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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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실용적인 공부

  • 김재준/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 artjj@freechal.com

    입력2004-08-05 1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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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실용적인 공부
    얼마 전 필자는 한 대형서점에서 ‘10대의 책 읽기’ 라는 주제로 강연한 적이 있다. 최근 펴낸 책 ‘언어사중주’가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면서 초청받은 것이다. ‘언어사중주’는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으로 대학 교양과목 수준의 내용을 고등학생에게 설명하는 책이다. 수능만 생각해서는, 수능도 잘 볼 수 없다는 게 그 책의 메시지다.

    우리는 남보다 잘 해야겠다는 승부욕이 매우 강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단기간의 승부에 집착해 기본적인 사항을 무시한 결과 장기적인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다. 지금의 고등학교 교육도 그렇다. 지나친 경쟁을 막고 창의력을 키운다는 생각은 좋지만, 결과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장 성과를 내기 위해 대학입시제도 등을 급격히 바꾼 후 평균적인 기본 학력은 그런대로 유지되는 것 같지만, 우수한 학생들에게 학교는 충분한 지적 자극이 되지 못하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재들의 창의력이 실종된 것이다.

    10년, 20년 뒤 바뀐 세상에서도 실력의 바탕은 ‘말과 글’

    프랑스나 미국의 고등학교에서는 영재들에게 대학 수준의 수업을 가르친다. 그런데 대학 본고사가 폐지된 이후 대학으로부터 학생 선발권을 박탈하고 학생들로부터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내용을 배울 기회를 빼앗아간 측면이 있다. ‘다 같이 어려운 것은 배우지 말자’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담합이 생긴 것이다.

    우리나라와 친선경기를 한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에는 창의성이 없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창의성의 위기는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환경에서 창조적인 영재를,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를 기대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위원회를 교육부 산하에 신설하고 많은 예산을 배정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교육부가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교육부가 개입하면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더 크다.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한 예로, 우리나라 도서관에는 책이 없다. ‘완전 정리 헌법’, ‘토익 900 돌파’ 같은 책 몇 권만 각자 들고 가면 된다. 책상과 의자만 있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냉방만 잘 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왜 사람들은 다양한 책을 읽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항상 어떤 목적만을 위해 공부하고, 책을 읽게 하기 때문이다. 그밖의 독서는 ‘딴 짓 하는 것’으로 취급받는다.

    서점에서도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경향은 실용서적의 범람이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까, 영어를 잘할까, 돈을 잘 벌까, 건강해질까, 행복해질까…. 그러나 이런 책을 읽고 영어를 잘하게 되어 성공했다는 사람은 사실상 거의 없다. 왜냐하면 그 비법은 그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경험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책이 잘 팔린다.

    이처럼 실용적인 것만을 강조하는 세태 속에서 나는 가끔 학생들과 정말 실용적인 것은 어떤 것일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우리 한번 생각해보자. 지금 실용적인 것이 20년 뒤에도 실용적일까. 지금 전망 좋은 학과가 10년 뒤에도 과연 그럴까. 1970년대에는 화공과의 입학 성적이 의예과와 비슷했다고 하지. 그러나 지금 우수한 수험생들은 전국의 모든 의과대학을 채우고 난 뒤에야 서울대 공대를 생각해보는 게 현실이잖아. 오늘 전망 좋아 보이는 전공이 10년 뒤에는 학생이 없어 고생하기도 할 거야.”

    “그럼 어느 과를 가야 전망이 좋지요?”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진짜 실용적인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힘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리고 자기 생각을 논리적인 말과 글로 풀어내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이야.

    대학 전공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전문적인 내용을 그 분야의 기술적인 언어로 사고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거든. 전공이 사회학이든 역사학이든 경영학이든 똑같아. 10년, 20년이 흐른 뒤 세상은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어느 상황에서도 적응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실력은 바로 ‘말과 글’이야. 그것을 익히는 것이 길게 보아 가장 실용적인 공부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선진국의 대학에서는 과학기술과 인문학을 대학교육의 양대 축으로 삼는다. 언어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며, 언어를 공부하고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장기적으로 볼 때 가장 실용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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