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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캠프서 아침 먹고, 李 캠프서 저녁 먹고

한나라당 의원들 줄서기 백태 … 지지율 따라 왔다갔다, 양다리 걸치고 눈치보기도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朴 캠프서 아침 먹고, 李 캠프서 저녁 먹고

朴 캠프서 아침 먹고, 李 캠프서 저녁 먹고

11월5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왼쪽부터) 등 유력 대선주자들이 전북 익산시 중앙총부에서 열린 원불교 종법사 대사식(戴謝式·취임식)에 나란히 참석하고 있다. 동아일보

허남식 부산시장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자들이 만든 ‘부산포럼’의 고문을 맡기로 한 지는 꽤 오래됐다. 11월21일 부산시 동래 ‘허심청’에서 열리는 이 모임의 창립식에서 허 시장은 박 전 대표와 함께 인사말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허 시장은 최근 “고문을 맡지 않겠다”며 입장을 바꾸었다. “박 전 대표와 관련 있는 모임인지 몰랐다”는 것이 입장 번복의 이유. 허 시장의 이런 해명에 박 전 대표 측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부산포럼이 박 전 대표와 관련 있는 조직임을 허 시장이 모를 리가 없는데….”

부산 출신의 한 의원은 허 시장의 바뀐 입장을 최근 한나라당 내에 불고 있는 ‘줄서기’로 설명했다.

이 의원의 지적처럼 한나라당에는 요즘 줄서기를 놓고 고민하는 의원들이 많다. 의원들은 최근 고공행진을 보이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지지율이 과연 대세를 형성할 것인지를 놓고 여러 방면으로 조언을 구하느라 바쁘다. 선거전이 벌어질 때마다 역할이 두드러졌던 박 전 대표가 다시 뒤집기에 나설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 또한 만만찮다. 일부 인사들은 “저평가된 우량주 손학규를 통한 도박은 어떨까”란 고민에 빠져 있기도 하다. 그 과정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벌어진다.

핵심 측근 소문나면 너도나도 찾아와



전효숙 헌법재판관 내정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가 대치하던 10월 말 국회 본회의장. 박 전 대표가 D의원을 불러서 40여 분간 대화를 나눴다. 보기에 따라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 또는 브레인으로 비칠 수 있는 이 상황을 소속 의원들은 죽 지켜봤다. 국회방송은 이 모습을 의원회관에 중계까지 했다. 그 직후 정치권에서 ‘D의원은 박 전 대표의 브레인’이란 루머가 돌았다. 소속 의원들이 D의원을 찾아가 민원성 청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쯤부터.

한 의원은 D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박 대표 쪽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듯하다. 박 대표에게 잘 말해달라”고 부탁하는가 하면, 다른 의원은 “내가 이 전 시장과 가깝다고 하는데 그건 와전된 얘기다”는 입장도 전했다.

D의원이 그날 박 전 대표와 나눈 대화의 주된 내용은 사학법과 관련된 것. 브레인 근처도 가지 않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의원은 거의 없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줄서기 고민이 본격화된 것은 최근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의 여론조사 지지율 때문이다. 5월 지방선거 후 두 사람이 ‘2강’ 구도를 형성했을 때만 해도 줄서기 고민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10월9일 북한 핵실험 이후 사정이 바뀌었다.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상승곡선을 그리며 ‘1강’을 형성한 반면,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고건 전 총리와 함께 ‘2중’ 구도로 처지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 이 과정에 기존 질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게 당내 인사들의 분석이다.

이 전 시장 측도 대세론을 확산시킬 수 있는 기회라는 판단에 따라 소속 의원들과의 접촉을 늘리는 분위기다. ‘친박(親朴)’으로 알려진 영남의 한 의원은 최근 “이 전 시장 측에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해 이 전 시장과 식사나 하자고 하더라. 딱 잘라 거절하기도 곤란하고…”라며 고민을 토로했다.

이런 흐름을 지켜보던 박 전 의원 측은 11월2일 서울 강남 팔레스 호텔에서 박 전 대표의 조찬 특강 자리를 마련해 맞불을 놓았다. 이날 행사장에는 박 전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유승민, 유정복, 김기춘 의원 등 현역 의원 26명이 참석했다. 대표직을 떠난 이후 이렇게 많은 의원들이 행사장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으며, 언론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평소 박 전 대표의 계보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던 인물들도 자리를 함께해 만만찮은 세(?)를 과시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K의원은 행사준비팀에 전화를 걸어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런 행사가 있으면 미리 연락을 줬어야 할 것 아니냐. 강연이 있던 시간에 나는 그 호텔 지하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을 타고 있었는데….”

친박 모임에 얼굴을 내밀지 못한 이 인사의 불만은 이후 한동안 계속됐다고 한다.

줄서기는 총선 공천 위한 보험?

