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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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5분? 난 허투루 쓰지 않아

시간관리 달인들의 24시 … 아침 시간 최대한 길게, 자투리 시간도 알차게 활용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6-12-19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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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5분? 난 허투루 쓰지 않아

    양용식 삼원정공 사장.

    “욕심부리지 마세요. 사람은 하루에 2만8800초만 일하면 됩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은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5시면 모두 퇴근합니다.”

    삼원정공 양용식(60) 사장은 시간을 언급할 때 초(second) 단위를 자주 쓴다. 그는 하루에 2만8800초(8시간)만 효율적으로 일하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야근이나 잔업이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것. 야근이나 잔업이 없는 대신 이 회사는 근무시간에 ‘독하게’ 일한다.

    스프링을 만드는 알짜 중소기업인 이 회사의 시간관리는 국내·외 기업의 벤치마크가 되고 있는데, 다른 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양 사장에게 ‘한 수 배우려면’ 새벽 4시에 이 회사를 찾아와야 한다. 하루를 둘로 나눠 사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어 일부러 새벽에 부르는 거란다.

    “그 사람들이 일과 시간에 나를 찾아오면 자기네 회사 일은 언제 합니까? 오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반나절 넘게 잡아먹을 텐데…. 9시까지는 자기네 회사로 돌아가서 일을 시작해야죠. 아침 시간을 활용하면 하루를 ‘길게’ 살 수 있습니다.”

    새벽과 아침이 경쟁력의 원천



    시간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새벽과 아침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양 사장은 오전 5시40분께 서울 송파구 잠실동 집을 나온다. 그는 “그 시간에는 회사(성동구 성수동)까지 10분이 걸리지 않는다”며 “러시아워의 거리에서 시간을 소비하는 것만큼 비생산적인 일도 없다”고 말했다.

    시간관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에 낭비가 생기는 걸 참지 못한다. 오전 9시 이전의 시간은 회사나 가족이 침범할 수 없는 오로지 ‘나만의 시간’이다. 평소보다 1시간만 일찍 일어나도 삶에 큰 변화가 생긴다고.

    SK그룹에서 시간관리의 달인으로 꼽히는 SK증권 박용선(48) 종로지점장은 “아침 시간은 ‘타인의 시간’이 아닌 스스로를 위해 쓸 수 있는 ‘자기의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회사 리서치센터에서 시황을 분석할 때는 아침 생방송에 고정적으로 출연해 이름값을 높이기도 했다.

    40대 후반에 현대자동차 사장, 현대카드 회장을 지낸 열린우리당 이계안(54) 의원은 직장 초년병 시절부터 오전 6시15분에 회사에 출근했다. 그는 아침 시간에 공부(독서)를 하거나 일간지를 훑으면서 업무와 관련된 스크랩을 했다.

    “근무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회사 일과 관련한 숙제를 스스로 내 풀곤 했죠. 상사가 필요로 할 것 같은 자료를 지시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놓기도 했고요.”

    현대자동차 최진성(39) 과장은 오전 6시께 미래의 고객을 찾기 위해 새벽 시장을 순례한다. 2001년부터 매년 ‘자동차 판매왕’에 오른 그는 “출근하기 전 운동을 겸해 시장 상인들을 만난다”며 웃었다.

    단 5분? 난 허투루 쓰지 않아

    열린우리당 이계안 의원.

    자투리 시간을 아깝게 왜 버려

    이계안 의원은 저녁 약속이 있으면, 약속 장소로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려 걸어서 이동한다. 강남에 약속이 있으면 봉은사에서부터 걸어가는 식인데, 틈새 시간을 활용해 필요한 운동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세계적 전략 컨설팅회사 모니터그룹 한국지사 조원홍 부사장(42)도 저녁 약속이 있는 날엔 일과와 약속 사이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헬스클럽을 찾는다. 경영 컨설턴트는 노동강도가 높기로 소문난 직종.

    “컨설팅 팀장 시절엔 워낙 바빠 친구들 만나기도 어려웠죠. 그래서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을 이용해 인맥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연락이 뜸했던 지인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거는 겁니다. 자투리 시간만 잘 활용해도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어요.”

