 더욱 심화된 21세기형 포괄동맹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포괄동맹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는 미국의 동맹 선택기준에 대한 전략적 발상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냉전 상황이 심화되면서 미국은 봉쇄전략을 채택한다. 이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미국은 ‘다섯 개 중심국가론’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미국 소련 영국 서부유럽 일본이 포함됐다. 미국은 이들 국가를 동맹국으로 끌어들여 소련에 봉쇄정책을 추진해나가면 소련이 붕괴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때 중심국가와 동맹국을 선택하는 기준은 근대적 군사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경제력과 기술인력의 보유 여부였다.

미국이 보기에 아시아에서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는 나라는 일본뿐이었다. 1949년 공산혁명을 성공시킨 중국은 인구만 많을 뿐 경제력과 기술력은 보잘것없었기에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일본이 미국의 동맹국이 된 배경에는 미국이 국익을 우선하는, 철저히 현실주의적인 동맹 선택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어제의 적국이 오늘의 동맹국으로 바뀌는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을 목격할 수 있다.

군사·정치 가치 공유 넘어 경제 이해관계도 공유

6·25전쟁 직전 한국 지도자들이 미국에 동맹조약 체결을 요청했을 때, 미국은 이 같은 기준의 어떤 요건도 충족하지 못하는 한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북한-소련-중국 등 북방 공산 3국이 사전 공모해 일으킨 6·25전쟁 이후 한국의 안보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다섯 개 중심국가’ 중 하나인 일본에 대한 공산세력의 위험이 현실화되면서 한미동맹이 체결됐다. 이번 한미FTA 체결은 미국이 비로소 한국을 경제력과 기술력을 갖춘 동맹국가로 인정했음을 말해준다.

이번 사건은 특히 일본과 중국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구한말 일본은 당시 제국이던 영국과 동맹을 맺어 서구로부터 최초로 인정받은 동양 국가가 됐다. 이번 타결은 영일동맹에 버금가는, 경제 측면에서 아시아 지역의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돼야 할 것이다.

한국은 시장을 미국뿐 아니라 세계를 향해 개방함으로써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해 경제는 물론 지식과 문화 여러 분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재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오늘의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간의 자유와 평등 원칙 같은 훌륭한 제도가 정착되고 리더십이 결합될 때 국민의 창의성과 잠재력이 최고로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미동맹 관계를 더욱 심화시켜 최근 싹트고 있는 열강들 사이의 세력균형 변화에 대응해나가야 할 것이다.



주간동아 2007.04.17 581호 (p100~100)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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