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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촛불, 역사로 타올랐다

침묵하는 MB, 성난 촛불과 대결하나

취임 100일 만에 ‘脫정치 CEO 리더십’최대 위기 … 보수개혁go 아니면 stop 어떤 선택?

침묵하는 MB, 성난 촛불과 대결하나

  • “만일 이 상태로 쇠고기 재협상에 들어간다면 손해 정도가 아니라 MB 정부는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힘들면서도 MB가 ‘촛불’과의 싸움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침묵하는 MB, 성난   촛불과  대결하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으로 촉발된 ‘촛불집회’는 점차 MB의 퇴진 요구 시위로 변화했다.

17대 대통령선거가 보수진영의 압도적 승리로 끝난 지난해 12월 말, 기자는 이명박 대통령(MB)의 한 측근에게서 세 권의 책을 ‘MB 캠프 내 필독서’로 추천받았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의 ‘프레임’, 같은 대학 박지향 교수의 ‘중간은 없다’, 마지막으로 뉴라이트 계열 경제학자 안병직 이영훈 교수의 대담집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가 그것이다.

추천 이유는 명료했다. 지난 10년간 국민의 눈에 씌워 있던 ‘인권’ ‘복지’ 프레임을 거둬낸 뒤 ‘안보’ ‘경제’ 프레임으로 대체하고, 이를 바탕으로 집권세력은 1980년대 보수혁명의 상징인 ‘대처 전 영국 총리의 공공부문 개혁’을 벤치마킹해야 하며, 그 당위성은 다름 아닌 ‘한국사가 보여준 준엄한 소명’이라는 설명이었다.

이 책들을 추천한 MB 측근은 특히 대처 전 총리가 공공부문 개혁 당시 극좌적 노조와의 싸움에서 내비친 뚝심과 신뢰의 정치를 극찬하면서 “새 대통령은 물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 참모들 역시 집권 초기부터 대처 같은 의연한 모습을 보일 의지가 충만해 있다”고 재차 강조한 바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고지순한 보수개혁’이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다.

그랬던 그를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촛불집회가 격화된 6월 초 국회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눈부신 금배지가 달려 있었지만 불과 반년 전에 보여준 감격 어린 표정은 찾기 어려웠다.

“가슴이 아프다. 국민과의 신뢰가 무너졌다. 더 큰 문제는 여기서 한번 밀리면 공공부문 개혁이고, 한반도 대운하고 아무것도 추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왜 판을 뒤엎을 기획력을 발휘하지 못하는지…. 앞으로가 더 문제다.”



“보수혁명 좌절될까 두렵다”

5월31일 토요일부터 6월2일 월요일 새벽까지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펼쳐진 촛불집회는 이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경축(?)하는 전야제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광화문 일대를 수놓은 영롱한 촛불의 집합은 ‘고시철회’ 구호를 넘어 순식간에 반정부 투쟁으로 진화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집회 현장에는 인터넷뉴스 댓글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위트 넘치는 말의 성찬이 펼쳐졌다. 집회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대통령의 집권 근거가 된 ‘CEO(최고경영자) 대통령론’의 파탄이었다. 광화문에 집결한 사람들은 그동안 이 대통령이 설파해온 ‘경제대통령론’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당최 대통령의 철학을 파악할 수가 없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잘한 것은 아니지만 ‘나라를 이렇게 이끌겠다’는 철학 정도는 알 수 있었는데, MB는 단순하게 기업체 CEO, 즉 장사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10년차 개인택시 운전기사 김일모 씨)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긴급 주주총회를 열려고 합니다. 새로 임명한 CEO가 회사를 부도내고 있으니 주주들이 항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참석 부탁드립니다.”(‘미디어다음’ 아고라의 촛불집회 공고 중에서)

국민을 ‘주주(株主)’가 아닌 ‘졸(卒)’로 보는 CEO를 해고하겠다는 정서는 참가자들이 지닌 사고의 가장 큰 동질성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대통령의 처지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전무한 것은 아니다.

“이번 쇠고기 협상은 그야말로 CEO들의 비즈니스 행태예요. 사업가들은 양보할 상황에서 화끈하게 뒤로 물러서죠. 대신 이를 근거로 남은 협상에서 만회하겠다고 생각해요. 당장 ‘-7’이 되더라도 다음에 ‘+10’을 챙기면 전체적으로는 ‘+3’이 돼 손해가 아니라는 논리인 셈이죠. MB도 이런 생각으로 미국과의 협상에 임했을 거예요.”

CEO 대통령론의 파탄, 그 이후는?

침묵하는 MB, 성난   촛불과  대결하나

자발적 대중의 축제이던 ‘촛불문화제’는 점차 ‘의식적’인 시민사회단체들의 참여가 가속화되고 있다.

