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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영미가 사랑하는 시

중간 색조 (Neutral Tones)

중간 색조 (Neutral Tones)

중간 색조 (Neutral Tones)

-토머스 하디 Thomas Hardy 1840~1928


중간 색조 (Neutral Tones)
그 겨울날 우리는 연못가에 서 있었지.

태양은 신의 꾸중을 들은 듯 창백했고

굶주린 땅 위에 낙엽이 몇 잎 뒹굴었지.



물푸레나무에서 떨어진 것들이어서 잿빛이었지.

나를 바라보는 너의 눈은 해묵은

지루한 수수께끼를 풀려는 듯 두리번거렸고

우리 사이에 어떤 말들이 오고 갔지.

우리의 사랑으로 누가 더 손해 보았는지.

너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간신히 죽을 힘이 남아 있을 만큼 기운이 없었고

싱긋 쓰디쓴 웃음이 입가를 스쳐갔지.

마치 하나의 날개로만 나는 불길한 새처럼….

그날 이후 사랑은 속이고 잘못 비틀린다는

신랄한 교훈이 내 가슴에 새겨졌지.

너의 얼굴, 신의 저주를 받은 태양, 나무 한 그루

그리고 회색 잎사귀들이 에두른 연못이.

곧 헤어질 남녀가 연못가에 서 있다. 서로를 탓하며 과거를 총결산하는데, 그들을 둘러싼 세계도 감정을 가진 인격체처럼 격렬하게 반응한다. 하얗게 질린 태양, 굶주린 땅, 하늘엔 불길한 새가 출몰한다. 한때 평화로웠을 물가가 남자의 눈 속에서, 기억 속에서 공포영화의 무대처럼 변해가는 모습이 흥미롭다.

소설 ‘테스’의 작가로 대중에게 알려졌지만, 토머스 하디는 수백 편의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했다. 중간 색조(Neutral Tones)라는 제목이 재미있다. 연인이었던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떨떠름한 시선을 닮아 중간 색조인가. 제목처럼 회화적인 묘사가 마치 인상파의 그림 같다.



주간동아 616호 (p7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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