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2

2006.11.28

“엑스터시, 스피드요? 집에서 만들어 먹어요”

동물마취제로 몇 시간 만에 스페셜K 뚝딱 제조 … 마약원료 물질 관리 허술 심각한 사회문제 우려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6-11-22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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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스터시, 스피드요? 집에서 만들어 먹어요”

    미국 LA의 미주한인마약퇴치센터(왼쪽). 구멍가게식 마약 제조가 보편화되면서 한인 마약중독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 센터의 여성입소자 숙소.

    10월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날씨는 초가을의 사막 기후치고는 조금 쌀쌀했다. LA는 미국에서도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도시로 손꼽힌다. 학교마다 마약 딜러가 똬리를 틀고 있고, 가정집에서조차 마약이 거래된다.

    쌀쌀한 날씨 탓이었을까. 마약중독자들이 새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LA 미주한인마약퇴치센터의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둘셋씩 모여 앞마당에서 햇볕을 쬐고 있는 마약중독자들의 눈자위는 꺼질 듯 거슴츠레했다.

    이 센터의 주인장인 한영호 목사는 소문난 갱단에서 힘깨나 쓰던 왕년의 주먹. 회심(回心)하고 목사가 된 그는 마약에 물든 청소년을 10년째 보듬어오고 있다. 갱단에서 마약을 만들어 팔던 마약쟁이가 제대로 돌이마음한 사례다.

    “엑스터시, 스피드요? 집에서 만들어 먹어요”
    “사람들은 마약을 으슥한 밤거리 문화의 산물이라고 여기지만, 그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날 얘기죠. 청소년들도 쉽게 마약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어요.”

    한 목사는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들불처럼 퍼진 ‘구멍가게식(small toxic labs)’ 마약 제조법을 소개하면서 “미국에서 마약을 접해본 유학생과 교포를 통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이 기술이 한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마약의 원료 물질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고 있어요. 그만큼 마약쟁이들에겐 천국이라고 할 수 있죠.”

    LA에서 만난 마약제조 기술자 H씨는 ‘스피드’ 같은 마약은 가정집에서도 요리하듯이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스피드는 LA 청소년들이 주로 사용하는 마약으로, 히로뽕보다 순도가 떨어지는 대신 가격이 저렴하다.

    “청소년도 쉽게 마약을 만들 수 있는 시대”

    “스피드는 하이(High·약물에 취했을 때 최고조에 달하는 기분)가 상대적으로 길어요. 상상 속의 섹스를 아주 긴 시간 동안 할 수도 있죠. 스피드는 엑설런트 드러그(Drug)는 아니에요. 다른 드러그보다 부작용이 빨리 나타나거든요.”

    “엑스터시, 스피드요? 집에서 만들어 먹어요”

    마약중독은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H씨는 다이어트약을 이용한 스피드 제조법을 설명하면서 ‘쿠킹(Cooking)’이라는 단어를 썼다. 다이어트약에 들어 있는 ○○○○ 성분에 몇 가지 약품을 추가해 주방에서 요리하듯 제조하기 때문이다. 스피드를 만드는 방법은 실제로 무척 간단했다.

    스피드나 히로뽕에 몇몇 성분을 추가하면 ‘엑스터시’도 만들 수 있다. H씨는 스피드를 그냥 알약으로 바꾸거나 카페인 혹은 헤로인을 추가한 게 엑스터시라면서 웃었다. 엑스터시를 물과 함께 복용하면 스킨십이 하고 싶고 성관계 때 쾌감이 최고조에 달한다고 한다.

    엑스터시는 한국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서울의 클럽에서도 엑스터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수사당국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 유학생, 교포, 주한미군 등 외국에 드나들 기회가 많은 사람을 중심으로 엑스터시가 퍼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 목사의 주장처럼 한국에서도 ‘마약 요리법’으로 마약이 제조되고 있을까?

    강원도 H군의 한 산자락에 자리잡은 S선교회는 마약중독자들이 치유 및 회복 프로그램을 밟고 있는 곳이다. 이 선교회에서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방을 정리하던 C군은 지난 5월 미국에서 마약을 하다가 적발돼 이 선교회에 들어왔다.

    C군이 미국에서 사용한 마약이 바로 스피드. C군은 대화를 하다가 혼잣말을 하는가 하면 하늘에 대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이 같은 증상이 스피드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마약을 어떻게 구했느냐”고 묻자 그는 “친구가 만들어주거나 돈을 주고 구입했어요”라고 대답했다. “스피드를 만들 줄 아느냐”는 질문엔 눈을 치켜뜨고는 두서없이 이러쿵저러쿵 지껄였다.

