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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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통해 들여다본 삶의 속살

  • 이병희 미술평론가

    입력2006-11-22 17: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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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장고 통해 들여다본 삶의 속살
    냉장고는 음식물을 보관하는 공간이다. 음식물이 냉장고에 잠시 거주한다고도 할 수 있다. 마치 누군가의 집을 들여다보듯, 인간의 몸속을 들여다보듯, 그리고 어떤 체계를 파헤쳐보듯 냉장고 문을 열어젖힌 뒤 그 안에 보관된 음식물들을 가만히, 오랫동안 관찰해보자.

    집집마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냉장고를 갖고 있다. 그 안에는 각기 다른 질서가 있다. 빼곡히 차 있는 음식물과 그것의 보관 용기도 각기 다르며, 냉장고 각 칸의 활용도도 조금씩 다르다. 거의 비슷한 형태의 냉장고들은 일률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냉장고 주인의 스타일에 따라 냉장고는 매우 다른 질서와 삶의 양태를 유지한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브레인 팩토리에서는 방명주의 냉장고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다. 각기 다른 집의 냉장고 문이 활짝 열린 채 찍혀서, 서로 이웃해 있다. 그 풍경이 마치 도시의 장벽처럼 늘어서 있는 아파트 같다. 전시장 한쪽에는 클로즈업된 냉장고 안의 음식 사진이 걸려 있다. 선명한 색깔로 수분을 가득 머금고 있는 신선한 음식물은 냉장고 안에서 가뿐 숨을 쉬고 있는 듯하다. 냉동고의 음식물은 시체 같기도 하고, 일시적으로 생명을 유보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냉장고라는 보관, 저장고는 집이나 신체처럼 인간의 거주지 혹은 생명의 저장고에 비유된다. 그런 점에서 방명주의 사진은 마치 우리의 내밀한 속내를 들춰내는 것만 같다. 한편으론 집 안에서의 우리 삶을, 다른 한편으론 우리의 신체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시적인 삶 - 생명의 현장을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노골적인 풍경을 보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외설적인 감정에 휩싸인다. 이는 다른 누군가의 일상을 엿봤다는 느낌, 혹은 가까스로 일상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타인의 삶에 지나치게 깊이 침투했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생겨나는 감정은 죄책감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움에 가깝다. 수많은 타인들의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불현듯 자신의 냉장고 속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자신의 내밀한 습관이나 흔적이 까발려진 듯한 당혹감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는 우리 자신을 향한 근본적인 반성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지금 당장 냉장고 안을 정리해야 할 것 같다. 11월26일까지, 브레인 팩토리, 02-725-9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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