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8

2003.06.12

대북송금 ‘진실게임’은 이제부터

특검, DJ정권 핵심 줄소환 … 광주일고 출신 변호사 집중 선임 ‘힘겨루기’ 양상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3-06-04 1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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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북송금 ‘진실게임’은 이제부터

    4월16일 열린 특검팀 현판식에서 송두완 특검(왼쪽에서 세 번째)과 박재승 대한변협 회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대북송금 의혹사건을 수사중인 송두환 특별검사팀(이하 특검)이 6월5일로 수사 착수 50일(4월17일 시작)을 맞이했다. 특검의 공식일정은 특검법에 따라 120일을 넘길 수 없다. 70일(6월25일)이 지나면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1차로 30일을 연장할 수 있고 2차로 20일을 다시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70일 안에 만족할 만한 수사결과를 내놓을 것이고 정치권에서도 굳이 연장할 명분을 찾지 못할 것”이란 게 특검 주변의 대체적 의견이다.

    특검은 이미 5월이 가기 전 이근영 전 금융감독위원장(이하 금감위원장)과 이기호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구속했다. 이 전 위원장에게는 업무상 배임 혐의가, 이 전 수석에게는 여기에 직권남용 혐의가 추가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경제참모였던 이 전 수석은 2000년 6월, 이근영 당시 산업은행 총재에게 현대에 대한 대출을 부당하게 지시했다는 것. 따라서 특검이 직권남용을 이유로 사법처리를 강행했다는 것은 당시 대북송금을 통한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관여했던 인사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단죄의 의지로 보인다.

    “70일 안에 수사결과 내놓을 것”

    특검은 그동안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과 현대, 그리고 금융권 실무자를 불러 조사한 끝에 북한에 송금된 5억 달러의 조성경위와 송금경로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적으로는 이 돈이 현대의 ‘대북 경협사업’보다는 ‘정상회담 대가’라는 결론을 내린 상황. 그러나 이러한 정황은 상식에 속하며 DJ조차 대북송금에 대해 ‘통치행위의 영역’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따라서 이제 관심은 사건 자체의 진실보다는 현·전 정권 세력 간의 힘겨루기와 특검과 변호인 간의 공방에 모아지고 있다.

    수사 착수 초기 특검의 인적 구성이 단연 화제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중요한 인재풀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대거 특검팀에 합류했기 때문. 4대 민변 회장을 지낸 송두환 특검을 비롯해 민변 사법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종훈 특검보, 민변 사무차장 출신의 이인호 수사관, 그리고 나중에 합류한 김진욱 김승교 수사관이 그 주인공들이다.



    법조계 주변인사들은 DJ 정권의 최대 업적 중 하나인 ‘햇볕정책’의 상징인 남북정상회담을 현정권과 가까운 민변 출신 특검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이에 따른 부담감과 곤혹스러움은 특검 내부에서도 흘러나왔다. 얼마 전 김특검보는 기자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국익을 고려해 보도에 신중을 기해달라. 우리 앞에는 갈라진 정파와 또 다른 상대인 북한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북송금에 관여된 핵심 관계자들의 변호인들이 모습을 속속 드러내면서 특검과 변호인 간의 ‘기 대결’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 DJ 정권 핵심인사에 대한 특검의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대형 법무법인 소속의 거물급 변호사들과 DJ 정권에 깊숙이 관여된 호남 출신 법조인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대북송금 ‘진실게임’은 이제부터

    김종훈 특검보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수사 진행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우선 현대(정몽헌 김재수 김운규 김충식) 관계자들은 기왕에 거래해오던 법무법인 김&장을 택했다. 1999년 말 검찰의 옷로비 사건 수사 도중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사표를 던졌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출신 이종왕 변호사가 그 중심에 있다. 이변호사는 현재 SK 최태원 회장에 대한 서울지검의 고발 사건까지 맡고 있는 특급 변호사다.

