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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납치범을 사랑했을까

‘8년 감금’ 올드보이 사건 다룬 책 논쟁 가열 … 주인공 나타샤 발끈 “내용 모두 허구” 소송 준비

  • 빈=임수영 통신원 hofgavtel@hanmail.net

그녀는 납치범을 사랑했을까

8월23일 오후 1시. 오스트리아 빈 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한적한 마을 스트라스호프의 한 가정집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가 점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더위 때문에 열어놓은 베란다 문을 통해 금발의 젊은 여자가 뛰어들어와 소리를 질렀다. “경찰을 불러주세요. 저는 나타샤 캄푸쉬입니다!” 이로써 전후 오스트리아 범죄 역사상 가장 말 많고 탈 많던 ‘나타샤 캄푸쉬 납치 사건’이 해결됐다.

8년 전인 1998년 3월2일의 빈. 당시 열 살이던 나타샤 캄푸쉬는 등굣길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오스트리아 수사당국은 경찰 500여 명, 헬리콥터, 특수 잠수부대 등을 동원해 사라진 소녀의 행방을 백방으로 찾아 헤맸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그러다 결정적인 증언이 나왔다. 어느 노부부가 사건 당일 한 여학생이 흰색 벤츠 봉고차에 끌려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 것. 경찰은 오스트리아 전역에 등록된 약 740대의 흰색 벤츠 봉고차 소유자를 모두 조사했다. 그러나 용의자 검거에는 실패했다.

‘지하실의 소녀’ 런던에서 발매

당시 경찰이 조사한 750명 중에는 38세의 통신기술자 볼프강 프리클로필도 포함돼 있었다. 경찰은 전과 기록도 없고 특별히 눈에 띄지도 않는 볼프강을 쉽게 용의자 선에서 제외시켰다. 볼프강이 사실은 수년간 비밀리에 스트라스호프에 있는 자기 집 지하실을 개조해 지하감방을 만들고 이 안에 나타샤를 납치, 감금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타샤가 살아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들은 드물어져 갔다. 수사당국은 나타샤의 집 근처 저수지에 시체가 묻혀 있다는 가설을 전제로 대대적인 저수지 발굴작업을 전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때 때마침 나타샤가 자기 힘으로 극적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납치범 볼프강은 나타샤가 탈출한 사실을 알고는 철도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제 이 사건의 모든 정황과 진실을 아는 사람은 지구상에서 오직 한 사람, 나타샤뿐이다. 전 세계 언론은 나타샤에게 달려들었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는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 나타샤를 모처로 옮겼다.

오스트리아 정부와 언론의 실랑이는 지난 9월 오스트리아 공영방송 ORF의 30분에 걸친 나타샤 단독 인터뷰로 일단락됐다. 거의 모든 오스트리아 국민이 이 녹화 방송된 인터뷰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지만 실망을 금치 못했다. 나타샤는 인터뷰에서 지하감옥에 감금됐을 때 너무 외로워 물통으로 벽을 쳐댔다, 납치범이 밥을 제대로 주지 않아 항상 배고픔에 시달렸다,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싶다, 영화배우나 기자,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이 궁금해한 것은 나타샤와 납치범의 관계, 특히 성적 학대가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타샤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했다.

곧이어 10월 오스트리아 총선이 실시되면서 나타샤 사건은 서서히 잊혀져갔다. 그런데 최근 한 권의 책이 출판된 것을 계기로 다시금 ‘나타샤 논쟁’이 불붙고 있다.

이달 초 영국 런던에서는 ‘지하실의 소녀(Girl in the Cellar)’라는 신간이 발매됐다. ‘나타샤 캄푸쉬 스토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기자 출신의 두 저자는 나타샤 납치사건에 관련된 온갖 소문을 추적, 책으로 묶었다. 물론 검증되지 않은 추측이다. 두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납치범 볼프강은 불행한 가정에서 자라는 나타샤를 사실상 ‘구출’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나타샤의 불행한 가정환경은 그의 이름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다. 사생아로 태어난 나타샤는 외할아버지에게서 ‘캄푸쉬’라는 성을 물려받았다. 나타샤, 나타샤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양아버지는 모두 성이 다르다. 나타샤의 부모는 동거하다가 나타샤가 여섯 살 때 헤어졌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어머니가 남자 문제가 아주 복잡하며 나타샤를 자주 때리고 제대로 보살펴주지 않았다고 썼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라고 주장했다.

또한 저자들은 나타샤가 어머니의 한 남자친구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고도 추측했다. 특히 나타샤의 어머니와 납치범이 서로 아는 사이이고, 나아가 사귄 적이 있다는 소문도 썼다. 이 소문은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납치 당시부터 끊이지 않고 계속돼온 것이다.

“납치범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을 원한다고 말했다”고 한 나타샤의 증언은 볼프강이 나타샤를 납치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가능성에 무게를 더해주고 있다. 그는 나타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고 책과 비디오도 보여주었다. 나타샤는 또한 신문과 라디오도 간간이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 대가로 가족들 ‘돈방석’

저자들은 이 책에서 ‘빈 신드롬’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냈다. 은행강도에게 붙잡힌 인질들이 나중에 은행강도 편을 들었던 ‘스톡홀름 신드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주변과 고립된 인질이 한없는 외로움 때문에 유일하게 마주치는 단 한 사람, 납치범과 사랑에 빠진다는 빈 신드롬을 주장한 것이다.

납치범 볼프강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지배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외아들로 강박증적 성격을 가졌다. 또한 여자친구를 한 번도 사귀지 못한 열등감과 병적인 수줍음을 가졌다고 한다. 이에 이 책의 저자들은 성인 여성을 상대하기 벅찬 볼프강이 어린 소녀를 납치해 자신의 이상형 여성으로 키우려 했다는 가설을 세웠다. 탈출 당시 만 18세를 넘긴 나타샤는 볼프강과 함께 시장도 보러 다니고 여자친구 신분으로 볼프강의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나타샤는 외출 때마다 볼프강이 항상 옆에 따라붙어 벗어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마침내 8월23일. 나타샤가 마당에서 볼프강의 차를 청소하는 중에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진공청소기의 소음을 피하기 위해 볼프강이 잠시 집 안으로 들어간 틈을 타 나타샤는 이웃집으로 피신해 극적인 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볼프강이 자살한 것을 알고 나타샤는 통곡을 했다고 한다.

‘지하실의 소녀’가 출간되자 나타샤는 모두 사실이 아니며, 특히 어머니와 관련된 부분은 허구라고 주장했다. 나타샤는 이 책에 대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코올 중독자로 치부된 나타샤의 아버지 또한 “돈밖에 안중에 없는 쓰레기”라며 저자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흥미로운 사실은 지극히 가난했던 나타샤의 가족이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게 됐다는 점이다. 나타샤의 ORF 독점 인터뷰는 전 세계 방송국에 불티나게 팔려나갔으며, ORF는 이 수익금의 전액인 70만 유로(약 10억원)를 나타샤의 미래를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 나타샤의 자서전과 영화 판권을 따기 위해 출판사와 영화사가 줄을 섰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나타샤의 어머니는 탈출한 딸을 만난 다음 날 한 일간지와 독점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나타샤의 아버지 또한 나타샤를 만나자마자 ‘우리 딸을 위해 돈을 모아야겠다’며 기자들에게 인터뷰 대가로 돈을 요구해 한몫 챙겼다고 전해진다.



주간동아 2006.12.26 566호 (p48~49)

빈=임수영 통신원 hofgav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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