박 전 대표의 세를 과시한 이날 행사는 이 전 시장 측의 즉각적인 반격을 불렀다. 행사가 끝난 일주일 뒤인 11월9일 이재오 의원 측과 가까운 이방호 의원이 김덕룡 의원의 출당을 요구하고 나선 것. 김 의원은 박 전 대표의 2일 행사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인물이다. 김 의원은 지난 4월 의원총회에서 부인의 서초구청장 공천헌금 파문과 관련해 “당적과 의원직 등 정치적 거취를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하겠다”며 정계은퇴를 시사했었다. 이 의원은 이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당의 도덕성을 회복하자고 요구한 것. 그러나 여기에는 박 전 대표 측으로 분류되는 ‘DR 변수’에 대한 싹을 자르자는 의도가 숨겨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줄서기는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예비후보 측에서 먼저 제의하는 경우도 있다. 11월 초 TK권의 한 의원은 아무 생각 없이 이 전 시장 측의 행사에 갔다가 박 전 대표 측 한 관계자로부터 “왜 그 모임에 갔었느냐”는 항의성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영남권의 K의원은 “요즘 박 전 대표 측과 이 전 시장 측이 동시에 도와달라고 한다. 아침은 박 전 대표 측과 먹고, 저녁은 이 전 시장 측과 먹는다는 의원이 있을 정도”라며 양 진영의 줄세우기 실상을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조만간 선택을 해야 하는 그는 취재기자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되물었다.

정치인에게 줄서기는 정치생명을 담보로 한 도박이다. 잘 서면 대박이다. 총선 공천은 물론 내각과 청와대 등 요직에 진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인사를 보면 이런 흐름이 쉽게 확인된다. 한 의원의 설명이다.

“여당 의원들이 참여정부의 요직으로 발탁되는 모습을 보고 정치인들이 내색은 않지만 태반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 길로 들어서기 위한 첫 번째 정치행위가 바로 줄서기다. 한 번 줄서기가 평생의 정치생명을 좌우한다.”

그의 지적처럼 줄 한 번 잘 서면 벼락 출세가 가능하지만, 줄을 잘못 서면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의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는 상황. 이런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의원들은 각종 묘안을 짜낸다.

예비대선 후보를 따라 최근 해외에 나간 J의원은 양다리 걸치기를 한 경우. 외국에 나간 그는 국내에 있던 또 다른 예비 대선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해외여행에 따라 나온 것은…”이라며 해명했다고 한다. 그가 전화를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당사자는 즉각 진화에 나섰지만, 정작 전화를 받은 측은 사실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았다.

보좌진을 활용해 부담을 줄이는 의원들도 있다. 11월2일 박 전 대표의 특강행사 참석을 요청받은 A의원은 보좌진에게 특강 참석자 명단을 구해오라고 지시했다. 명단을 살펴본 그는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C의원은 이보다 훨씬 적극적인 방법으로 줄서기에 나선 경우. 보좌진과 상의한 후 아예 보좌진 가운데 한 사람을 예비후보 캠프에 연락관으로 ‘파견’ 보내기로 결정한 것.

줄서기에 실패할 경우 ‘역발상’으로 치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적과의 동침’이다. 자신이 지지하던 후보가 경선에서 질 경우 차라리 자기 당이 정권을 잡지 않는 것이 공천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라 내부 정보를 다른 당의 후보 진영에 흘리는 것이다. 실제 사례도 있다.

2002년 10월, 한나라당 대선기획단 한 관계자는 비공개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들이 한 시간도 안 돼 민주당 선대본부로 흘러가는 것을 확인했다. 다방면으로 ‘범인’ 검거에 나선 이 당직자는 줄서기에 실패한 한 인사의 반란으로 결론지었다.

“공천 물갈이설에 휘말린 한 반창(反昌) 인사가 이 후보의 집권을 막기 위해 내부 정보를 빼돌렸다는 심증이 짙었다.”

줄서기는 의원들 간의 경쟁심리를 극도로 자극한다. 파이가 작아지고 경우에 따라 밥그릇을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내 유력 대선주자 진영 가운데 일부에서는 이미 진입 장벽이 구축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보이지 않는 인(人)의 장막을 구축한 측근들이 신진 인사들의 영입을 막는다는 것. 일종의 견제이자 ‘뺄셈 정치’다. 2002년 당시 대선을 앞둔 이회창 캠프에서는 무수한 뺄셈 정치가 이뤄졌고, 그의 캠프에서 냉대를 받은 인사들은 곧바로 반창 대열에 합류했다.

줄서기에 대한 정치인들의 반응은 지역에 따라 강도가 조금씩 다르다. 현재 가장 민감한 지역은 영남이다.

이들은 박 전 대표나 이 전 시장 중 누가 대통령 후보가 돼도 본선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의원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지지 후보를 고른다. TK지역 정치인들은 박 전 대표를 염두에 두는 경향을 보인다.

비례대표 의원들도 고민이 크기는 마찬가지. 줄서기를 통해 공천 문제의 가닥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에 들어온 L의원이 줄서기와 공천문제를 결부시켜 ‘활로’를 찾아낸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10월 중순 모 예비후보 진영에서 활동하는 선배 의원으로부터 “수도권 모 지역(의 공천)을 약속할 수 있으니 우리 진영으로 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L의원은 즉각 측근에게 그 지역의 당선 가능성을 분석하라고 지시했다. 측근들은 ‘승산이 높다’는 보고서를 제출했고, L의원은 선배 의원에게 전화해 식사를 하자고 했다. L의원은 측근에게 “더 이상 머뭇거리다가는 아무것도 챙기지 못할 것 같아 결단을 내렸다”며 때 이른 줄서기의 배경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대다수 의원들은 섣부른 선택이 몰고 올 후유증을 경계한다. 7~8개월 남은 당내 경선 때까지 어떤 돌발변수가 생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 정계개편과 경선방식 등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런 판단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관망파에 잔류해 있다.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의 지지율 곡선에 따라 당내 인사들의 줄서기는 앞으로 더욱 요동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주간동아 2006.11.28 562호 (p14~16)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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