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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향을 지키는 그 마음 - 시인 김성수 형에게

  • 한수산 세종대 교수·작가

고향을 지키는 그 마음 - 시인 김성수 형에게

고향을 지키는 그 마음 - 시인 김성수 형에게
형을 만나고 돌아오던 날, 밤의 영동고속도로는 휴일이라 길이 막혔습니다. 차가 서 있는 동안 바라본 들판의 어둠 속으로 아련하게 불빛을 밝히고 있는 농가가 하나 보였습니다. 어둠 속에 반딧불이처럼 떠 있는 불빛을 바라보면서 문득 형의 삶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시베리아를 여행하다가 그 광활한 대지를 바라보면서야 비로소 톨스토이가 일궈낸 문학의 준령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그때와 겹쳐지면서 말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자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우리 사이도 이제는 숲이 되지 않았나 싶군요. 중학교와 대학을 함께 다니며 형과 어울려 보낸 세월과 인연에도 이제는 골짜기가 있고 시냇물이 흐릅니다. 그렇지만 형은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고향과의 살가움이 각별합니다. 거기서 태어나, 그곳과 멀지 않은 곳에서 학교를 다니며 젊은 날을 단근질했고, 사회에 나와서도 고향과 멀지 않은 곳에서 후학을 가르치다가 이제 정년을 넘겨 또 그곳에서 젊은이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문학을 이야기하는 사회활동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산다는 것, 평생을 그곳에서 녹여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나날입니까.

시골 아름다움 더할 문화 덧씌우기 절실

그런 형의 삶을 생각하면서 지난여름에 듣게 된 한 수녀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나이 50이 가까운 수녀가 어렵고 힘든 세월을 살아온 홀어머니와 여름휴가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제 연로하신 어머니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화장실도 갈 수 없을 만큼 쇠약해져서, 세상을 떠날 날이 멀지 않은 분이었답니다. 그 어머니가 나이 든 수녀 딸의 손을 잡고 숨을 몰아쉬며 들려준 이야기가 눈물겹습니다.

“고통과 행복은 자매이니 서로를 잘 다스리고, 어느 것 하나를 버리면 서로를 찾게 되니 잘 간직하며 살아라”고 하시더랍니다.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보며 나도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쁨아, 너무 좋아하지 마라. 옆방의 슬픔이 깨어날라’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늘 그렇게 행복과 고통은 물결의 높낮이처럼 함께 뒤섞이면서 다가오지 않던가요. 그러니 둘을 잘 다스려야지요. 고통 다음에는 언제나 행복이 찾아온다고 믿으면서 말입니다.



“공부가 부족하나 덕이 있으면 그분을 스승으로 삼고, 배움은 많으나 덕이 없으면 그 사람의 잘못된 점을 고쳐서 배워라”고도 하셨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표가 이래야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공부가 부족하면 덕을 쌓으려고 애쓰고, 덕이 없으면 배움이라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뜻으로도 들립니다.

그리고 “성실과 진실은 실천할수록 네게 금을 쌓은 것과 같단다”라고 하시면서 “죽으면 썩어질 육체, 이웃에게 거름이 되도록 몸 아끼지 말고 열심히 살아라” 하셨다는 말은 바로 형의 삶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고향을 지키며 사는 형의 마음과 삶이 바로 이 말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향에서 산다고만 해서 고향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지켜야 할 것도, 버려야 할 것도 고향에는 뒤섞여 있습니다. 고향에 있는 산의 등산로에서 열었다는 시화전 이야기를 들으면서 ‘바로 이런 것이 고향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일이로구나’라고 생각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이제는 그런 문화적 덧씌우기가 절실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고향과 그 주변의 풍광을 해치는 온갖 간판들을 고쳐나가는 일도 고향 지키기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무자비한 크기와 문구에 울긋불긋하기만 한 그 식당 간판들부터 시화전 하듯 고쳐나갈 수는 없는 것일까요.

성실과 진실로 금을 쌓으면서, 이웃에게 거름이 되어 몸을 아끼지 않고 살아가는 형이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한가위입니다. 그날 떠오를 달처럼 환하고 가득한 마음으로 형을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주간동아 555호 (p200~200)

한수산 세종대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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