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0

2003.04.17

발 묶고 귀 막은 청와대 취재 죽을 맛

대변인 브리핑이 기사 90% 차지 … 국민과의 직접 대화 등 인터넷 활용 더욱 중시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04-10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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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 묶고 귀 막은 청와대 취재 죽을 맛

    2월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일정상회담과 관련 첫 브리핑을 하고 있는 송경희 대변인.

    ‘참여정부’ 출범 한 달이 지나면서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출입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4월 초 한 중앙언론은 청와대 출입기자를 ‘닭장 속의 닭’이라고 표현했고, 다른 한 언론의 청와대 출입기자는 ‘청와대 출입 기자가 아닌 춘추관 출입기자’라며 청와대측의 취재제한 조치를 비판하고 나섰다. 기자협회보도 청와대의 춘추관 운영에 대한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기자들이 출입처를 동시다발적으로 비판하는 경우는 드문 일로 중앙일간지 한 기자는 “그만큼 쌓인 게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도가 바뀌면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해명하던 청와대는 4월4일 출입기자들에게 청와대 비서동을 구경하게 하는 ‘특혜’를 베풀었다. 이날 비서실을 구경한 한 출입기자는 “이제 한(?)을 풀었다”고 비아냥거렸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얼굴이 70% 이상 바뀌었고, 이들 가운데 비서동을 처음 구경한 기자가 태반이었다는 게 이 기자의 설명이다. 비서동을 구경한 뒤 기자들은 녹지원에서 바비큐 파티를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분이) 속마음으로 얼른 가시오, 별로 안 반가워하겠지만…. 오래 앉아서 무슨 사고를 치려고 그러느냐 할 텐데…”라고 말해 언론에 대한 평소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했다. 취재와 관련해 청와대측의 ‘성의’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지방언론의 J기자는 이후 기대를 접었다.

    출입기자 절반 비서실 처음 구경

    청와대는 다른 부처에 비해 취재 기회가 극도로 제한된다. 국민의 정부 시절 김대중 대통령(DJ)의 육성을 듣는 것은 고작 한 달에 한두 번에 지나지 않았다. 기자들은 자연스레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특보, 비서관 등을 통해 대통령의 의중이나 그날그날 이슈를 취재할 수밖에 없었다. DJ정부 시절 청와대는 오전 11시와 오후 4시, 하루 두 번씩 비서실을 개방했고 정무수석의 경우 정례적인 티타임을 통해 기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기자들의 비서실 출입을 원천적으로 제한, 기자들의 발을 묶었다. 비서관 면담 취재시 인터뷰 요청서 사전 제출 요구도 기자들로서는 ‘죽을’ 맛이다. 속보로 다루거나 보안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개별 취재 신청의 경우 3월31일까지 38건이 접수됐지만 정작 취재에 성공한 경우는 이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제시한 공식 취재라인은 송경희 대변인이다. 송대변인은 오전 11시와 오후 3시 브리핑을 한다. 기자들은 이 브리핑을 통해 청와대발 기사의 90%를 얻는다고 한다. 그러나 공급자 중심의 관급기사 일색이라는 게 취재진들의 고민이다. Y사의 한 출입기자는 “관급기사를 통한 발표 저널리즘만 존재할 뿐 더 이상 속보경쟁은 자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당연히 기자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선다. 학연 지연 등을 통한 사적인 라인 구성이 취재의 성패를 가늠하지만 요즘은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전화를 하면 자리를 비웠거나 회의중인 경우가 태반이다. 메모를 남겨도 비서관들의 리콜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회의와 회의 사이에 잠깐 연결을 시도하는 그야말로 외줄 타기 취재에 목을 맨다. 설혹 통화가 이뤄져도 “공식 라인을 통해 취재해달라”고 하거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며 취재기자의 질문을 피해 가기 일쑤다. 평소 알고 지내는 인사라도 대화 서두에 “취재하는 것이냐”고 묻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이런 통화마저 비서진이 거부해 취재기자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한다. 3월29일 청와대 비서관 워크숍에서 “일부가 기자들과 술 마시고 나가선 안 되는 정보를 내보내 배신감을 느꼈다”는 노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직후부터 비서관들의 취재기자 피하기가 더욱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발 묶고 귀 막은 청와대 취재 죽을 맛

    유인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3월13일 청와대 브리핑룸에서 대북 비밀송금 특검법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을 설명한 뒤 브리핑룸을 떠나고 있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Y사의 B기자는 노대통령의 발언 직후 일주일 전에 한 C비서관과의 저녁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당했다. 대학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평소 허물없는 사이였지만 노대통령의 ‘배신감’ 발언 이후 “나 좀 살려달라”며 막무가내로 만나지 않겠다는 C비서관의 하소연에 B기자는 망연자실할 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갈수록 열악해지는 취재여건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인터넷 정부를 지향하는 청와대의 의지와 활동범위는 급속도로 넓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5월 국민참여센터 홈페이지를 오픈,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국민과의 직접 대화에 나설 계획이다. 국정참여수석실은 인터넷을 통해 국민토론방을 개설하고 온라인 여론조사도 실시할 예정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국정모니터단의 구성, 청와대 홈페이지 기능 강화 등도 청와대의 구상이다. 어린이 마당, 여성 코너의 신설도 준비중이다.

    국정참여수석실측은 이메일 뉴스레터인 메일매거진 서비스를 개시, 네티즌 회원 등 20만명에게 뉴스레터를 보내고 있다. 3월18일 오픈한 영문 홈페이지에 이어 일어와 중국어 사이트도 준비중이다. 청와대의 이런 노력으로 홈페이지 방문자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3월 말 현재 ‘대통령과 검사와의 토론회’ 등 청와대가 중계한 사이트 방문자 수는 200만명을 넘어섰다.

    이런 분위기는 노대통령의 인터넷에 대한 의지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노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인터넷에 큰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시간이 나면 인터넷 서핑을 한다고 한다. 당선 후 처음 인터뷰를 한 것도 인터넷 매체였다. 인수위 시절 내각과 청와대 비서관 등에 대한 인사추천도 인터넷을 통해 받았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인터넷을 통해 대통령과 국민이 쌍방향 정책제안을 하고 토론을 벌이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청와대 기자실도 ‘인터넷’의 대공세가 예견되고 있다. 4월 초 현재 20여개 이상의 인터넷 매체가 등록신청서를 제출해놓고 청와대측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출입증을 내줄 계획”이라고 말했다(상자기사 참조). 인터넷 공화국이란 지적이 허튼소리는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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