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경남 김해시에서 열린 시국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권 의원(맨 왼쪽)(큰 사진). 1976년 6월 사법연수원에서 산업 시찰을 다녀온 뒤 남해대교에서 찍은 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노무현 전 대통령, 앞에 앉은 사람이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작은 사진).
김정권 의원 “20년 인연, 존경하는 선배 조문도 못 가는 게 통한”
김정권(49) 의원이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딱 20년이 됐다. 두 사람은 1989년 김해 민주청년회장과 ‘청문회 스타’로 각광받는 국회의원으로 처음 만났다. 당시 김정권 회장은 민주청년회가 준비하던 청년학교 강사로 ‘고향 선배’ 노무현 의원을 초청했다.
“노 전 대통령이 ‘청문회 스타’로 뜨면서 무척 바쁘게 활동하던 때였어요. 하지만 고향에서 하는 행사라고 하니까 한걸음에 달려왔죠. 강연에서 노 전 대통령은 민주화의 희망과 기개를 북돋우는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게 정신적 이정표이자, 힘들고 어려울 때 자문해주고 격려하며 힘을 주는 존재였다. 개인적 친분도 계속됐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의원의 결혼식에 참석한 것은 물론 뒤풀이 자리까지 함께했을 정도. 그렇게 가까운 사이였기에, 김 의원이 정치에 입문한 뒤 다른 길을 걷게 됐음에도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굳이 과거를 들먹이면서 친하게 지내려 하지도 않았죠. 대통령에 취임한 뒤엔 한 번도 뵈러 간 적이 없어요.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자연인이 되어 봉하마을에 내려갔을 때 찾아가뵀죠. 그때 정치 이야기는 별로 안 하고 옛날 일에 대한 추억을 나눴던 생각이 납니다.”
5월23일, 김정권 의원이 비보를 접한 것은 지역구 행사장에 가던 길이었다. 그는 곧장 발길을 돌려 양산부산대병원으로 달려갔고,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사저에 도착하기 전 봉하마을에 내려가 상황을 파악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김 의원은 봉하마을에서 공식 조문을 하지 못했다. 25일 박희태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와 조문하려 했지만, 일부 과격한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서 물세례만 받았다. 봉하마을이 김 의원의 지역구인 김해인데도. 그는 여러 차례 착잡한 심정과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고인이 몸을 던지면서까지 원했던 건 국민통합, 사회통합이었어요. 그건 그분의 삶과도 일치하고요. 남은 사람들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그 유지를 받들어야 해요. 평소 믿고 의지하던 선배의 장례식장도 못 가게 되니 너무 서글픕니다.”
김 의원은 “충격적이고, 믿기 힘들고, 비통하고 애석하다”는 말을 거듭했다. 그는 다른 의정활동을 모두 중단하고 한동안 산에 들어가 수행할 생각이라고 했다. 인터뷰 후 김 의원 측은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서울로 떠나기 전날인 28일 새벽 조용히 홀로 조문을 다녀왔다고 전해왔다.
안상수 의원“고인의 뜻은 화해와 평화의 길에 있다”
안상수(63) 원내대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다음 날인 5월24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1976년 노 전 대통령 등과 찍은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였다. 노 전 대통령과 사법시험(17회) 동기인 그는 “어제 앨범을 뒤져 이 사진을 찾아냈다”며 “당시 친한 사람들끼리 기념촬영한 것인데, 30년이 넘은 이 사진을 보면서 깊은 감회에 젖었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과 안 원내대표는 나이가 같고(1946년생), 고향도 각각 경남 진영과 마산이어서 연수원 시절 늘 옆자리에 앉을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안 원내대표는 노 전 대통령을 ‘분위기 메이커’로 기억했다. 연수원 수업 때 교수들을 괴롭히는 발언이나 농담을 많이 해 분위기를 주도했다는 것. 두 사람은 정치에 입문할 때도 서로 상의했을 정도로 친했으나, 안 원내대표가 1996년 신한국당 국회의원으로 정치생활을 시작한 뒤 다소 소원해졌다고 한다. 안 원내대표는 “2002년 초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뒤 부산의 한 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나 ‘열심히 하라’고 덕담했던 기억이 난다”며 “이제 한국 정치가 투쟁이 아닌 화해와 평화의 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됐다. 고인의 뜻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영 의원“꾸밈없는 ‘무현이 형’, 퇴임 후 못 만난 게 아쉬워”
“연수원 시절 우리는 자기보다 나이가 적으면 이름을, 많으면 이름 뒤에 ‘형’을 붙여 불렀어요. 저보다 네 살 많은 노 전 대통령은 그때도 ‘무현이 형’이었고, 지금도 제 마음속엔 ‘무현이 형’이죠.”
진영(59) 의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진 의원과 노 전 대통령은 사법시험(17회) 동기로 사법연수원 시절 동고동락하던 사이. 연수원 동기가 59명밖에 안 돼 모두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을 솔직하고 순수하며 유머가 넘치고 꾸밈과 가식이 없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노 전 대통령은 논쟁하는 걸 무척 즐겼어요. 연수원 교수님들과도 법률 논쟁을 많이 했죠. 유머감각도 넘쳤어요. 속리산에 놀러 갔을 때는 팔도 사투리를 하면서 사람들을 배꼽 잡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동기 대다수가 서울대 또는 법대 출신이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어요.”
진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변호사 활동을 열심히 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인권변호사로서 노동 문제에 관여했을 때의 면모가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수임을 받은 ‘변호사’로서의 처지가 아니라 ‘노동자’ 처지에서 접근했다는 것. 노 전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한 뒤에도 두 사람의 인연은 이어졌다.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 때 ‘뭐가 가장 좋으냐’고 물었어요. ‘국회에 들어갈 때 경례를 받는데, 그게 기분 좋더라’고 하더군요. 참 서민적이고 꾸밈없는 분이었어요.”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단둘이 만난 것은 1995년 노 전 대통령이 부산시장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진 의원은 그때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 인생에 대해 ‘꿈을 꾼 것 같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또 ‘정치를 그만둬야 하나’라고 생각할 만큼 상처받고 실망했던 것 같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일이 많았어도 잡초처럼 꿋꿋하게 일어나던 노 전 대통령이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자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판사 임용이 됐을 때 ‘참 출세했다’며 우스갯소리를 했어요. 연수원생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환경에 있었거든요. 정치를 한 뒤에도 온갖 역경을 겪었지만 결국 대통령이 됐으니 정말 출세한 건데…. 오래오래 살아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됐어야 했는데….”
진 의원은 5월25일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로 조문을 다녀왔다.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편하게 한번 만나지 못한 것과 봉하마을로 조문을 가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는 그는 모든 일이 정리되면 봉하마을을 다녀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