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2

2006.04.25

‘인천 광역市 웨이하이區’

시내 곳곳 한글 간판·한글 분양 광고 … 중국어 몰라도 불편 느끼지 않는 한국인의 도시

  • 옌타이·웨이하이=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6-04-19 14: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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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광역市 웨이하이區’

    한글로 쓰인 간판이 즐비한 웨이하이 시내.

    “조금 시끄럽더라도 이해해주시오.”

    3월28일 중국 산둥성(山東) 옌타이(煙臺)발 인천행 페리 쫛쫛호실(1등석). 이순(耳順)을 넘긴 K 씨가 셀로판테이프로 담배를 포장하고 있다. 옌타이에서 구입한 담배(20보루)를 숨기기 좋게 5갑씩 나눠 셀로판테이프로 이어붙이는 솜씨가 능숙하다.

    “인천서 담배 넘기면 뱃삯이 떨어지거든. 옌타이와 웨이하이(威海)가 인천광역시 ‘옌타이구’, ‘웨이하이구’로 불리게 된 데는 담배와 양주가 큰 몫 했어.”

    K 씨는 월 10여 차례 이 배를 타는데 “고추 무역업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담배 밀수는 일종의 부업인 셈이다. 보따리 무역상의 대부분은 K 씨처럼 소량의 담배를 밀반입한다. 인천항엔 이들이 들여온 담배와 양주를 수거해가는 업자가 나와 있다.

    K 씨 같은 보따리상만 옌타이와 웨이하이를 찾는 게 아니다. 산둥성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1만5000개. 지난해 삼성전자 웨이하이공장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방문을 받기도 했다. 대우조선해양은 옌타이에 공장을 짓고 있으며, 현대중공업도 옌타이에 생산법인을 갖고 있다.



    중국 도시 중 한국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웨이하이는 ‘한국인을 위한, 한국인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한국화한 곳이다. 웨이하이는 옌타이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신도시’로 한국과의 교류가 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시내 곳곳에서 한글로 쓰인 아파트 분양 광고를 볼 수 있으며, 도심의 간판도 한자보다 한글로 적힌 것이 더 많다.

    “인구 20만 명의 소규모 어촌에 불과하던 웨이하이는 한국과의 카페리 항로가 개설되면서 불과 5년 만에 인구가 200만 명으로 급증했다.”(위동항운 관계자)

    3월27일 웨이하이 도심의 식당가. 중국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기가 오히려 쉽지 않다. 반면 한국음식은 없는 게 없었다. 중국음식점에서도 한국식 중화요리를 판다. 중국 고유의 자장면보다 한국 자장면을 더 좋아하는 중국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한-중 카페리 항로 개설 후 5년 만에 인구 10배 늘어나

    ‘인천 광역市 웨이하이區’

    옌타이항에서 보따리상들이 출국 절차를 밟고 있다. 이들의 가방엔 가짜 담배, 짝퉁 비아그라가 들어 있다.

    중국어를 몰라도 이곳에선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웨이하이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성영석 사장은 “중국의 여러 도시를 오가며 사업을 했지만, 웨이하이처럼 한국인이 살기 편한 곳은 없었다”며 웃었다.

    한국과의 교류가 늘면서 옌타이대학과 웨이하이정보공정학교의 한국어과는 큰 인기다. 웨이하이정보공정학교 한국어과는 수년째 취업률 100%를 기록했으며, 옌타이대학 한국어과도 교내 최고 수준의 취업률을 보이고 있다.

    대우그룹의 중국법인에서 일했고, 현재는 무역업을 하는 한 중국인 사업가는 “거리가 가깝다 보니 산둥 사람들과 한국인들의 기질이 매우 비슷하다”면서 “한국과 산둥은 앞으로 하나의 시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험 수위에 오른 ‘모조품 산업’은 벌써부터 한국을 ‘하나의 시장’으로 여기고 있다. 옌타이항와 웨이하이항은 가짜 담배 및 비아그라가 한국으로 ‘수출되는’ 전진기지로 기능한다. 한국에서 풍겨온 돈 냄새를 맡은 북한의 ‘모조품 산업’도 황해의 파고만큼이나 출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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