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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천국

게이 감독이 만든 게이들의 연애담

이송희일 감독의 ‘후회하지 않아’

게이 감독이 만든 게이들의 연애담

게이 감독이 만든 게이들의 연애담
페미니즘 영화를 남성 감독이 만드는 것만큼이나 웃기는 일이, 동성애 영화를 이성애자 감독이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후회하지 않아’는 동성애를 도발적으로 내세웠던 ‘내일로 흐르는 강’이나 ‘로드 무비’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전작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게이 감독이 만든 퀴어 멜로라는 것.

호스트바 배경 … ‘퀴어’보다 ‘멜로’에 초점

‘기괴한, 이상한’이란 뜻을 가진 ‘퀴어’라는 말의 뉘앙스에서 묻어나듯, ‘후회하지 않아’의 이송희일 감독은 남자-여성인 게이들의 육체를 전면화해 게이 감독 특유의 성 정치학을 완성한다. 그러니까 ‘그 수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나를 사랑했어’가 주류 어법의 멜로라면, 영화 속의 주인공은 노골적으로 그 ‘사람’을 ‘성기’의 문제로 환원시켜 질문하는 것이다. “내가 그 수많은 남자들의 그것을 사랑해주는데, 왜 하필이면 네 것도 그래야 하느냐”고 질문하자, 되돌아오는 것은 “내 것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이라는 직설화법의 답이다. (독자 여러분, ‘그것’을 좀더 은밀한 단어로 대치해보시기를.)

그래서 당신이 이 영화를 보고 몹시 낯설었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성공했다는 의미다. 또 당신이 이 영화를 보고 토하고 싶어졌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더할 나위 없이 성공했다는 의미다. 당신이 이 영화를 보고 ‘저런 진한 사랑 한번 못 해본 내 자신이 한탄스럽다’거나 ‘지나온 사랑의 한 조각’이라도 다시 떠올렸다면, 그것은 완벽한 성공이다.

사실 이미 수많은 퀴어 영화를 본 필자로서는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퀴어’가 아니라 ‘멜로’임을 고백한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표시나게 그 솔기를 드러내며, 자신의 전신이 70년대 호스티스 멜로라는 것을 만방에 선포한다.



대학 진학을 원했지만 고아라는 이유로 서울 한복판에 내던져진 수민이 호스트바의 ‘선수’(호스트바에서 접대하는 남성들을 일컫는 은어)가 되는 과정과 그 적나라한 성애 장면은 삶의 신산스러움을 바탕으로 여배우의 육체를 탐욕스럽게, 착취적으로 배열하던 70년대 호스티스 멜로의 내러티브 구조와 전략을 그대로 차용한다. 그런데 그 육체가 남성으로 게이라는 성차로 바뀌었을 때, 기이하게도 ‘후회하지 않아’는 성애에 방점이 찍히는 게 아니라 그 성애를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에, 이 사회의 그림자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다. 그것은 다 보여주어서 더 도발적인 의문을 던지는 퀴어 영화의 핵심 전략인 동시에, ‘후회하지 않아’의 태생적 한계로도 느껴진다. 그러니까 이 방식 역시 관습적이라는 말씀이다. 라이너 파스빈더나 토드 헤인즈 같은 유수한 게이 감독들의 전략이 ‘후회하지 않아’에서 된장 냄새 나게 번안됐을 뿐이지.

게이 감독이 만든 게이들의 연애담
그렇다고 해도 영화는 정서적으로 사람을 낚아채는 구석이 있다. 수민이 자신을 쫓아다니는 재민을 밀쳐내며 ‘당신은 부자여서 도망갈 곳이 있겠지만, 난 아무 곳도 없다’고 말할 때, 어린 게이 가람이가 수민과 함께 있는 재민에게 ‘내가 좋아하는 남자는 옥탑방에서 살고 있어요’라고 수줍은 고백을 하고 도망칠 때, 도시의 진물이 마음에 스며들어 육체의 어느 한구석이 저린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물든 사회의 한 단면 노출

여성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좀 서운한 구석도 없지 않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보통은 게이들의 다정한 벗, 여성-언니의 재현이 이 영화에서만큼은 전혀 연대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영화 속 여성들은 주인공에게 억압적으로 구는 중간 관리자이거나, 주인공의 이성애를 용납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이거나, 단물만 빼먹고 도망가버린 악녀로 나타나 메두사의 머리칼을 휘날린다.

이들, 일종의 ‘남근 달린 여성’들의 출현은 기실 이 영화가 진정 독침을 놓는 부위가 남성과 여성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라기보다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영토화되어 썩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살덩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공간들, 시골 시냇가에서 도시 룸살롱 혹은 옥탑방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매우 의미심장한 하나의 기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주류 사회의 그물망을 벗어난 작은 해방구가 수민의 옥탑방이라면, ‘X-Large’라 불리는 룸살롱은 돈다발의 측량지수에 의해서만 지탱되는 우리 사회의 환부처럼 벌겋게 부어올라 있다(이러한 측면에서 ‘야만의 밤’이라 붙여졌던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감독의 의도를 아주 적확하게 반영한다). 감독은 게이들이 자본의 맛에 의해 자신의 육체를 자본과 교환하고, 마침내 사장 아들인 재민이 자신의 동성애를 은폐하려 들수록 색깔과 음영이 하나하나 스크린에서 사라져가게 만든다.

억압받는 이들에게 내미는 실낱같은 희망의 약속

게이 감독이 만든 게이들의 연애담

‘후회하지 않아’

그리하여 수민과 재민이 오해와 분노, 복수와 좌절의 윤무로 관계의 막장까지 갔을 때, 그때 ‘후회하지 않아’의 공간은 인생의 막장 같은 무덤 혹은 구덩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피 흘리는 손이 진심을 노크하고 막힌 입이 서로의 몸을 보듬고 나서야 비로소 두 남자는 서로를 마주 볼 수 있게 된다. 이 무덤-피흘림-재생과 부활-새벽의 이미지야말로, ‘후회하지 않아’가 이 땅의 억압받는 이들에게 내미는 실낱같은 희망의 악수 청하기가 아닐까.

‘후회하지 않아’. 이 영화는 드디어 대한민국에서도 성차 혹은 성 정치학에 의한 새로운 화술의 영화들이 독립 영화계에서부터 주류로 치솟아올라 충무로의 영화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는 증거물이다.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 혈기만큼은 맹랑하고 방장하다.

이송희일 감독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 땅의 나 같은 ‘패그해그’(게이 문화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이성애자 여성을 일컬음) 언니들도 해피하게 만드는 여성상을 좀 보여주시라는 것. 결국 소통의 문제로 귀결되는 이 연애담은 욕망의 밤에서 불쑥 튀어나온 순정 멜로답게, 착하게 도발적이다.



주간동아 2006.11.28 562호 (p7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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