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영화 ‘트로이’에 등장하는 트로이 목마. 2_신라의 김유신 장군도 순수하지 못한 수단으로 삼국통일을 이뤘다. 3_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4_‘탈무드’에선 남에게 해를 주지 않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이라고 정의했다. 5_거짓된 시가 쓰여질까 걱정했던 윤동주 시인.
물론 ‘바늘 도둑 소 도둑 된다’는 속담처럼 거짓말의 동기는 미미하나 그 결과는 창대하게 마련이므로, 거짓말을 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솝의 양치기 소년도 처음에는 재미삼아 거짓말을 하다 결국 마을의 공동 선을 해쳤고,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그래서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포사의 경국지색(傾國之色) 때문에 거짓 봉화를 올리다 나라를 망친 주나라 유왕, 사슴을 가리키며 국정을 농단해 진나라의 멸망을 재촉한 조고의 지록위마(指鹿爲馬) 같은 예를 통해 ‘사기(詐欺)치지 말라’는 교훈을 던진 것이다. 칸트의 주장도 같은 의미다.
“거짓말은 가벼움을 명분으로 내세울 수도 있고, 선을 명분으로 내세울 수도 있다. 그리고 거짓말을 훌륭한 목적으로 내세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거짓말이 목적을 위해 정당화될 수는 없으며, 그래서 거짓말은 거짓말을 하는 본인의 인격을 침해하는 죄이자, 스스로의 존엄성을 상실하게 하는 비천한 짓이다.” -칸트, ‘인류의 이름으로 거짓말할 권리에 대하여’
그런데 아리송한 것이 인간사다. 거짓 행동으로 나라가 잘된 경우도 있다. 김유신의 신분 상승 작전이 좋은 예다. 김유신은 가야의 김수로왕 후손인 ‘김해 김씨’로, 신라의 김알지 후손인 ‘경주 김씨’보다 신분이 낮았다. 그래서 신라귀족 ‘경주 김씨’ 김춘추에게 자신의 누이를 시집보내 신분 상승의 사다리에 오른다. 비롯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순수하지 못한’ 수단을 이용했지만, 그 결과는 신라의 삼국통일이었다.
오나라 왕 부차에게 미녀 서시를 바쳐 오나라를 내부적으로 썩게 한 춘추시대 월왕 구천, 미리 짜고 사소한 트집을 잡아 군사들 앞에서 황개를 욕보인 유비의 고육계(苦肉計), 오디세우스의 트로이 목마 일화 등은 설령 수단(과정)이 ‘거짓’이거나 ‘불순’해도 목적(결과)이 공리적이라면 그 수단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같은 맥락에서 플라톤은 거짓말을 ‘영리한 사람들의 능력’,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통치술’이라고 치켜세웠고, 에라스무스는 ‘진실은 바보의 품성’이라면서 미련한 곰보다 영악한 여우와 사는 것이 더 낫다는 처세술을 설파했다.
흔히 거짓말을 나쁜 수단이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지르는 악행으로 여긴다. 그래서 거짓말은 나쁘다. 그런데 아이에게 ‘견우와 직녀’이야기와 곶감보다 호랑이가 더 무섭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가르치는 엄마나, 만우절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가톨릭 사제들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딜레마를 감당하려 ‘탈무드’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white lie)’이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간밤에 다녀갔다며 아이의 크리스마스 흥을 돋우는 아빠나, 미팅에서 ‘폭탄’을 만났지만 “오늘 참 운이 좋네요”라고 말하는 마음씨 착한 청년들이 ‘하얀’ 거짓말쟁이들이다.
하지만 목적은 ‘좋으나’ 결과 예측이 힘든 ‘하얀 거짓말’도 있다. 의사와 시한부 환자의 관계가 대표적인 예다. 비록 ‘쾌차하고 있음’이라는 하얀 거짓말이 위약(僞藥) 효과를 발휘한다 해도, 환자에게 사실대로 말함으로써 남은 인생을 차분하게 정리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시인 릴케는 “시한부 사실을 알리는 것은 그 사람의 죽음을 훔치는 폭력”이라고 했다. 도대체 똑부러지는 정답은 없다.
또 다른 예로, 당신이 일제강점기 조선인이라고 가정해보자. 독립군이 집에 은신해 있는데 일본 순사가 들이닥쳤다. 그때 독립을 지지하는 당신은 ‘거짓말쟁이가 돼야 하나, 정직한 사람이 돼야 하나’라는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메마르고 차가운 진실은 정직이 아니라 진실주의라는 이념일 뿐이다.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 맹목적 이기주의의 편안함이자 따뜻한 안방의 광기다. 그래서 때로는 바보스러운 정직이 아니라, 영악한 거짓말이 진실이 되기도 하다.
당연히 당신은 당당하게 거짓말을 할 것이다. 거짓말도 때로는 ‘미덕 아닌 미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예외를 인정해야 하는 타자에 대한 조건부 정직’이 바로 하얀 거짓말이고, 그것을 ‘선의의 거짓말’이란 모순어법으로 형용할 수밖에 없다. 하얀 거짓말은 내면의 모순이면서도 심금을 울릴 만큼 맑고 투명하기 때문에 ‘하얀(순백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면, 하얀 거짓말은 마치 ‘너무 푸르고 깊어 싸늘하기까지 한 바다’처럼 ‘한없이 투명해 속이 넓고 깊은 마음’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독일군에 의해 수용소로 끌려간 아버지 귀도는 어린 아들 조슈아를 구하기 위해 아들에게 거짓말을 ‘짬밥 먹듯이’ 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수용소의 끔찍한 현실을 숨기려고 “‘재미있는 게임’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아들이 거친 음식과 잠자리를 잘 참아낼 때마다 점수를 주는데, “1000점을 얻으면 탱크를 상으로 받는다”며 ‘하얀 뻥’을 마구 치는 것이다. 덕분에 아빠는 비록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조슈아는 무사할 수 있었다. 하얀 거짓말은 이렇게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눈물의 거울이다.
물론 하얀 거짓말이든 빨간 거짓말이든 누구나 가볍게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던 윤동주 시인은 시가 너무 쉽게 씌어져 혹여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게 시(詩)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은 최초의 악수”
-윤동주, ‘쉽게 씌어진 詩’ 가톨릭대 1999년
시인의 마음속엔 ‘목각인형 피노키오’가 살고 있나 보다. 거짓으로 시를 쓰면 마음속 피노키오의 코가 자꾸 자라, 양심을 쿡쿡 찔러 함부로 거짓 시를 쓸 수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만일 하얀 거짓말이 죄라면 이 세상 모든 시도 죄가 될 것이다. 이탈리아의 어느 시골 우편배달부 마리오는 망명시인 파블로 네루다(칠레)에게 우편물을 나르던 중 그의 시세계에 빠져들었고, 베아트리스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됐다.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은유(metaphor)의 향연인 시로 베아트리스를 유혹하라고 조언한다.
“오! 베아트리스, 당신의 미소는 나비의 날갯짓이라네, 꽃을 피우고 봄을 여네, 당신 없는 세상은 온통 겨울뿐이라네….”
베아트리스가 어떻게 나비가 될 수 있고, 그녀 없는 세상은 겨울이라는 비과학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이렇게 무지막지한 ‘뻥(은유)’인 하얀 거짓말이 사랑의 결실을 가져오고 아이를 낳게 함으로써 역사를 푸른 강물처럼 흐르게 만든다.
- 추천도서 파블로 네루다 ‘우편배달부’(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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