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1

2007.04.17

끝 모를 욕망, 높이 세우기 경쟁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7-04-11 2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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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 모를 욕망, 높이 세우기 경쟁

    '킹콩'

    영화 ‘반지의 제왕’ 감독 피터 잭슨에 따르면 1930년대는 ‘마지막 탐험의 시대’였다. 1933년에 처음 만들어진 ‘킹콩’의 리메이크 작품을 찍으면서 원작의 시대 배경인 30년대를 그대로 가져온 이유를 묻자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탐험의 시대에 영화 속 문명인들은 오지에서 괴수를 발견했다. 그들이 킹콩을 데려온 곳은 문명의 심장부 뉴욕이었는데, 뉴욕의 30년대는 마천루의 시대였다.

    마천루들 속에 가장 우뚝 선 것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다. 원작에서도 리메이크작에서도 대부분 관객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킹콩이 엠파이어 빌딩을 붙잡고 올라가는 장면일 것이다. 미녀를 엠파이어 꼭대기에 올려놓고 킹콩이 헬리콥터와 싸우는 모습은 ‘킹콩’을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 만약 감독에게 이 무시무시한 괴물을 통해 문명을 풍자하려는 뜻이 있었다면, 인간의 문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엠파이어 빌딩 이상의 것을 찾기도 어려웠을 듯하다.

    마천루는 그런 상징이 없더라도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아래에서는 하늘의 구경거리였고, 그 안에 들어가 위로 올라가면 구름에 앉은 것처럼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엠파이어 빌딩은 그런 이유로 많은 영화에서 주인공 같은 구실을 했다.

    1950년대 영화 ‘어페어 투 리멤버’에서 우연히 사랑에 빠진 두 남녀는 훗날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는데, 그곳이 바로 엠파이어 빌딩 옥상이었다. 이 영화는 1990년대 ‘러브 어페어’라는 제목으로 다시 영화화됐는데, 다른 부분은 다소 바뀌었지만 결말은 그대로였다.

    엠파이어 빌딩은 마천루의 제국 뉴욕에서도 오랜 기간 제왕이었다. ‘킹콩’이 만들어졌을 때 이 제왕은 이제 막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어페어 투 리멤버’에 등장했을 때는 20여 년 동안 여전히 왕좌를 지키고 있었다.



    엠파이어 빌딩이 건립된 1930년대가 마천루의 시대가 됐던 것은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조건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특히 그 전 세기 말부터 비약적으로 발달한 강철과 콘크리트, 엘리베이터 기술은 이 시기 고층건물 건축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만족시켰다. ‘바벨탑’의 꼭대기가 어디인지 내기라도 하듯 하늘 위 전쟁이 펼쳐졌다.

    1930년대 세계 최대 도시에서 벌어졌던 마천루 전쟁이 세기를 넘겨 다시 전개되고 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하늘로 향한 경쟁의 무대가 개발도상국들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서울에도 620m 높이의 고층건물이 들어선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대만의 타이베이101(508m)보다 100m 이상 높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도시의 기능성은 물론 물리적 이미지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마천루 예찬론자들의 말처럼 서울의 하늘에 볼거리가 많아졌다고 반길 것일까? 아니면 철 지난 놀음에 뛰어든 시대착오적 기념비에 불과한 것일까?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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