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시민들이 5월26일 핵실험 성공을 경축하는 군중집회를 열고 있다.
통일부가 개성에서의 당국 간 2차 접촉을 추진하던 5월 중순, 정부의 한 핵심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이 무렵 청와대의 분위기는 이전과 사뭇 달랐다. 4월5일 장거리 로켓 발사 이전의 ‘단호한 대응’이라는 기조는 어느새 ‘유연한 대응’이라는 말로 바뀌어 있었고, 이 과정에서 당초 외교통상부가 공언한 대량살상무기방지구상(PSI)의 전면 참여에 관한 발표가 계속 미뤄진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주의적 성향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오랜만에 ‘이벤트’를 맞이한 통일부에는 분주함과 흥분이 감돌았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당국 간 접촉을 고위급 회담으로 격상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외교부가 주축이 돼 강경한 태도를 이어오던 안보 라인의 헤게모니가 이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남북 간 대화를 열 수 있는 모멘텀이 준비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조선일보’가 ‘MB의 변화인가 변절인가’라는 칼럼을 통해 이러한 행보를 비판하고 나선 게 5월24일이다.
상황은 미국 워싱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양의 행보에 대해 ‘선의의 무시(benign neglect)’를 이어오던 오바마 행정부의 초기 대북정책이 재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한 고위급 인사를 북한에 보내기 위한 조치가 북미 간 뉴욕 채널을 통해 궤도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사실상의 결정권을 가진 중량급 인사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강성대국’ 향한 시간표
분위기가 무르익던 5월25일 북한은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서울과 워싱턴에서 진행되던 반전의 움직임은 한순간에 중단됐다. 서울에서는 다시 ‘단호한 대응’이 키워드로 떠올랐고, 워싱턴에서는 ‘(북한 지도부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는 평가가 흘러나왔다. 청와대는 PSI 전면 참여를 발표했다. 워싱턴 고위급 특사의 방북계획은 백지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평양은 과연 5월 중순의 청와대와 백악관 분위기를 몰랐던 것일까. 일각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 이후 북한의 정책 결정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을 제기한다. 최근 서울과 워싱턴의 ‘온건’ 기류를 정확히 읽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핵실험을 강행했으리라는 분석이다.
여기에는 최승철 전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의 처형설로 상징되는 대남라인의 몰락이 한몫했으리라는 견해도 뒤따른다. 남한이나 미국의 기류를 읽을 줄 아는 이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지난 연말부터 이뤄진 인사결정으로 전권을 장악하게 된 군부의 강경노선에 힘이 실리는 것 같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전직 정보당국의 고위 관계자들은 이 같은 분석에 동의하면서도 사뭇 다른 결론을 내놓는다. 북한이 올해 들어 이어오고 있는 강경 조치들이 실은 일정 시간표에 따른 것 같다는 분석이다. 이는 북한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젖히는’ 해로 선포한 2012년을 목표 시점으로 잡고 역산해서 나온 결과물로 봐야 한다는 것.
주지하다시피 2012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임을 결정지을 미국 대선이 예정돼 있다. 이해 여름부터 백악관이 대선 열기에 휩싸일 것을 감안한다면 평양과 워싱턴이 테이블에 마주앉아 실질적으로 밀고 당기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당장부터 따져도 3년에 불과하다. 1998년 대포동 미사일 발사 이후 클린턴 행정부와 1년 반,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부시 행정부와 1년 반 동안 밀고 당기기를 벌였음에도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평양 처지에서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안보당국의 한 전직 최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올해 들어 북한이 미사일과 핵을 동시에 언급하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1998년과 2006년의 도박이 둘 중 하나에 관한 것이었다면, 최근 북한은 이 둘을 조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과시 중이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가능성 언급이 연결돼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미사일과 핵 기술 보유를 보여줬다면 이제부터는 ‘핵을 장착한 ICBM’이라는 카드를 흔들어 미국에 실질적인 압력을 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다음 수순은 당연히 ICBM 발사다. 이에 더해 미사일에 장착 가능한 수준(중량 1t 안팎)으로 경량화한 핵탄두의 개발을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경량화한 핵탄두를 미사일에 실어 폭발실험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미국이나 유럽의 핵 과학자들을 초청해 핵탄두를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이전에도 평양은 미국 핵공학 전문가들을 영변 단지로 초청, 추출한 플루토늄 실물을 확인시켜주는 방식을 선택한 바 있다.
핵 장착한 ICBM 가능할까?
물론 2009년의 북한이 ICBM 발사나 핵탄두 경량화를 완수할 만한 기술을 축적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4월 장거리 로켓 발사만 해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고, 핵탄두 경량화는 외부의 기술지원이 없으면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거꾸로 보면 최근 북한의 강경 행보는 ‘자신감’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정보당국의 한 전직 고위 관계자의 분석이다.
“사실 2차 핵실험은 핵 능력의 향상을 의미할 뿐이다. 이것만으로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없다는 점을, 그 정도로는 백악관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란 같은 현안을 제쳐두고 한반도 문제에 매달릴 리 없다는 점을 평양도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적으로 ‘다음 단계’를 감행할 수 있는 자신감을 지니기 때문에 지금처럼 강공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가능하다. 미국이 ‘현존하고도 명백한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으로 인식할 만한 수준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의 대화노력 수포로
2차 핵실험 직후 서울과 워싱턴의 분위기는 매우 강경하다. 그동안 물밑에서 논의되던 남북 간, 북미 간 대화 테이블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현재 상황은 북한이 ‘협상을 통한 해결’을 염두에 두고 벌인 도박이라면 분명 실패한 듯 보인다.
한국만 해도, 핵실험 대응문제는 남북 간 협상을 담당하는 통일부나 6자회담을 담당하는 외교부가 아니라 국방부가 주도하고 있다. 2차 핵실험 이후 관련 브리핑이나 언론보도의 상당 부분이 국방부에서 나오고 있음이 이를 입증한다. 청와대가 현재 상황에 정치적 혹은 외교적 카드가 아닌, 군사적 대응방안으로 임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군사적 대치국면에 접어들면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의 긴장 고조 등 위기 지수는 전례 없이 상승하고 있다. 내비친 선의(善意)를 배신당한 ‘비즈니스맨으로서의 대응법’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2차 핵실험이 다음 단계의 강경 조치까지 완결해 ‘더욱 큰 판의 도박’을 벌이기 위한 절차라면 아직 결론은 나오지 않은 셈이다. 물론 상황이 거기까지 이른다고 해서 오바마 행정부가 전임 행정부들의 전철을 밟아 북미 대화에 전면적으로 나설지는 불분명하지만, 그 경우에도 북한은 ‘ICBM 장착 핵보유국’이라는 엄청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또 하나의 전선(戰線)’을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미국의 처지를 감안한다면 북한으로서는 분명 ‘운명을 걸어볼 도박’인 셈이고, BDA(방코델타아시아) 자금 동결 이후 북한을 제어할 지렛대를 확보하지 못한 한국과 미국, 국제사회로서는 답답함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암흑의 시간’이다. 위기의 순간, ‘장사꾼식 실용주의’는 과연 다른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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