    증권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증권사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박용선 지점장은 그 중간에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경제연구소의 리포트와 경제주간지 기사 등을 꼼꼼하게 분석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자투리 시간에 소화하는 정보의 양이 상당합니다. 따로 시간을 내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죠.”

    최진성 과장은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고객들에게 친필로 편지를 쓴다. 친필 편지는 2억원 가까운 연봉을 받는 비결의 하나이기도 하다.

    윤은기(55)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부총장은 “자투리 시간은 의외로 집중도가 높다”면서 “성공하는 사람은 절대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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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원홍 모니터그룹 코리아 부사장.

    황금시간은 만들기 나름

    조원홍 부사장은 이따금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10년 뒤엔 강의나 책을 통해 현장에서 습득한 지식을 가르치고 있을 것 같다고.

    “미래에 대한 대비는 당장 급하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반드시 따로 시간을 내 하나 둘씩 준비해야죠.”

    이계안 의원은 CEO 시절 일주일에 한나절 정도는 자기만의 시간을 가졌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선 효율성 못지않게 창조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일주일에 1권 넘게 책을 읽는 애독가다. 정치 입문 전에는 황금시간을 이용해 회사 일과 상관없는 ‘세계정치사’ ‘현대 정치이론’ 등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고 한다.

    양용식 사장은 CEO는 시간에 쫓기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근무 시간의 절반가량은 미래를 준비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 하위 직급의 샐러리맨들이 근무시간에 황금시간을 따로 갖기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새벽이나 저녁의 일부 시간을 황금시간으로 할애해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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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선 SK증권 종로지점장.

    메모와 기록은 다이아몬드

    “시간관리는 메모와 기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다이어리를 쓰고 메모를 꼼꼼히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최진성 과장은 1년에 2000명 넘는 사람을 만난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1200만원짜리 BMW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그는 다이어리와 수첩, 기자수첩, 노트를 동시에 이용해 시간을 관리한다.

    “먼 곳에 있는 사람을 만날 때는 반드시 새벽이나 저녁 시간을 활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나절이 통째로 날아가거든요.”

    그는 시간관리가 성과와 생산성에 직결된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한 세일즈맨이다. 하루에 1대꼴로 자동차를 파는 그에게 시간은 곧 돈이다.

    박용선 지점장도 시간관리가 실적의 바로미터라고 말한다. 시간관리를 잘하는 후배들이 하나같이 성과도 좋다는 것. 시간을 허투루 쓰면서도 실적이 좋은 ‘천재형 직원’은 적어도 증권사에서는 보지 못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오전 8시20분부터 10분 동안 사무실 문을 잠그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날의 일정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하고, 정리하는 데는 충분하다. 그는 이 10분을 ‘마법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시간관리의 출발점은 시간가계부를 적는 것이다.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소비하고 관리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시간관리의 기본이다. 며칠만 시간가계부를 정확하게 적어보면 낭비하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단 5분? 난 허투루 쓰지 않아
    TV는 당장 버려!

    윤은기 부총장은 휴일에 골프를 칠 때는 휴대전화를 꺼놓는다. 아무리 좋은 기계도 오일을 제때 교환해주지 않거나 정기적으로 점검하지 않으면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다.

    윤 부총장은 “매우 빠른 속도로 살아가는 세계적 IT(정보기술) 기업의 CEO들도 주말에는 교외에서 휴가를 즐기며 반(反) 스피드 생활을 한다”면서 “잘 노는 것은 시(時)테크의 또 다른 축”이라고 말했다.

    최진성 과장도 휴일엔 녹초가 될 정도로 축구경기를 즐긴다. 평일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골프연습장에 들를 때도 일 생각은 잠시 접어둔다.

    이계안 의원은 역사와 종교 서적을 읽으면서 재충전을 한다. 박용선 지점장은 여가 시간이 생기면 취미인 사진찍기를 위해 카메라를 들고 교외에 나가거나 봉사활동을 한다.

