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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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인 없는 아프리카

  • 이명재 자유기고가

    입력2006-06-14 17: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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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인 없는 아프리카

    ‘아웃 오브 아프리카’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는 아프리카 대륙 몫의 본선 티켓이 6장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32개의 본선 티켓 중 6개면 무려 20%에 육박하는 수치다. 지난 10여 년간 월드컵 무대에서 꾸준한 ‘성적’을 냈던 아프리카로선 어쩌면 당연한 권리인지도 모른다.

    국제무대에서 아프리카가 이처럼 무시 못할 위치에 올라선 또 다른 예는 아쉽게도 찾아보기 힘들다. 세계 전체 인구의 약 20%가 살고 있는 아프리카지만, 세계무대에서 차지하는 경제적·사회적 지위는 형편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월드컵에서의 아프리카의 약진과 강세는 역설적으로 아프리카의 초라한 현실, 그리고 아프리카에 대한 우리의 철저한 무지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첫 상대인 토고라는 나라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 나라의 스트라이커 아데바요르를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토고가 아프리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 다른 본선 진출국인 코트디부아르와 가나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가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방식이나 수준은 여전히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에서 크게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광활한 아프리카의 자연을 무대로 덴마크 백작부인 카렌이 커피 농장을 꾸려가는 이야기다. 영화는 제국주의가 위세를 떨치던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다.



    원작자인 작가 카렌 브릭센은 진정으로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사랑하는 ‘착한’ 백인 여자다. 그녀는 다른 백인들처럼 흑인 위에 군림하지 않았고, 다른 문화와 정신을 받아들일 만한 개방적 태도도 갖추고 있다. 주인공 카렌이 사랑에 빠지는 남자 데니스는 카렌보다 더 흑인들의 편에 다가서 있다. 그는 흑인들에게 백인의 글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흑인들에게 글이 없는 게 아니죠. 그들에게도 글이 있어요. 그러니 그들에게 표현할 언어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요”라고 말한다. “우리는(백인은) 단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일 뿐이다”는 그의 말은 이 영화의 주제를 상징한다.

    그러나 ‘선의의 백인’들 시각에서 아프리카를 바라본 이 영화에조차 정작 아프리카인들은 ‘없다’. 그들은 다만 그늘 속에 그림자처럼 머물러 있을 뿐이다.

    우리는 어떤지 생각해보자. 세계일주가 흔한 일이 돼버린 요즘에도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여전히 ‘오지’다. 아프리카에는 인간과 문화가 없었다는 우리의 ‘오래된 상식’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우리의 ‘상식’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남부 아프리카의 해안부터 수마일에 걸쳐 위치해 있는 그레이트 짐바브웨의 거대한 석조 유적은 16세기에 이곳에 상륙한 포르투갈인을 깜짝 놀라게 했다. 또 서부 아프리카의 팀북투라는 도시는 14~15세기 세계 최대의 대학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그 외에도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증거는 너무도 많다.

    아프리카는 사파리 이전에 인간이 사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축구라는 문명’ 외에도 당당한 전통과 문화가 존재한다. 이번 월드컵이 너무도 당연한 이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기회가 될지 기대해본다.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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