서울에서 도소매업체를 운영하는 오세영(58) 씨는 ‘CEO 대통령론’의 한계를 ‘산술적 이익론’으로 해석했다. 지나치게 비즈니스 마인드를 앞세운 나머지 ‘국민건강권’ ‘검역주권’ 같은 절대 포기해선 안 될 ‘사회정의’ 영역을 쉽사리 포기했다는 설명이지만, 이 역시 이 대통령의 장점보다 한계를 에둘러 표현하긴 마찬가지다.

물론 현 시국은 정치에 대한 무지와 대선에서의 압도적 지지에 대한 자만,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 복원에 대한 조급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비즈니스 논리로 무장한 ‘MB의 탈정치 CEO식’ 행보가 취임 100일도 안 돼 맞닥뜨리게 된 국민 불복종 운동이라는 냉엄한 성적표는 ‘보수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에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다.

대통령의 패배가 곧장 국민의 승리로 치환될 수 있을까? 일단 2008년 6월1일 집회가 대한민국 시민운동사에 기념비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은 확실하다. ‘국민의 이름’으로 대통령과 언론을 꺾은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전날부터 서울광장에 모여든 5만 개의 촛불은 약속이나 한 듯 “독재타도!”를 외치며 청와대로 향했고, 조직도 지휘부도 없는 성난 민심에 경찰은 손쉽게 광화문 네거리를 내줬다. 1987년 6월항쟁 때도 뚫리지 않았다는 삼청동과 효자동 등 청와대 앞마당이 눈앞에 들어오자 시민과 경찰 모두 흥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비폭력’을 견지하던 성숙한 ‘촛불’에 비해, 대통령과의 코드 맞추기를 강조해온 ‘어청수 경찰’의 성급한 대처는 사태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었다. 노무현 정부 때 경찰이 ‘동네북 구실’로 시민의 동정을 샀다면, MB 정부의 경찰은 너무 쉽게 시민을 향해 무기를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물대포와 할로겐 가스, 그리고 전투경찰과 경찰특공대의 ‘방패 찍기’가 지속되자 청와대는 제5공화국과 비견되는 ‘시대에 뒤처진 권위주의 정권’으로 전락하고 만다.

6월1일을 정점으로 정국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국면으로 전환됐고, 3일 취임 100일을 맞은 MB 정부의 위상은 6·4 재보선에서 참패하며 탄핵 수준의 지지율로 급전직하하고 말았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뭇매를 맞아야 했던 메이저 언론들까지 청와대와 내각의 전면적 쇄신 및 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실정이니, 자그마한 ‘촛불’이 거대한 ‘횃불’로 변모한 셈이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누구 하나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 이 같은 혁명적 변화가 가능했던 것일까. 그리고 4년9개월이나 남은 MB 정부엔 어떤 선택이 남아 있는 것일까.

비타협 소신 아니면 착각

촛불집회가 절정으로 치닫던 5월30일. 이 대통령은 중국 방문을 마치고 밤 10시가 돼서야 청와대로 향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해외순방 일정을 마치고 야밤에 귀국하는 대통령은 거의 없었다. 시간을 ‘분초 단위’로 나눠 쓰는, 이른바 ‘일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욕심이었다. 그러나 MB는 환영인파를 맞닥뜨리지 못한 채 청계천과 광화문에서 자신에게 반대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는 보고를 접해야 했다.

청와대로 돌아온 그의 일성(一聲) 역시 국민 처지에서는 뜨악할 수준이었다. “촛불집회에서 사용되는 초는 누구 돈으로 샀는지 파악해서 보고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그가 현실정치와 민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에 대한 방증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이 발언을 다음과 같이 옹호한다.

“모든 집회에는 조직이 개입되는 게 상식이에요. 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대는 게 주도세력의 임무죠. 지금까지는 그 배후가 대부분 좌우 정치단체였잖아요. 그 프레임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 거죠.”

며칠 뒤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이제까지의 독선적 정부운용 행태를 반성하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여전히 그의 의중이 인적 쇄신이나 쇠고기 재협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해석도 여권을 중심으로 흘러나왔다. 보수개혁을 위한 그의 소신이 비교적 강하다는 얘기다.

시계를 3~4년 전으로 돌려보면, 서울시장 재임 당시 이 대통령은 촛불집회 같은 시민의 목소리에 대해 일관된 주장을 펼쳐왔다. 지율스님의 단식으로 유명한 천성산 고속철도 터널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 대통령은 당시 지율스님의 단식과 핵폐기장 부지 선정 논란에 대해 “여성 한 분의 단식으로, 2만여 군민의 반대로, 몇몇 환경단체의 반대로 국책사업이 번번이 실패해 수십조원의 예산이 낭비됐다”며 노무현 정부와 각을 세웠다. 또한 “낭비된 예산으로 기업을 만들었으면 30만명의 일자리는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임으로써 CEO형 지도자의 정치스타일을 예고한 바 있다.