    처벌 대상에 오른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최규백 전 기조실장과 김보현 전 3차장, 그리고 임동원 전 원장이다. 5월12일 소환된 최 전 실장은 이미 4월에 법무법인 ‘화우’의 노경래 대표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현재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변호인이자 한광옥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자문역을 맡고 있는 노변호사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변호사 모임(이하 노변모) 회원으로 ‘햇볕정책’의 열혈 지지자로도 알려져 있다. 함께 팀을 이루고 있는 김병학 변호사와 함께 광주일고 출신이다.

    애당초 임 전 원장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변호인을 두는 것 자체가 죄를 시인하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 그러나 이 전 금감위원장이 긴급 체포되자 소환 전날인 5월21일 법무법인 ‘태평양’의 나천수 변호사를 선임했다. 나변호사는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광주일고 출신의 법조인.

    국정원과 청와대 관계자들은 변호인을 아는 사람 위주로 선임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특정 지역의 편향성. 우연의 일치겠지만 변호인들 상당수가 광주일고 출신이다. 소환자 중 광주일고 출신은 이 전 수석과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 둘뿐인 데 반해 변호인들은 공식·비공식적으로 6명에 달한다(표 참조).

    “잘 아는 선배인데 수임료부터 챙길 수 있나요? 그냥 부탁받고 뛰어든 거죠.”



    대북송금 ‘진실게임’은 이제부터

    노경래 변호사, 나천수 변호사, 최재천 변호사, 이종왕 변호사, 노인수 변호사(왼쪽부터)

    이 전 수석의 변호사로 선임된 법무법인 ‘한강’ 대표 최재천 변호사는 ‘선후배론’으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전 수석과 최변호사 역시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 법무법인 화우의 김병학 변호사는 “노변호사, 최 전 기조실장과 내가 중학교 동창이기 때문에 최 전 실장의 변호를 맡았다고”말했다.

    이 전 금감위원장도 권노갑씨 변호인 출신인 법무법인 ‘한백’의 문형식 변호사의 소개로 변호인을 선임했다. 박 전 산업은행 부총재는 김대웅 전 광주고검장에게 자문받는 형태로 조사에 임했다. 김 전 고검장은 광주일고 동창인 이기호, 박상배씨와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같이 변호인의 광주일고 ‘편향’ 추세에 대해 최재천 변호사는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며 “지인을 찾게 마련인 의뢰인의 특성상 법조계에 진출한 사람이 많은 광주일고 출신들이 주로 선임됐을 뿐”이라고 세간의 핵심인사 변호인들 간의 접촉설을 일축했다.

    그러나 대다수 법조계 인사들은 “대북송금 의혹 관련 핵심 변호인들이 특정 고교 출신에 몰려 있는 것은 DJ 정권 말기의 인사의 편중과 떳떳하지 않고 은밀하게 진행된 대북사업의 한계를 보여주는 일례다”라고 비판한다.

    특검의 칼날은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 소환과 DJ에 대한 조사로 향하고 있다. 특검은 이를 끝으로 70일간 조사의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DJ의 변호인을 누가 맡을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그동안 DJ의 법률자문을 맡아온 사람은 이재신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DJ가 이 전 수석에게 변호를 부탁했지만 측근인사들의 부정적 견해를 전해 들은 이 전 수석이 ‘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대안으로 변호사인 노인수 전 대통령사정비서관이 떠올랐다. 노변호사 역시 광주일고 출신.

    노변호사는 5월29일 특검의 사법처리 방침과 관련해서 개인성명을 발표했다. 특검이 ‘통치행위’라는 주장에 대한 결론을 미루며 사건을 형법적으로만 처리해 본질을 호도한다는 것이 성명의 주된 내용이었다. 다른 변호인들 역시 “특검은 모든 국민을 피해자로 만들 뿐”이라며 역사적 의미를 퇴색시키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1차 결론까지 남은 시간은 3주일 남짓. 대북송금과 관련해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선택된 창과 역사적 대의에 무게를 실은 방패의 대결은 더욱 불꽃을 튀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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