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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사회학

욕실 멀티공간 변신은 무죄

  •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장

욕실 멀티공간 변신은 무죄

욕실 멀티공간 변신은 무죄
19세기 말의 미국인들은 욕실을 ‘가장 작은 방’이라고 표현했다. 욕실은 남들에게 보일 수 없는 온갖 행위를 하는 은밀한 장소이자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니 참으로 적절한 은유다. 그런데 욕실만큼 생활수준이나 삶의 질을 잘 보여주는 장소도 없다. 욕실의 크기, 기능, 인테리어 등은 그 사람 혹은 그 가정의 생활 패턴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몇 년 전부터 공중화장실에 대한 대대적인 환경개선 운동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은 다들 피부로 느끼고 있다. 삶의 질에 민감해진 사람들이 주변의 작은 곳에까지 시선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공중화장실을 더 이상 냄새나는 공간으로 방치하지 않게 된 것이다. ‘변소’가 ‘화장실’로 격상되는 동안 공중화장실에 걸린 액자 그림의 공급으로만 연간 8000억원대 시장이 형성됐다. 공중화장실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가 만들어낸 시장이다.

집에서 모든 것 즐기려는 욕구 … 홈 비즈니스 각광

이제 그 변화가 가정으로 번지고 있다. 프랑스 귀족들의 애완용 조랑말을 가리키는 용어였던 ‘비데’가 일상어로 자리잡았고, 욕실용 비데는 어느새 6000억원대 시장으로 훌쩍 커버렸다. 비데뿐만이 아니다. 욕실은 수많은 신제품과 생활개선 상품들로 꾸며지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 뉴스를 보면 서울 성동구에 건설되는 어느 아파트의 경우 욕실의 모든 마감재를 원목으로 사용한 ‘원목 일체형 웰빙 욕실’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처럼 새로 들어서는 고급 아파트들은 욕실의 전시장이 돼가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일반 가정에서 쓰는 샤워기구도 다양해져 보일러를 이용해 스팀을 발생시키는 스팀 샤워 부스가 있고, 허리를 마사지하는 마사지용 샤워도 있다. 그저 욕조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은 채 편안히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욕실에서 TV나 영화, 인터넷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멀티미디어 욕실이 기다린다. 어떤 이는 유명 작가의 그림이나 가족 얼굴이 새겨진 타일로 욕실을 갤러리처럼 꾸미기도 한다. 이쯤 되면 욕실은 배설과 청결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문화생활을 즐기는 공간으로 재창조되는 셈이다.



유럽을 비롯한 서양에서도 최신 트렌드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 ‘인스피리언스(insperience)’다. 실내를 뜻하는 ‘indoor’와 경험을 의미하는 ‘experience’의 합성어로, 그동안 실외에서 즐기던 다양한 놀이와 문화행위를 실내에서 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피트니스 클럽에서나 볼 수 있던 운동용품을 거실 한쪽에 갖다 놓고 거실을 미니 스포츠센터처럼 만든다든지, 집 안에 홈시어터 시스템을 갖추고 극장 같은 분위기를 재연하는 것이 이 트렌드에 해당한다. 어찌 보면 부자들의 사치 같지만 실제로 이들 제품의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웬만한 중산층이면 욕심을 부려볼 수 있게 됐다. 인스피리언스는 위험에 노출된 집 바깥의 활동을 줄이고, 안락함과 안전이 보장되는 집에서 모든 걸 즐기려는 욕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욕실의 변화도 이런 욕구가 만들어낸 인스피리언스 트렌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가정을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라 놀이터이자 문화공간으로 재창조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홈’자가 붙는 다양한 비즈니스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 트렌드는 ‘홈’자 돌림의 형제들인 홈시어터, 홈스파, 홈오피스, 홈바 등을 가정의 새로운 문화로 만들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이들은 각각 수천억원, 모두 합하면 수조원대의 시장으로 성장해갈 것이다.

21세기는 새로운 가치관이 단지 인식의 변화가 아니라 즉각적으로 비즈니스에 연결되는 시대다. 삶의 질에 대한 가치관의 조그만 변화가 곧바로 거대한 시장을 일구는 최초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가장 작은 방’의 변화만으로도 수조원대의 시장이 생기는 판이니, 더 큰 방의 변화는 얼마나 큰 시장을 만들어낼까? 새로운 비즈니스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변화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주간동아 2006.12.26 566호 (p98~98)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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