CEO 시장으로 노점상인, 공공기관 노조원과의 비타협적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당시의 경험이 이 대통령 처지에서는 내세울 만한 자신감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스스로 이를 가능케 하는 통합의 능력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인식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쉽게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도 MB 지지자들에게는 그만의 매력으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촛불, 장기화되나

“사실 가장 두려운 점은 MB가 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포퓰리즘적 정책을 꺼내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럼 보수혁명이고 개혁이고 다 물 건너가는 거죠.”

한나라당 중진 A의원은 MB 정부의 탄생 목표를 근거로 촛불집회가 MB 집권기간 내내 장기화, 상설화될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쳤다. MB가 촛불집회 하나 때문에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넘기지는 않으리라는 게 주장의 요지다.

“작금의 상황은 진실의 문제가 아닌, 인식의 문제 아닌가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국민이 기분 나쁘다는 건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뾰족한 수를 낼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리고 미국이 쉽사리 재협상에 나설 이유도 없고, 대통령도 고개를 숙일 분이 아니고…. 결국 이런 구도라면 촛불집회는 장기화될 수밖에 없어요.”

한나라당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촛불이 무섭긴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다”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한나라당이 진짜 무서워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화물연대 등 생계형 노조의 파업이죠. 이런 식으로 고유가와 경기침체가 지속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먼저 거리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뿐 아니라 공공부문 개혁이 지속되면 ‘넥타이 부대’까지 합세할 가능성이 크죠. 따라서 이들을 촛불과 떼놓는 것이 정책의 기본 방향이 돼야 해요.”(한나라당 당직자 출신의 초선의원 B씨)

그렇다고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고민이 이 정도에서 끝날 일은 아니다. 결정적 이벤트는 7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訪韓). 만일 촛불집회를 그때까지 완벽히 제압하지 못한다면, 나아가 이른바 반미세력과 떼놓지 못한다면 대중이 주축이 된 촛불집회는 불복종 운동을 뛰어넘어 ‘반미투쟁’이라는 한층 복잡한 정치국면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청와대 인사들이 촛불집회의 성격을 이해하면서도 ‘미적거리는 것’ 이상의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지세력 폭, 넓힐까 좁힐까

침묵하는 MB, 성난   촛불과  대결하나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의 궁극적 목표는 한미동맹 강화를 통한 경제 살리기라고 알려졌다.

“아마 MB는 자신의 지지세력을 굳건히 할 것인지, 아니면 저변을 넓힐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지난 대선 MB 캠프의 핵심 참모 C교수)

MB 정부의 과욕과 실정(失政)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고-소-영’으로 대표되는 ‘TK 인사’의 독식을 꼽을 수 있다. 당(黨)-정(政)-청(靑)은 물론 검찰, 경찰, 국가정보원 등 공안라인마저 10년간 권력 핵심에서 소외됐던 TK 인사들로 채워지다 보니, 상호 견제와 보완은커녕 대통령의 의중을 성급히 재단하는 ‘충성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어청수 경찰청장의 무리한 촛불집회 진압을 놓고도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경찰이 시위대에 쫓기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여론이 이렇게까지 나빠지진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정국 반전의 카드는 권력 핵심부를 이루는 ‘TK-5공 출신 인사’들에게 모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월15일 열릴 ‘6·15 남북공동선언 8주년 기념식’에 쏠리는 관심 역시 이 같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이 대통령을 행사에 초청한 상태지만, 청와대의 뚜렷한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만일 이 대통령이 DJ와 악수하고 6·15 남북공동선언을 긍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면, 그것이 지지세력을 넓힐지, 아니면 보수세력의 지지마저 뒤흔들지는 미지수다. 아직은 계산이 잘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수도권 한나라당 정치인들은 지지층을 넓힐 복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또한 그러기 위해선 청와대의 전향적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에겐 상상력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저 정도까지 사과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를 맞아야 한다. 그런데 보좌진은 소나기 피할 생각만 하는 듯하다. 미적지근한 대처로 국민의 분노만 키우고 있는 게 아쉽다.”(한나라당 김용태 의원)

하지만 서로 다른 각론을 내비치고 있더라도 대다수 MB계 인사들은 MB가 ‘촛불’에 지지 않는 싸움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MB 정부의 목표인 보수개혁을 위해서 말이다.