    C군이 생활하는 S선교회에서 재활치료를 받은 재미교포 A씨는 한국의 가정집에서 히로뽕을 ‘요리하다가’ 5월 국가정보원의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A씨의 랩(Labs·마약을 ‘요리하는’ 곳의 은어)을 덮친 국정원 요원들은 마약을 만드는 재료와 도구를 보고 경악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마약 접해본 유학생 등 통해 번져”

    “냉장고, 전자레인지, 스토브, 법랑 등을 이용해 마약을 제조하고 있었어요. 일부 감기약에 들어 있는 ○○○○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을 가지고 순도 97%의 고급 히로뽕을 만드는 데 4~5시간이면 충분하더군요.”(국정원 직원 J씨)

    A씨의 랩은 서울 동대문구의 한 다세대주택 지하에 있는 가정집이었다. A씨는 미국에서 마약을 하다가 추방된 B씨와 함께 ‘인터넷 약국’에서 ○○○○ 성분이 든 감기약 50여 병을 구입한 뒤 뚝딱뚝딱 히로뽕을 만들어냈다.

    “미국에서는 마약 가운데 헤로인이나 코카인이 제일 애용됐는데, 최근엔 히로뽕 투약이 빠르게 늘고 있어요. 미국 마약당국이 적발한 히로뽕 공장은 1997년 2800여 곳에서 2003년 1만여 곳으로 3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구멍가게식 제조법이 빠른 속도로 퍼졌기 때문입니다.”(국정원 직원 L씨)

    앞서 재미교포들이 가정집에서 제조한 히로뽕의 레시피는 A4 용지 1장 남짓. 화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는 사람도 이 조리법만 있으면 쉽게 히로뽕을 만들 수 있다. 이들이 국정원에 털어놓은 마약제조법은 모두 5가지. 그중에는 군대에서 주로 쓰는 △△△과 또 다른 약품을 대접에 섞은 뒤 검은색 종이를 덮어씌워 놓으면 히로뽕이 대나무순 자라듯 피어오르는 ‘요리법’도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는 조리법

    “엑스터시, 스피드요? 집에서 만들어 먹어요”

    G○○이라는 신종 마약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기구들. G쭛쭛 제조법은 공개된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구할 수 있다.

    “재미교포가 아니었더라면 군대에서 주로 쓰는 △△△도 쉽게 구할 수 있었을 겁니다. 서울 시내에서도 이 약품을 살 수 있는 곳이 많거든요. 이 방법으로 히로뽕을 만들 수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현재로서는 제조가 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추측할 뿐입니다.”(국정원 직원 J씨)

    국정원은 이들이 교도소에서 마약 제조법을 퍼뜨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제조법이 무척 간단해 범죄집단 등으로 유출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이들을 독방에 수감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인권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포기했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 기반을 둔 마약 제조·공급책은 뿌리뽑혔다는 게 수사당국의 판단이다.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되면서 단속이 강화돼 ‘선수’들이 외국으로 캠프를 옮겼기 때문. 히로뽕 기술자의 상당수가 이즈음부터 중국 등에 똬리를 튼 것으로 분석된다.

    2001년 5월 낙동강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히로뽕 2.2kg을 제조한 일당을 검거한 이후 공장형 마약 제조가 적발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구멍가게식 제조법이 들어오기 전까지 한국은 소비뿐 아니라 제조 측면에서도 청정국이었던 셈이다.

    전통적인 히로뽕 제조법은 대단위 설비를 필요로 한다. 중국으로 옮겨간 한국 기술자들은 현재 60, 70대로 히로뽕 제조 3세대다. 이들은 복잡한 히로뽕 제조법을 도제식으로 배웠다고 한다. 이들이 집에서 간단하게 만드는 ‘히로뽕 요리법’을 접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국정원은 구멍가게식 마약제조법이 아직까지는 시중에 퍼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취재진이 접촉한 미국에서 추방된 재미교포들의 증언은 조금 달랐다. 미국에서 마약을 하다가 추방된 미국 영주권자 Y씨는 한국이 미국보다 좋은 점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마약하다가 추방된 사람들에겐 한국에 가짜가 많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아요. 저 같은 경우도 가짜 미국대학 졸업장을 사서 영어학원에 취직했죠. 또 하나는 엑스터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마약을 만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Y씨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라면서 “미국에서 마약을 제대로 즐긴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마약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2003년 미국에서 추방된 J씨의 말을 들어보자.

