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3

2004.07.15

‘악’으로 뛰고 ‘깡’으로 구르고

  • 글·사진=허시명/ 여행작가 www.walkingmap.net

    입력2004-07-08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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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으로 뛰고  ‘깡’으로 구르고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 훈련 중인 병영체험 참가자들.

    알겠습니까?” “악!” “대답소리가 작습니다” “아악!” “교관이 가장 좋아하는 게 뭔 줄 아십니까? 두 가집니다. 큰 목소리, 신속한 동작, 아시겠습니까?” “악!”

    여기에서 단체 복창은 모두 “악”으로 통한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겠다는 뜻이다. 그 소리가 너무 강렬해, 해병대에서조차 이미 폐기한 복창이 이곳에서는 자주 들린다.

    이곳은 충남 태안군 안면도 백사장해수욕장 웨스턴 레저타운에 있는 해병대 병영체험 훈련장. 다양한 체험여행이 있지만, 병영체험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풍경일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추억으로, 어떤 이에게는 공포로, 또 어떤 이에게는 넘어야 할 산으로 남아 있을 병영생활을 이곳에서는 얼마든지 복습 또는 예습할 수 있다.

    훈련은 해병대 교육관 출신들로 구성된 해병대아카데미에서 주관한다. 2000년 6월에 영화 ‘해안선’ 출연배우들을 교육하면서 결성된 사업체다. 훈련에 많이 참가하는 집단은 기업체나 운동선수, 학생들이다. 여름에는 가족캠프가 열린다. 때로 군대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여성단체나 장애인단체도 참여한다.

    당일부터 3박4일 코스까지 다양



    ‘악’으로 뛰고  ‘깡’으로 구르고

    숙달된 조교의 타워레펠 시범.

    오늘 훈련에 참가한 단체는 식품회사인 해찬들 영업직원들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영업사원들이 모여서 단합대회를 하고 있다. 훈련장 구령대 옆에는 ‘2000억 달성을 위한 상반기 영업본부 전진대회’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체험 훈련에 동참한 영업본부장은 “똑같은 복장으로, 똑같은 구령에 맞춰 오늘 하루는 상하관계 없이 함께 단합심을 발휘해봅시다”라고 했다. 본부장이 함께 뛰니 평사원들도 젊은 교관들의 명령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입소식을 마친 뒤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PT(Physical Training)체조. 기본체조로 몸 풀기 동작이다. 하지만 잠시 하는 게 아니다. 두 시간가량 다양한 동작이 반복된다. 그러는 동안 몸은 녹초가 되고, 인내력도 한계에 부딪힌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찾아온 곳이니 거부하기도 어렵다. 더욱이 상사가 앞장서니 아래 직원들은 묵묵히 따라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다 보면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틀이 서서히 깨져나간다. 쉬는 시간에 이동할 때는 3인 1조가 되어 손잡고 다닌다. 사회생활을 한 뒤로 연애할 때말고 다른 사람과 손 잡고 걸어본 적이 있던가? 거의 없다. 어색하지만, 손을 잡고 다니다 보면 동료애도 새롭게 생겨난다.

    점심시간이라고 해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잡담 금지에, 허리 펴고 절도 있게 먹어야 한다. 잠시 흐트러지면 “운동장에 집합!” 명령이 떨어진다. 운동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나면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에 군기가 번쩍 든다.

    오후에는 해상 침투하는 IBS (Inflatable boat small·공기주입형 보트) 훈련이다. 해병대만의 고유한 훈련인데, 쉽게 말하면 요즘 가장 각광받는 수상레포츠인 래프팅이다. 우리나라 래프팅의 역사는 한탄강에서 시작되었는데, 원조가 바로 해병대의 IBS 훈련이다. 래프팅은 10분 정도의 준비운동을 하고 강으로 뛰어들지만, 이곳에서는 다르다. 2시간 동안 힘든 지상 훈련을 거친 뒤, 보트를 머리에 이고 해변으로 나간다. 해변은 백사장해수욕장이다. 백사장이 많아 백사장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송림과 백사장 사이에 시멘트 옹벽을 치면서 모래가 쓸려나가 자갈층이 많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송림이 좋고 모래톱이 넓어 시원스러운 해변이다.

