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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게릴라의 개성만점 배낭여행(18)|인도 함피

14세기 왕국 흔적 깃든 석조유적 전시장

  • 글·사진=박동식 여행작가

14세기 왕국 흔적 깃든 석조유적 전시장

14세기 왕국 흔적 깃든 석조유적 전시장

마탕가산 정상에서 바라본 아추타라야 사원 전경(좌). 아추타라야 사원의 석조 조각(우).

인도 남서부 카르나타카 주(州)에 자리한 함피(Hampi)로 향하는 기차에는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을 주의하고 그들이 주는 음식은 절대 먹지 말며, 음식은 오로지 스스로 구입한 것만 먹으라’는 안내문구가 붙어 있다.

만나는 사람을 모두 경계해야 할 정도로 인도가 위험한 나라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다른 나라보다 여행자를 상대로 한 범죄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함피는 여느 도시보다 여행자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안내문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더욱이 함피의 숙소 벽면에서도 비슷한 안내문을 발견했을 때는 경각심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함피는 그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많은 여행자들에게 끊임없이 찬사를 받아온 특별한 매력을 지닌 도시다.

14세기 왕국 흔적 깃든 석조유적 전시장

이른 아침 성스러운 강에서 목욕을 마치고 젖은 사리를 바람에 말리는 여인들.

함피는 14세기부터 약 2세기 동안 남인도 전역을 지배하며 번성을 누렸던 비자야나가르 왕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탁월한 도시 유적군이다. 대부분 힌두 사원인 40여 개의 유적들은 돌산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대지에 넓게 분포돼 있다.

함피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창 밖에서 들려오는 어수선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샤워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 소리의 진원지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강이 나왔다. 강에는 이른 아침부터 목욕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목욕을 통해 ‘죄 사함’을 꿈꾸는 이들에게 성스러운 강에서의 목욕은 무척 중요한 의식이다. 한쪽에서는 성스러운 목욕 의식은 아랑곳없이 아이들이 마냥 즐겁게 물놀이를 즐겼고, 계단과 바위에는 여인들의 젖은 사리가 말라가고 있었다.



거대 규모 옛 사원 즐비 … 어딜 가도 한가로운 풍경 ‘인상적’

낮에는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아추타라야(Achutharaya) 사원을 방문했다. 상단이 무너진 탑문을 들어서자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을 연상시키는 직사각형 모양의 거대한 회랑이 사원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넓은 마당 한가운데 역시 상단이 훼손된 석조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뜨문뜨문 사원을 찾는 방문객들이 있기는 했지만 무척 한가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14세기 왕국 흔적 깃든 석조유적 전시장

함피의 유적지를 찾아다니다 만난 인도 여인들.

사원에서 빠져나와 서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면 함피 전역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마탕가(Matanga)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타난다. 함피를 찾은 여행자라면 빼놓지 말고 올라야 할 곳이 바로 마탕가산이다. 나무는커녕 풀포기도 찾아보기 힘든 바위산이지만 웅장함과 함께 둥글둥글한 바위들 때문에 아기자기한 맛을 겸비한 모습이다. 땀을 흘리며 20~30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 끝도 없이 바위산들만 보이는 아득한 풍경은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함피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 중 하나는 비탈라(Vittala) 사원이다. 원형이 많이 손상된 다른 사원들에 비하면 이곳의 탑문은 비교적 온전한 모습이다. 내부 건축물도 원형을 유지한 채 정교한 조각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사원 내부의 기둥들은 두드리면 저마다 다른 소리가 나서 ‘뮤직 스톤’이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그러나 현재는 유적 보호를 위해 기둥을 두드리는 것은 금지돼 있다.

함피는 여느 관광지와 다르게 유적지가 넓은 지역에 분포돼 있고 비교적 사람들의 왕래가 적다. 때문에 자전거나 도보로 유적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저절로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유적 복원을 위해 공사를 하고 있지만 별다른 장비 없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모습이 무척 평화롭다. 땅콩 밭에서 일을 하다 나를 발견한 여인들도 호들갑스럽게 달려나와 기껏 묻는 것은 이름뿐이다. 어쩌면 함피에서는 숙제하는 아이처럼 발도장 눈도장을 찍듯 유적지를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다니다가 발걸음이 무거워지면 적당한 바위에 주저앉아 깊은 숨을 쉬며 잠시 자신을 바라보는 여유가 더 절실할지도 모른다.

14세기 왕국 흔적 깃든 석조유적 전시장

함피의 인도 가정집 앞에 그려진 땅바닥 그림 ‘꼴람’. 액운을 막고 복을 기원하기 위해 그린다.

내가 그 여인을 발견한 것도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석축들 밑에서 소풍 나온 아이들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던 소가 아이들의 점심인 포도와 사과를 먹어버렸다. 아이들이 아무리 엉덩이를 때리며 쫓아도 소는 꿈쩍도 안 하고 남은 과일을 계속해서 먹어치우더니, 뒤늦게 소 주인인 노파가 달려와서야 마침내 ‘도둑질’을 멈추었다.

그런 한바탕 소동을 무시한 채 그 여인은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다. 여인의 염소들도 무릎을 꿇고 앉아 여인의 주변에서 쉬고 있었다. 백태가 낀 여인의 한쪽 눈은 방향을 잃고 있었지만 더욱 가슴이 아릿했던 것은 무표정이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마치 전혀 다른 세상의 풍경처럼 바라보는 그 시선에서 여인의 어깨 위에 올려 있는 삶의 무게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시 후 ‘훠이~!’ 하는 한마디에 염소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묘한 교감을 보는 순간, 염소들은 여인의 어깨를 누르는 고단한 노동의 원인이 아니라 여인에게 친구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인은 태양을 등지고 바위 언덕을 넘어 사라졌고, 여인을 뒤따르는 염소 무리마저도 줄줄이 언덕 너머로 사라지자 마치 마술처럼 그 언덕 뒤에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다.

그 바람은 내가 쉬었고 그녀가 쉬었던 나무의 잎들을 흔들며 ‘푸우 푸우’ 하는 소리를 내고 사라졌다.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진 바위 위에는 오로지 염소들이 남긴 까맣고 동그란 배설물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인이 사라진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염소와 함께 사라진 붉은 사리의 여인이여, 행복하여라.



주간동아 2006.11.28 562호 (p82~83)

글·사진=박동식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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