    시간관리의 달인들은 악기 연주, 스포츠, 자발적 학습, 종교활동, 봉사활동, 취미활동 등 충전형 여가를 즐긴다. 조원홍 부사장은 “시간관리를 잘하는 사람은 주말에 TV 리모컨을 손에 쥐고 빈둥거리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말했다.

    느림의 시테크

    세상이 점점 바쁠수록 삶의 여유와 깊이 느낄 시간 필요


    단 5분? 난 허투루 쓰지 않아
    한국 사람은 빠르다. 한국인들은 정보사회학자들이 얘기하는 ‘빠른 자(The Fast)’와 ‘느린 자(The Slow)’ 개념으로 볼 때 완전히 빠른 자가 되었다. 모든 사이클이 빨라졌다. 제품개발 속도, 유행 속도, 가치관의 변화속도를 톺아보면 한국은 속도의 경제를 실현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앨빈 토플러 식으로 빠른 자와 느린 자를 구분하면 한국의 20, 30대는 빠른 자고 40대 중반 이후는 느린 자다. 빠른 자와 느린 자가 어울리면 답답한 사람은 빠른 자다. 그래서 밀려난 사람들이 ‘사오정’ ‘오륙도’다.

    빠른 기업은 빠른 기업끼리 상대하고 느린 기업과는 교류하지 않는다. 납기일을 안 지킨다든지, 피드백이 느리거나 커뮤니케이션이 더디면 거래를 끊는다. 한국은 이런 현상이 기업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 관계에서도 보여지는 속도의 사회다.

    속도가 증가하면 저항이 늘어나는 게 물리학의 법칙이다. 스피드 일변도로 향하던 한국에서도 최근 느림의 문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빠르게 경쟁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고조됐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사회의 스피드가 인간이 자연스럽게 갖고 있는 속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세상과 기계가 빨라진다고 해도 맥박의 속도나 혈류의 속도는 빨라지지 않는 터라 이를 거스를 때 나타나는 부자연스러움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느림의 시테크, 즉 느림의 문화다.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갈 때 가장 편안해진다. 웰빙이란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인 편안함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쓴 피에로 상소 교수가 주장하고 있는 느림의 미학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한가로이 거닐기. 둘째, 경청하기. 셋째, 권태를 느끼기. 넷째, 꿈꾸기. 다섯째, 기다리기. 여섯째, 마음의 고향을 떠올리기. 일곱째, 글쓰기. 여덟째, 포도주 음미하기. 아홉째, 모데라토 칸타빌레(절제를 가지고 아끼기).

    그는 삶의 여유와 깊이를 느끼기 위해서는 느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느림은 게으름과 다르다. 게으름이 목적의식과 의미 부여가 없는 ‘시간 흘려보내기’ ‘시간 때우기’라면 느림은 적극적인 삶의 한 형태이자 태도다.

    21세기의 진정한 부자는 누구인가? 이제는 돈만으로는 부자라고 평가할 수 없다. ‘돈 부자(Money Rich)’ 개념에 ‘시간 부자(Time Rich)’ 개념이 합쳐지고 있는데 이 두 가지는 상호교환 관계(Trade Off)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시간이 줄어들고 개인의 자유시간을 즐기기 위해서는 돈 버는 시간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빠름이 좋으냐 느림이 좋으냐 하는 문제는 통합적 접근과 상황적 접근으로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휴가를 가서는 여유롭게 즐기고 일할 때는 빠른 자가 돼야 할 것이다.

    웰빙 라이프를 위해서는 제대로 놀 줄 알아야 한다. 정신노동을 할수록 스트레스가 더 쌓이는데,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질수록 이를 풀기 위해선 건전한 여가기술이 있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해 휴양지에서도 ‘슬로’ 대신 ‘스피드’를 뽐낸다.

    이제는 빠름과 느림을 상황적, 통합적 접근으로 풀어가야 한다. 건강한 사회, 건전한 경쟁력 그리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간 문화가 새롭게 혁신되어야 한다.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부총장·경영학 박사 yoonek18@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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