    ‘악’으로 뛰고  ‘깡’으로 구르고

    먼 바다까지 래프팅을 하고 돌아오는 참가자들.

    보트를 바다에 띄우고, 삼봉해수욕장 앞까지 바다 래프팅을 하고 돌아온다. 우렁찬 구호에 맞춰 어깨가 빠질 정도로 노를 젓다 보면, 동료들과 한배를 타고 있음을 진정으로 절감하게 된다.

    해병대 훈련단 소대장 출신인 정진호 훈련본부장은 훈련에 참여하는 기업들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가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 처한 중소기업체 직원들이다. 이들은 해병대 정신과 일치하는 게 많다. 해병대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해안을 통한 침투다. 침투선에서 내던져진 대원들은 적의 진지를 향해 무조건 돌진해야 한다. 뒤는 망망대해라서 돌아설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의 구호는 ‘싸워서 이기고 지면 죽어라!’다. 죽는다가 아니라, 죽어라다.

    두 번째는 잘나가는 회사. 그래서 너무 평온하고 느슨해진 회사 직원들이 정신을 재무장하기 위해서 찾아온다. 세 번째는 합병한 회사 직원들이 조직 활성화 차원에서 찾아온다. 해병대는 희생정신을 통해서 단결력을 강화해나가는 집단이기 때문에, 합병 회사가 필요로 하는 정신력을 부여해줄 수 있다고 훈련본부장은 말한다.

    실제 2003년에 LG전자 창원공장 전 사원 6500명이 6개월에 걸쳐 차례대로 병영체험을 하고 갔는데, 그 해에 창사 이래 최고 매출 신장세를 기록했다고 한다.

    정 훈련본부장은 행여 사람들이 너무 겁먹고 두려워할까 봐서인지, 해병대아카데미는 극기훈련장이 아니라 병영체험훈련장이라고 말한다. 해병대에서 받은 사랑을 일반인들에게 나눠주고 싶어 이 일을 시작했다며, 영원한 해병다운 얘기를 했다.

    ‘악’으로 뛰고  ‘깡’으로 구르고

    PT체조에 지칠 대로 지친 대원들.

    이곳의 훈련 과정은 당일, 1박2일, 2박3일, 3박4일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1박2일을 하면 7km 구보가 포함되고, 2박3일이 되면 집총체조, 유격훈련이 포함된다. 3박4일은 훨씬 더 치밀하게 훈련이 이뤄진다. 잠자리는 병사들처럼 내무반에서 군용 모포를 덮고, 취침 비상훈련도 한다.

    허리에 줄을 메고 고공낙하 훈련을 하는 헬기레펠이나 타워레펠은 아찔하고 무서운 훈련이다. 헬기레펠 훈련에 견주면, IBS훈련은 물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려운 훈련을 할수록, 그래서 육신과 정신의 바닥을 볼수록 새로운 의욕이 충만해진다.

    해병대 병영훈련은 군대를 갔다 온 이들에게는 추억여행이다. 군대를 안 간 여자에게는 남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체험여행이다. 사람들은 힘든 상황에 처할 때, 그래서 자신이 미물에 지나지 않다고 느껴질 때, 비로소 주변을 돌아보고 동료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힘든 훈련을 하면서 부딪치는 상사와 부하직원의 눈빛, 아버지와 아들의 눈빛이 더욱 따뜻해질 수 있는 곳이 바로 해병대 병영체험장이다.

    여행 메 모

    웨스턴레저타운 - 안면도 백사장해수욕장에 있는 유스호스텔이다. 객실 252개, 대강당, 편의점, 식당, 운동장, 해수사우나탕 등을 갖추고 있다. 해병대 병영체험, 역사체험, 해양체험을 포함한 다양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041-672-5537, 오뚜기식당(백사장항 횟집) 041-673-5425, 해병대아카데미 1688-4396, 부산양산 해병대체험훈련장 055-383-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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