“대통령은 참으로 냉정한 분이다. 반드시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야 하고, 이를 근거로 한미동맹 차원으로까지 발전시켜 비즈니스와 안보 양쪽에서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촛불’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집회는 2008년 5월에 시작됐다. 그러나 그 끝이 언제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손영일 기자의 촛불집회 견문록

남녀노소 광화문 메운 분노의 물결물대포 강경진압에도 “산 자여 따르라”


침묵하는 MB, 성난   촛불과  대결하나

6월3일 비가 오는 날씨에도 촛불집회는 계속됐다.

5월31일 오후 4시. 한강대교를 건넌 뒤 버스전용차로를 달리던 501번 버스가 서울시청 앞에 멈춰 섰다. 인도 쪽 차로에 경찰버스가 줄지어 선 탓에 차로가 하나 사라졌고, 경찰의 차량통제 때문에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버스 승객들은 정류장이 아닌 도로 한가운데서 내려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광화문 일대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어머니, 놀러 온 듯한 연인, 총출동한 가족, 그리고 학생회 깃발을 들고 나타난 대학생. 이들의 손에는 종이컵에 담긴 양초와 ‘협상무효 고시철회’ 등의 글귀가 적힌 붉은색, 초록색 피켓이 들려 있었다.

같은 시각 경찰도 바삐 움직였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효자동 등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에 전경버스를 엇갈려 세워두고 전투경찰들을 배치했다. 전경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오늘 최대 규모의 시위가 되리라는 두려움을 떨쳐내려는 듯 연신 “악” “악” 구호를 외쳐댔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자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있던 대학생들과 청계광장에 있던 시민들이 시청 앞으로 모여들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양초에 불을 밝히고 연단에 오른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2MB(메가바이트) 있는 쪽으로 가자!”

촛불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고시 철회를 외치는 목소리에 버스 운전기사는 경적을 울리며 호응했다. 상당수 언론사에 대한 원색적 비난도 이어졌다.

‘그동안 언론이 얼마나 잘못한 것일까. 이들의 신뢰를 과연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시위대를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시위대가 가려고 하는 곳은 청와대. 하지만 수십 대의 전경버스와 수백 명의 전경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전경차에 숨지 말고 당당히 나와라.”

시민들의 요구에 경찰은 분말소화기로 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매캐한 냄새…. 시위대 사이에서 거친 말이 여과 없이 나왔다. 경찰은 살수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아차, 하는 순간 귀가 얼얼했다. 온몸이 젖었고 눈을 뜰 수 없었다. 자리를 피할 수밖에. 학생들이 물대포에 쓰러지자 이를 바라보던 시민들의 목소리는 격앙됐다.

“독재타도!”

“이명박은 물러가라!”

물대포가 쏟아지는 곳으로 예비군들이 나타나자 박수가 이어졌다. 경찰이 쏜 물대포는 ‘기름’ 구실을 했다. 기름에 불이 붙은 듯 시민들은 더욱 거세졌다. 경찰은 시위대를 포위했지만 역설적으로 청와대가 시위대에 둘러싸이게 됐다.

시위대 대부분은 반미주의자가 아니었으며, 어떤 정치적 이념으로 모인 것도 아니었다. 건강권과 국민을 무시하는 듯한 의사소통 방식에 누적된 불만이 이들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한 것이다. 일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도 보였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중학생,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대학생, 폴리스라인을 위협하는 시위대. 하지만 이런 씁쓸한 모습도 국민과의 소통에 서툰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라는 근본적 대의를 가릴 수는 없었다.

막는 자와 들어오려는 자. 세종로 일대는 뒤엉켰다. 어린 전경들의 모습을 보니 ‘이들은 또 무슨 죄가 있는가. 이들도 피해자다’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누구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초여름 날씨라지만 젖은 옷을 입고 있으려니 몸이 저절로 떨렸다. 달각달각 이 부딪치는 소리에 “으, 추워” 하는 말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누구 할 것 없이 버려진 박스 조각, 신문지 등을 모아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불이 피워진 곳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앞서서 나가리 산 자여 따르라.”

불 앞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오자 모두들 따라 불렀다. 몸에 스며든 냉기도 어느덧 사라졌다.

새벽 4시20분. 거리에 차량이 늘어나고 인원은 줄었지만 시위대의 열기는 여전했다. ‘이렇게 6월1일 아침을 맞이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경찰이 시위대를 밀어붙였다. 피곤할 대로 피곤한 시위대는 저항 한번 제대로 못했다.

속수무책. 강경진압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어린 여학생들이 거리에 나뒹굴었고 전경들의 눈초리는 매서웠다. 진압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였다. 하지만 시위대는 꺾일지언정 굽히지는 않을 듯한 모습이었다. 한바탕 광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6월의 첫 아침은 시위대의 눈물과 땀냄새, 그리고 전경들의 군화 소리와 함께 밝아오고 있었다.




주간동아 2008.06.17 640호 (p32~37)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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