    “추방당한 사람들이 한국에서 뭘 할 수 있겠어요. 한국에서도 마약에 손대고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죠. 추방된 사람들이 구성한 갱(Gang)도 있는데, 못 들어보셨어요? 엑스터시, 스페셜K 같은 건 쉽게 만들어 먹을걸요.”

    스페셜K는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으로 제조할 수 있는 마약이다. 스페셜K도 프라이팬 등을 이용해 주방에서 제조할 수 있다. Y씨에 따르면 스페셜K는 엑스터시를 하고 난 다음 코로 들이마시는데, 두 마약을 함께하면 로맨틱한 무지갯빛이 몸을 휘두르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구멍가게식 생활밀착형 마약 한국 위협

    “엑스터시, 스피드요? 집에서 만들어 먹어요”

    미국에서 추방된 한 재미교포가 묵고 있는 강원도 H군 S선교회의 숙소. 그는 한 달째 시리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서구에서 ‘데이트 강간 약물(Date Rape Drug)’로 불리는 G○○의 제조법은 인터넷사이트에서도 구할 수 있다. A사이트엔 “당신 나라에서 G○○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지 살펴본 뒤 제조하시오”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어 있다. 한국에서 G○○는 마약류로 지정돼 있다.

    히로뽕, 엑스터시, 스피드 등을 만드는 방법도 인터넷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마리화나도 조리되고 있다. 화학약품을 섞어 ‘마리화나 과자’를 만드는 방식인데, ‘밀가루 ○스푼, 계란 ○개, ○○, ○○ 등을 섞어 오븐에서 구우면 된다고 한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추방된 재미교포는 2001년 116명에서 2004년 316명으로 급증했다(인천공항에 신고된 강제 퇴거자 기준). 그러나 미국에서 한국계 영주권자의 추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이 통계에 추방당한 이들이 모두 포함된 것은 아니다. 재미 한인사회는 지난해에만 적어도 1000명 이상이 한국으로 추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중 상당수가 마약사범이다.

    한영호 목사는 “도피성 유학을 왔다가 마약을 접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젊은이들만 헤아려도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서 “조만간 한국에도 합성마약 제조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국의 마약원료 물질 관리는 걸음마 수준이다. 특히 엑스터시와 스피드 등의 원료가 되는 ○○○○이 문제다.(딸린 기사 참조)

    2001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카운티에서 마약 제조가 가능한 성분의 감기약을 대량으로 판매한 한인 약사 김모 씨가 마약 단속국에 의해 체포됐다. 김씨는 실수였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올 4월 항소법원에서 면허정지와 5개월간의 가택연금, 3년간의 보호 감찰이라는 가볍지 않은 형을 선고받았다.

    미국에서는 ○○○○을 30일 동안 7.5g만 신분이 확인된 사람에게 판매하도록 하고 있으며, 구매자와 구매약품의 양 등에 관한 기록을 보존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선 ○○○○이 약간 함유된 감기약(○○○○ 복합제)도 엄격하게 관리 중이다. 호주에서는 ○○○○이 들어간 감기약을 구입한 사람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한 뒤 개인정보, 구입량 등을 데이트베이스화해 관리하고 있다.

    구멍가게식 마약 제조법이 한국에 얼마나 퍼져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함유된 약품이 엄격하게 관리되기는커녕 일부 약국에서도 판매된다는 점에서 이 제조법이 퍼져나갔을 때의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동대문구의 가정집에서 히로뽕을 ‘요리한’ 재미교포들은 국내 조직과의 연계를 준비했다고 한다.

    인터넷을 통한 마약 유통이 늘어나면서 마약은 손만 뻗으면 어렵지 않게 닿을 수 있는 지근거리로 다가왔다. 뒷골목 비즈니스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마약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 수사당국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의 클럽에서 단골손님에게 물에 마약을 타서 주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엔 인터넷을 통해 마약을 최음제로 속여 판매하는 행위도 등장했다.

    마약 원료 물질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생활밀착형 마약이 서서히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구멍가게식 제조법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하면 마약 소비층이 대학생이나 샐러리맨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면서 “세계적으로도 전통마약 사용은 줄어드는 반면 합성마약 유통은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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